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누우야, 머루야
박찬정
“진옥아! 우떤노? 귀엽제? 잘 키워봐라.”
장승포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가 걸망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내려 놓으셨다.
어리둥절한 강아지는 어미 품을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파고 들 어미 품이 없자 제 몸을 한껏 오므리고 있다.
상자에 내가 어릴 적 입던 옷을 깔아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하룻밤 지내고 나니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기도 한다.
나를 조금씩 믿고 의지하는 것 같다.
산머루가 익을 무렵 우리집에 왔다고 해서 머루라고 이름 지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집에 아무도 안 계실 때가 많다.
머루는 툇마루 아래에서 자고 있다가 내가 오는 기척이 나면 쏜살같이 달려와 팔짝팔짝 뛰며 반긴다.
“머루야! 니도 심심했제? 책보 풀어놓고 니하고 쪼매 놀아주꾸마.”
엄마가 쪄놓은 감자 두 개를 꺼내어
“나 한입, 머루 한입.”
“또 나 한입, 머루 한입”
머루와 가실바꾸미 오솔길을 뛰어 다니며 놀았다.
“머루야! 요것 좀 봐라. 노루귀꽃이 피었네.”
얼룩 제비꽃으로 만든 반지는 내가 끼고, 동백꽃잎을 마른 풀에 꿰어 만든 목걸이는
머루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젠 친구가 없어도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머루야! 여긴 장수바위고 이건 고로쇠 나무야. 그리고 저기 봐봐. 동네에서 제일 큰 집 보이지?
누우야가 다니는 장승포 국민학교란다.”
나는 학교를 가리키며 머루에게 자랑했다.
학교에서 가실바꾸미로 올라오는 길에서 내려다보면 장승포항과 학교, 마을,
빨간 등대 하얀 등대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한 눈에 보인다.
“머루야! 저 너머로 가보자. 거기서는 지세포가 보여. 지세포에는 시집간 우리 고모가 살아.
나는 고모가 보고 싶을 때면 거기에 올라가서 ‘고모야’ 불러보곤 하지.”
머루와 더 놀고 싶지만 엄마가 물질에서 오시기 전에 보리쌀을 씻어 불려놓아야 하고,
마루 걸레질도 해야 한다.
머루는 내가 보리쌀을 씻을 때도 마루 걸레질을 할 때도 졸졸 따라 다닌다.
나도 그런 머루가 싫지 않다.
이제 머루는 가실바꾸미가 낯설지 않은가 보다.
엄마가 물질 가실 때 따라나서기도 하고 나의 등굣길에 앞장서기도 한다.
“머루야! 집에 가 있어. 학교까지 따라오믄 마을 사람들이 니를 혼낼지도 몰라.
얼른 집에 가 있어. 알았제”
하얀 등대 입구까지 따라 오던 머루는 집으로 갈 때도 있지만 부득부득 학교까지 따라 올 때가 있다.
할 수 없이 새끼줄로 목줄을 해서 교실에서 빤히 보이는 느티나무에 매어둔다.
내가 창가에서 손을 흔들면 머루가 걱정 말라는 표시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머루 똥개야! 뭐하노? 똥 묵나?”
“머루 니 몇 학년이고? 네 이름이나 쓸 줄 아나?”
장난꾸러기 반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놀리면 머루는 벌떡 일어나 컹컹 짖는다.
나는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지난번 애들이 머루에게 장난으로 모래를 뿌려
흥분한 머루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식겁을 한 적이 있다.
“느그들 머루 우습게 보지마라.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머루도 머지않아 한글을 깨치고 구구단을 외우게 될지 우찌 아노.”
우리 반에는 머루 말고도 출석부에 이름 없어도 학교 오는 아이가 또 있다.
길례는 종종 동생을 업고 학교에 온다. 엄마가 바빠서 애기 볼 사람이 없다고 한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애기가 책상 밑으로 기어다니기도 하고 배 고파서 울기도 한다.
머루는 교실까지 따라 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머루와 집에 올 때는 곧바로 오지 않고 가실바꾸미를 돌아다니다가 온다.
하루는 머루와 내가 엄마가 물질하러 가는 바닷가에 따라 갔다.
나는 바위틈에 숨은 돌게를 잡고, 머루는 엄마가 벗어 놓은 겉옷과 고무신을 지키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물속에 들어가 한참 안보이면 안절부절 하다가 컹컹 짖는다.
나는 돌게 잡는 재미에 정신이 팔렸는데 머루는 엄마를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으니
나보다 효심이 몇 갑절 깊다.
물질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볼 멘 소리를 했다.
‘엄마는 나보다 물질을 더 좋아하는갑다. 내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맨날 일 하느라 바빠서 나에겐 관심도 없네.‘
머루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머루야! 느그 엄마는 어디 있노? 엄마 안 보고 싶나? 이자삔건 아니제?”
“엄마를 우얘 이자삘기고. 꾹 참고 있는기지.“
머루는 눈물을 떨굴 듯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우리 식구하고 오래오래 살자. 내가 크면 돈 벌어서 니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 주꾸마.
우리 엄마는 이쁜 옷도 사 달라 쿠는데 니는 옷은 필요 없제?”
“누우야! 약속했데이. 내는 누우야 말이라면 뭐든지 믿는데이.”
머루는 금방 환한 얼굴이 되어 내 손을 핥는다.
머루와 나의 신뢰감과는 달리 아버지는 머루가 제 밥값을 못 한다고 하셨다.
산짐승이 밭작물을 망쳐놓거나, 살쾡이가 닭을 물어간 날은 ‘머루란 놈 있으나 마나’라고 화를 내셨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나는 5학년이 되고 큰 오빠는 군에 입대했다. 입대하기 전 큰 오빠는 나에게 부산 구경을 시켜줬다.
장승포항에 서 있거나 지나가는 고깃배는 많이 봤지만 배를 타는 것은 처음이다. 영복호 배를 탔다.
영복호가 운항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반에는 그 배를 타 본 아이들이 두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
타기 전 설레던 기분은 곧바로 울렁거림으로 바뀌었다.
장승포 하얀 등대가 멀어져 갈수록 뱃멀미는 점점 견디기 힘들었다.
부산에 내려 구경할 때는 뱃멀미를 잊어버렸다. 신기한 것이 많아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랐다.
오빠가 광복동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주었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이다.
부산에 다녀 온 후 도시를 동경하게 되었다.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배는 타고 싶지 않았지만 부산은 또 가고 싶었다.
한번 가 본 부산에 대한 동경으로 내 마음은 잔뜩 바람이 들었다. 학교는 건성으로 다녔다.
엄마에게는 학교에 남아 공부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야 가실바꾸미 가는 산길로 들어섰다.
익숙한 길이라도 숲속 길은 더 어둡다. 어둠 속에서 뭔가 벌떡 일어나는 게 있었다.
놀라서 뒤로 나동그라질 뻔했다.
“머루야!”
나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머루는 내가 걱정되어 산길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이슬을 맞은 머루의 털이 축축했다.
“누우야!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나?”
“머루야! 미안하다. 누우야가 앞으로는 놀지 않고 일찍 돌아올게.”
“어서 가자.”
“내는 누우야를 믿는데이. 진짜다.”
그 후로는 학교 끝나는 대로 귀가했다. 나의 허황된 도시 바람도, 변덕스러운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
그 다음해 여름 복달임 할 개를 산다고 장승포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아버지도 팔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눈치 챈 머루는 마루 밑 깊숙이 숨었다.
뒤란으로 가서 마루 밑에 숨은 머루를 작은 소리로 불렀다.
머루가 포복하듯 기어 나왔다.
몰래 머루를 데리고 뒷산으로 뛰었다.
겨우 한 숨 돌린 머루와 나는 산개울에 엎드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이대로 집에 가면 머루가 팔려 갈 것 같다.
머루와 나란히 하얀 등대에 쪼그리고 앉았다.
배에서 꼬르르 꼬르르.
아까 마신 산개울 물이 뱃속에서 흐르나보다.
“투둑 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윗옷으로 머루를 덮어주며
“머루야! 지나가는 비야. 염려 마.”
하얀 등대 주변엔 비 피할 곳도 없는데 빗줄기가 세어진다.
“머루야! 가자. 비 피할 만한 데를 생각해 냈어.”
머루와 가실바꾸미 용바위로 향했다.
용바위 가는 길은 늘 다니는 길이 아니라서 풀이 무성했다.
“머루야 여기가 용바위란다. 여기서 비 그치길 기다리자.”
용바위 밑은 비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머루야! 여기서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삼신할매가 애기를 점지해 준대.
마을 사람 중에는 여기서 기도하고 아기를 낳은 사람들이 더러 있어.”
머루가 믿을까 말까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는 뜸해졌다.
“우리 그만 집에 가자. 비가 와서 개 사러 왔던 사람도 갔을끼다”
용바위에서 집으로 가려니 길이 없어 수풀 속을 헤치며 가야했다.
비에 젖은 풀과 진흙으로 발 딛는 곳마다 미끄러웠다.
그때
“어어어 엄마야!”
가파른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내가 머루의 목줄을 쥐고 있어서 머루도 덩달아 굴러 떨어졌다.
“누우야! 괘안나?”
“응. 나는 팔이 조금 까지고 엉덩방아를 찧었어. 니는 괘안나?”
둘이 다 진흙투성이가 되긴 했어도 큰 상처는 없었다.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풀뿌리를 잡아도 금방 뽑혀서 소용이 없었다.
우짜꼬. 우짜믄 좋노. 기진맥진했다.
머루가 낭떠러지에서 올라가려고 해도 진창이 된 흙이 자꾸 무너져 내렸다.
뜸하던 비는 다시 빗방울이 굵어졌다.
머루도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나는 자꾸 눈이 감겼다.
“누우야! 자면 안된데이. 잠들면 큰일난다안카나. 정신 차려라.”
머루는 나의 옷자락을 물고 흔들었다.
어느덧 가실바꾸미 숲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비바람 치는 소리가 귀신소리 같아서 머루를 꼭 끌어안았다.
“진옥아! 머루야!”
부모님이 머루와 내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찾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대답을 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머루가 큰 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컹컹 컹컹”
“진옥아! 머루야!”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컹컹 컹컹” 머루가 대답하듯 큰 소리로 짖었다.
“머루야 어디 있노?”
머루 짖는 소리 방향을 따라 엄마 아버지가 허겁지겁 달려오셨다.
“아이쿠! 진옥아 이기 뭔 일이고.”
엄마 아버지는 부리나케 칡넝쿨을 베어와 내 허리를 묶어 끌어올렸다.
머루도 목줄을 잡아당겨 무사히 올라왔다.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
나는 사흘간 끙끙 앓다가 일어났다.
엄마는 내 등짝을 한 때 때리며
“가시나야! 어메 속 좀 엥가이 썩혀라. 그래 어디에 있었노?”
“저기 용바위 아래에….”
“그랬어? 휴, 내가 딸을 낳으려고 용바위에서 기도를 얼매나 올렸는 줄 아나?
휴, 삼신할매가 굽어 보살폈구나….”
엄마의 계속되는 한숨에 머루는 제 탓이라고 여기는지 시무룩한 얼굴로 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옆에서 한 마디 하셨다.
“머루 짖는 소리에 니를 찾은 기다. 머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앞으로 쭉 잘 돌봐줘라. 알았제.”
“머루야! 고맙데이. 니 덕분에 살았다아이가. 니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나는 댓돌에 앉아 머루의 얼굴에 내 얼굴을 부볐다.
“무신 소리고. 누우야 덕분에 내가 살아 있는기지.”
“그래 그래 우리는 쌤쌤이다.”
머루도 멋쩍은 듯 혀를 낼롬거렸다.
-끝-
누우는 누나의 경상도 사투리이고,
동화에 영복호가 부산 거제간 운항을 시작할 무렵이라 했으니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입니다.
가실바꾸미는 거제대학교 아랫쪽으로 장승포 삼밭마을 끝에서 바다쪽으로 뻗어나간 곳인데
한쪽은 바위 절벽이고 한쪽은 구미입니다. 구미는 바다에 면한 지형으로 큰 의미부터 만> 포> 여?> 개>구미
바닷가 오목하게 들어간 곳입니다. 바닷가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질을 하지요.
그전에 김우중회장이 가실바꾸미에 와보고
세계적인 리조트호텔을 지으려고 그 일대를 다 샀다가 도중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다섯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때 다 이사하고 지금은 집터와 밭이 있습니다..
그 동안 잊혀졌던 가실바꾸미가 요즘 자주 입에 오르고 있습니다.
가실바꾸미에서 보면 지심도가 바로 코앞에 보이거든요.
가실바꾸미와 지심도간 해상 케이블카 말이 있는데 태평양을 마주한 곳이라 바람이 세서
검토하다가 말았다는 말도 있고. 그렇습니다.
찬정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
감동도 있어 마지막엔 눈물이 고이네.
동화는 마음이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사람이 쓸 수 있을거 같아
무엇보다 이 글을 쓸때 찬정이 마음도 어린아이 마음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썼을거 같네.
거제도 너무 좋은 고장이다.
동화 동시를 묶어 책으로 만드는 이런 기획도 하고~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요즘 아가들에겐 옛날얘기가 되는구나.
거제도 바닷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좋다.
작품 속에 등장하면 유명한 곳이 되지.
이 작품을 통해서 거제 장승포랑 지세포가 유명해지겠네 ~
찬정이는 동화도 잘 쓰는구나.
앞으로 많은 작품 기대해요.
찬정후배님, 이것은 차마 양심상 드리는 댓글입니다.
너무도 감동깊게 빠져 읽어,,어디가서 밥 맛있게 맛있게 먹고 밥값도 안내고 나온듯한
기분이 들어 답글을 안 드릴 수가 없는 심정...
가끔, 아주 가끔씩 -봄날-의 글들을 훔쳐보면서 재미를 보면서,
혼자 큭큭 웃기도 하고, 감탄도 하면서 그 분들의 끈끈한 우정에 감탄도 하면서도
차마 댓글을 드릴 용기?가 없는 이유는 제가 보기보다 말이 적고? 점잖기 때문에?,,,하하하하ㅏ
또 솔직히 나두 껴줄랑가? 라는 의문도,,,,또 한번 끼어들었다가 발도 못? 뺄가봐?
어떤때는 너무도 끈적끈적 오고가는 댓글들 속에 불쑥 뛰어들며--아! 참! 수다스럽따!-하며
끼어들어 한 식구가 되어 장난도 쳐 보고픈 유혹도,,, ,,왜냐믄 이 방 이름이 -수다방-잉게로....
사실상 다 침체되어 있는 이 홈피에 유일하게 활약되고 있는 방이 이 -봄날-아닌지요?
또 제일 끈적끈적한 곳은 -수다방-
또한 김춘선후배님의 리더쉽과 다독거림이 참 한결같음에 감탄도,,,
아무리 카톡이 재밋고 카톡시대라 해도 이 홈피가 제일 소중한 글들이나 사진들이 저장되어
질수 있어 인일동문들의 추억과 역사의 창고가 될것이라는 저의 소견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홈피가 옛날의 글로리를 다시 되찿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인일의 먼 후배들도 언제나 들어와 선배들의 삶을 맛보고, 배우고, 위로받고
삶에 참고가 되어 간접체험을 할수 있는 그런,,,
사장 된 한 때의 홈피가 아닌, 살아있는 현재와 미래의 영원한,,,보물창고가 될수 있다면,
후배들에게도 더 없이 큰 선물이 될것입니다.
오랫만에 정말로 글다운 글,,,가식이 하나도 안 붙은 순수한 글에 폭 빠져들어 읽어 내려갔네요.
참으로 귀한 글입니다. 그 모두가 찬정후배님의 어릴적 날들의 실화라는 확신이 듭니다.
여러면의 가치관이 그대로 살아있는 너무나 아름답고 귀한 글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귀한 글이니,,,계속 쓰시며 -국민작가-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이고~ 이모티콘의 여왕 순자 선배님이 오셨네.
버선발로 뛰어나온거 보이실랑가?~ㅎ
누구보다 기운나는 독후감을 쓰셨네요.
선배님 ~
눈치보지 마시고 자주 들르셔요.
요즘 손님 없어 적막한데 대환영입니다.
아이쿠~
아메리카합중국에 계신 정순자 선배님!
(신발짝을 발에 꿰는 둥 마는둥 댓돌은 건너뛰고 문간까지 한걸음에 뛰어나와)
봄날 사랑방을 찾아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허접한 제 글을 칭찬해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
한동안 밤낮없이 화창하던 봄날이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많이 한산해지긴 했어요.
그래도 우리들의 봄날은 여전히 봄날입니다.
봄날 수다방은 늘 열려 있어요. 언제든 오셔서 정담 나누시지요.
형옥, 영분, 미선 선배님이 엄청 반가워하실겁니다.
감사합니다
찬정
잘 읽었어.
여러 조건 맞추느라 더 애썼네^^
좋은 글을 읽으니 어린 시절이 절로 생각나네.
옛날에는 기르던 개를 당연히 팔고 그랬어.
같이 살 때는 새끼 낳았다고 고기 들어간 미역국도 끓여주며 정성스레 키우지만
근본적으론 가축을 키우는 마음이었을 거야.
마치 좀 더 살가운 돼지를 기르는 마음?
어릴 때는 농사가 끝난 눈 쌓인 밭에서 개털 태우는 연기가 나고 냄새가 났던 걸 기억해.
우물가에서 개 잡는 것도 본 적이 있어.
그 끔찍한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마지막에 개의 눈에서 파란 불이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상상인지 진짜로 그랬는지 확실친 않지만(진짜로 봤다고 생각해)
가슴을 부여잡고 집으로 온 적이 있지.
나갔다 오면 없어진 개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던 건 그때는 그런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말로 하지 않아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던 거지.
그때 개를 죽을 때까지 기르는 집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실친 않다.
쥐약을 먹고 죽은 개들도 많았고 말이지.
어린 시절 <내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거든.
갖은 정성을 다 해 키웠지.
고양이가 병이 들어 죽어갈 때 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할 때 식구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어.
식구가 감기가 걸려도 콩나물국이나 먹으면서 물리쳤는데
무슨 아픈 고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겠어.
그런데 갔어.
하도 우니까 내가.
병원 갔다 온 후에 고양이가 갔는데(안락사 아니었을까? 병원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우느라고 확인도 못했네) 내가 너무 우니까 삼촌이(그때는 친척들이 늘 몇 명은 같이 살았잖아)
뒷산에 잘 묻어준다고 갖고 나갔는데, 다음날 아침 쓰레기통에서 발견했지.
그때 내 마음에 뭔가 툭 끊어지는 걸 느꼈어.
어른들에 대한 영원한 이질감과 불신, 그리고 슬픔을 넘어선 공포를 느꼈지.
내 손을 잘근잘근 씹으며 재롱을 부리던 고양이가
하루 만에 뻣뻣한 쓰레기로 변한 모습을 보며... 암튼.
그 이후로 동물을 가까이 한 적이 없어.
이런 따뜻한 글을 읽으면 자연히 그 시절 생각이 나.
요즘엔 개나 고양이, 토끼 다 예뻐.
그래도 내가 키우긴 싫다.ㅎㅎ
정순자 선배님!
무쟈게 반갑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선배님의 삶을 늘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진옥이와 머루의 우정어린 생명의 은인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네요.
프란다스의 개(읽어보진 않았지만)가 아닐까?
그래서 고양이보단 개를 키우는 것이 훨씬 사람냄새가 나는 듯.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글을 어린이, 어른들이 많이 읽어야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