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79년도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지?
처음에는 학교고 학생이고 도무지 개념도 없었고, 주어지는 너무나 힘든 업무에 쩔쩔매기만 했다.
월요일마다 시험을 보고 시험이 끝나고 얼마 안 되면 전체 성적이 나오고 그 결과를 추궁하는 괴상한 학교였다.
그 당시 거의 모든 학교가 그러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도 함께 너무나 힘들었고.
왜 그렇게 어린 아이들에게 죽어라 공부만 시켰는지.....
교육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행정가들의 학교 운영은 초임교사를 너무나 힘들게 했어.
그 당시의 일은 정말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니까.
개인적인 상황도 최악이었던 때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일년이 채 안 됐을 때였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힘들 때였지.
내부의 분노와 싸우는 일이 제일 힘들었던 젊은날이었다.
그래도 그 살벌하고 힘겨운 생활에서 힘을 주고 위안을 주는 건 아이들이었지.
그때 만난 아이가 (1학년 10반이었는데) 어제 문자를 보냈더라.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다들 살아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나도 힘과 확신이 생겼고, 의미없는 굴종은 서로에게 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 선생님들과 공부하고 배우고 연대를 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힘이 생겼지.
여러 학교를 거쳤지만 깊은 인연이 닿아서 청각장애 특수학교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하는 모든 것이 좋았고, 아이들과 함께라면 못 할 게 정말 없었다.
그만큼 아이들은 재능이 넘쳤고 표현력이 좋았다.
그래서 행복하게 이별할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서 이 길을 걸어왔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아이들과 소박하고도 따뜻한 퇴임식을 가졌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보려무나.
늘 격려해 주었던 친구들 선배님들, 진심으로 마음 깊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나와 함께, 나보다 조금 늦게 퇴임하는 친구들
모두 축하한다.
잘 놀아 보자~
공무원증을 반납했다.
동영상을 찍었더구나
개학날이었는데 언제 연습을 했는지 이렇게 춤도 추고
수화 노래도 불러 주고
성인 학생들과 한 장, 늘 조용히 나에게 큰 힘을 준 언니들
친정엄마 같은 내 친구 최동숙씨
이 친구가 없었다면 학교 생활하기가 참 힘들었을 거야.
우리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난 우리 학생들과 강당에서
연극 공연을 하고 있었고, 이 친구가 아이를 돌보았다.
우리 아이의 첫 소풍도 내가 아니라 이 친구가 따라갔다.
우리 아이의 또 하나의 엄마이자 깊은 친구인 내 친구 동숙씨.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었다.
아이도 인사하고, 또 식구도 인사하고
나도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우리 가족도 내가 수화하는 거 처음 보고
사랑하는 조카들이 보내 준 꽃바구니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동료들~
번잡한 행사가 싫어서 퇴임식을 안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고 중요하구나 생각했단다.
고마운 마음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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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서 수원까지 통학했던 인숙아~^^
네가 먼저 길을 잘 갔기에 우리들도 따라갔다.
이번에 퇴임하고 좋은 일은 이비에스 다큐를 편안히 실컷 볼 수 있었다는 거야.
꼭 개학하기 바로 전에 시작하곤 해서 힘들었거든.
낮에 점심을 하면서 맥주도 건배할 수 있고^^
유쾌하고 넉넉한 인숙이의 모습이 우리 12기에게 큰 힘을 주는 거 알고 있지?
모임에서 보자~~
옥규야, 낑겨서 인사하고 싶어서. 40년 가까이 일을 열심히 했으니 깊은 내공이 있을 수밖에. 장하이 친구, 축하 한다 그리고 업어 주고 싶기도 하구 은퇴하니, 빈 자리를 채울 시간 과 미음의 여유가 생겨 좋단다. 나날이 즐겁고 복되길...
정숙아 나도 네가 친구라는 게 자랑스러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지니 얼마나 좋은 일이니?
무슨 일이 끝나면 꼭 다정한 말을 해 주는 친구.
9월 걷기 모임에서 만나자~
늘 고마워한단다 정숙아~
규희야~
퇴임했단 말 들었다.
장하다!
세상에.... 외국에서 적응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여행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훌륭하게 지낸단 말이냐?
또 업그레이드 하면서 말이다.
암튼 이제는 미국을 생각해도 든든하다.
볼 수 있는 날이 있겠지.
31년 전에 가 본 미국
고맙다.
잘 지내다 보자~
퇴임?
옥규도 퇴임이라는 걸 하는구나! 세월의 힘이여!
옥규는 영원히 퇴임같은거 안 할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나봐.
그럼 이제부터는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매이는 거 없이 다 맘대로네?
브라질 가는 전세기 얘기는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이야기지만
미국 오는 전세기는
아직도 발동을 걸 수 있지 않나?
연구해 보기를..............
사랑하는 영희 언니~
퇴임을 하면서 언니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 다큐를 보는데 몇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로마의 어느 큰 도서관장인 여자가 이런 말을 해요.
어릴 때 소원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자기가 있는 줄 모르고 사서가 도서관 문을 잠가 자기 혼자 일주일 동안 실컷 책 사이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거였대요.
그런 꿈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사서가 된 것 같다고요.
또 덴마크 사람인 어떤 건축학자는 어릴 때 지붕 위를 걷고 싶다는 꿈이 있었대요.
그래서 건축을 하게 되었을 때 지붕을 스키 로프처럼 만들어 거기서 스키를 탈 수 있게 만들어요.
어릴 때 꿈이 있어서 이렇게 만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가 봄날에서 브라질 여행 이야기 했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요.
그런 꿈이 결국 어딘가에서 우리를 만나게 할 거예요.
해외지부에서 본 언니의 얼굴은 너무 젊고 예쁘셔서 미국이 잘 맞으시나 보다 생각했어요.
감사해요 언니~
뵐 수 있을 거예요. 스케줄은 언니가 짜시고요.
장한 옥규야~
퇴임을 축하한다.
언젠가 네가 특수학교에 근무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로 사랑을 실천하는 옥규샘이라는
존경심이 들었단다.
가끔 아이들과의 생활소식을 홈피에 올릴때도
행복해하던 네모습이었는데...
그아이들에게는 영원히 잊지못할 좋은
사랑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겠지.
가슴에 사랑을 품고
제2의 인생.제3의 인생을 시작하렴.
그런 친구를 둔 나는 행복하다.
옥규야.
퇴임을 다시한번 축하한다.
그런 꿈이 결국 어딘가에서 우리를 만나게 할 거예요.
참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라고 여겨지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백프로 맞는 말은 아닌것같아.
꿈만 가지고는 만남이 이루어지지않지. 꿈에서라면 모를까.
전세기는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이고 몇몇이서 정답게 손잡고 건너와 봐.
그마저도 수월치않으면 혼자서 훨훨 날아와.
누가 와야 스케줄을 짜지.
대단한 옥규의 정년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해!!!
정말 대단하고 壯하다 옥규야~~~~
어려움을 잘 버텨나가는 너의 모습이 항상 든든했거든!!!
쉽사리 희망하지 않는 특수학교에서
그렇게나 큰 사랑으로
힘든 그 아이들을 보살폈으니 정말 대단해!!!
이제 인생 2모작을 시작할 때야!!!
멋지게 다시 펼쳐나가길 바래
나도 옥규 팬이야.
후배이지만 존경스러운.....
12기엔 참 다정하고 따뜻하면서도
왠지 모를 기품(?)이 있는
귀한 후배들이 많은데, 그 중 한 사람 옥규....
좋은 글로 계속
좋은 책, 영화, 소식들 전해주세요.
퇴임 축하하고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된 거 더 축하하고....
감사해요 광숙이 언니 명희 언니~
면구스러워서 숨고 싶은 마음이네요.
장할 것도 없어요.
그냥 쭉 온 것뿐이거든요.
아직도 정신이 멍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럴 때는 아무 생각없이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걸어야 할 것 같아요.
좀 실감이 나려면 시간이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보내주신 말씀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옥규야
드디어 퇴임을 했구나
우리 젊은날 한 학교에서 치열하게 살았지
그 와중에도 시를 읽고
너는 보길도를 다녀오고~
아름다운 퇴임식이다
너는 언제나 젊고 푸르다
이제서야 이 글을 읽었네.
생각만 해도 따듯하고 미소가 지어지는 옥규~
퇴임 글을 읽고나니 뭉클해서 눈물이 나네.
축하해.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겠어.
이제 훨 훨 ~ 날라다녀라.
한 일년~ 모습을 안보여도 그럴만하다 생각할께~ㅎ
장해요!
한 길을 꾸준히 갔다는 것만으로도 .
그리고 감사해요.
이렇게 여러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일의 마무리를 할 수있는 생명의 허락을.
앞으로 건강지키며 차근차근 미루었던 일들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맞이하기를 기원해요
지나보니 그 길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는 걸 그 때는 몰랐어.
그래서 지금의 나는 스스로 대견하다고 말할수 있지.
친구야! 명예로운 퇴임을 축하한다.
우리 힘 닿는데까지 또 열심히 살아보자.
네 글을 읽으니 그냥 울컥. 콧물 찍~
멋진 옥규야~~건강에 힘써서 오래 얼굴보여줘.
잘먹어. 이젠 급식이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