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다.

제법 많이 내린다.


온 산야가 촉촉해 질 것을 생각하니

맘도 촉촉하고,

메마른 가슴이 촉촉해지니

내 정서도 촉촉하게 살아 나는 것 같다.


문득 글이 쓰고 싶어져 오랜만에 자판을 두드려 본다.


옛날 옛적에,

아마도 내나이 다섯살 때 인가 싶다.

그때부터의 기억은 언제라도 떠오르니까....!


우리는 답동에 살았고

우리 고모 할머니가 수인역 기찻길가에 사셨었다.

우리 할아버지께선 남매 밖에 없으셔서 아주 가까이 지내셨었다.


우리들은 친척이라곤 특별히 없어서

고모할머니댁에 나들이 가는것이 큰 기쁨 이었다.


벨벳 원피스 차려입고 그날도 엄마 따라 수인역에 사시는 고모 할머니댁에

놀러갔었다.

어른들이 두런두런 얘기들을 하고 계시는데

혼자 슬그머니 나와 기찻길로  들어서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한없이 끝없이 고른 간격으로 이어진 기찻길에 흠뻑 빠져

하나,둘 세어가며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동안이나  걸었는지 나도 모른다.

고것에 폭빠져  즐겁고 신나기만 했으니까.....!


걷다걷다 뒤를 보니 아득하니 집들이 안보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메고

고모할머니집은 어디고

울엄마는 어딨는지.... !


앞뒷길은 끝없는 기찻길이요

낯선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몸을 이리 돌리고 보고 저리 돌리고 봐도 그집이 그집 같고

저집이 저집 같아 우리 고모 할머니 댁이 어딘지 모르것다.


한참 서있었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웬만해선 잘 울지 않는 성격이었다.

울일도 없었고 예민하질 않아 웬만하면 가슴이 퉁탕 거릴일도 없었다.

별명이 순둥이 였으니까 ~!


그런데 그순간~!!!

 

가슴이 덜컹하며 길을 잃은 것을 알게 됐다.

목에서 피가 차오르는 느낌같은 것이 들었다.


앞뒤로 봐도 끝없는 기찻길이요,

날은 뉘엿, 해는 넘어가지요,

삼촌들이 말 안들으면 망태기 할아버지 한테 보낸다곤 했지요.

딸이 없어 주워 왔다고 니네 엄마 찾아 가라고 해댔지요. 


와락 겁이 나며 세상이 노래지며 눈물이 터지는데

그때 아마 평생 놀랠 껄 다 놀랜것 같았다.


우왕~!!!

범새끼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짖어댔다.


근처 집에서 어떤 아줌니가 뛰어 나온다.

나를 덜렁 안아 올리며


아가~!

왜울어~?

엄마 어딨어?

어디 살아?


나를 가슴에 폭 안고 토닥여 주는데 얼마나 좋았던지

그가슴에 폭 안기며 꿈에도 가보고 싶은 서울을 생각하며

앙큼하게 서울 살아요~! 했다.


그래? 그래 괜찮아 집 찾아 줄께! 하는데 그품이 너무도 좋았다.

위로 오빠둘에 아래로 남동생 둘사이에 끼어

이리치이고 저리치여 엄마품에 안겨 보지도 못하고 자랐는데

얼마나 그품이 따뜻하고 포근했던지 지금도 그아줌마 얼굴이랑 따스한 품이 생각난다.


그품을 잠깐이라도 즐기고 있는데 울엄니가 고모 할머니랑 저멀리

기찻길에서 달려 오는것이 보인다.


엄마 품에 안기며 또 울었다.

반가워 운것이 아니라 저 아짐 품 떠나는것이 싫었고

웬슈같은 사내녀석들 틈에 끼어 투덕 댈 생각하니 싫었던것이다.


봄비가 죙일 내린 오늘~!

머리가 맑아져서 일까?

한갑자도 훨씬 지난 그 어느 봄날이 갑자기 떠오르며 추억에 젖어 본다.

울엄니는 5년후에 이쁜 여동생을 하나 더 낳았다.

심도 좋다.


징하게 긴세월이 흘렀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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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양수리 두물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