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부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33.허민희
인일의 정신을 드높히는 해외동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 산문집은 류시화 작가가 여행하면서 겪고, 경험하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인도. 네팔. 아프리카의 오지 같은, 작은 부락에서 전래되어오는
잠언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한국에 갈 때마다 몇 번은 서점을 들리게 된다.
눈에 띄어, 무심코 집어 든 이 한권의 책을 읽으며
적잖은 위로와 충족감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고
한 동네에서 친구가 된, 40년 지기 친구 모습이 떠올랐다.
일본 북해도 여행을 함께 했는데
그 멋진 여행지에서
늦은 밤 그녀는 옛날이야기를 다시 꺼내었다.
결혼해서 시집과의 갈등에서 온 고통을,
지난 날, 수도 없이 들은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나는 듣기가 민망했다.
사람에 따라선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
그녀의 내면에서 지워지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문득 문득 그녀를 차고 올라오는
그녀의 고통이 생각나서 이 책을 권했다.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
책을 읽으며, 나도 깨닫는 바가 많았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과 나란히 걷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사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만은
그래도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된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삶의 여정에서 발견되므로
이 순간, 가슴 뛰는 순간이 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순간을 즐겨라.
버리고, 비우고, 지금을 사는 일, 등.
몇 산문들은,
그의 페이스 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메모한 것 중 하나를 소개한다.(P.55)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놓쳤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놓친 것은 ‘지금 이 순간들’이다.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행동하는 날, 그날이 바로 길일이다.‘
‘스스로를 무시하며 산다’란 말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이타카’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의 목마’라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장수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험난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 모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있는 오디세우스라고.
어느 날 이 행성에 태어나
다시 우리의 본향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이,
삶이라고.
인간은 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를 향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왜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가기위해
그토록 험난한 여행을 해야만 했는가?
작가는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점은 어는 곳을 가고 있든
내가 집으로 향하고 있음을.
인간은 모두 자신의 집에 이르기 위해 여행하고 있음을.
집으로 향하는 멀고 긴 여정.
그 여정이 곧 진리 발견의 길이고 자아실현의 과정이다.“ 라고.
“우리 각자의 삶은 한 편의 [오디세이아]이다.
그 대서사시의 완성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각자의 이타카 여행이어야 한다.
그 길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우리의 순례이다.
당신의 이타카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 이타카로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가?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을 향해 가는 길 위가 바로
이타카임을 이해했는가?“
J S Bach, Sicilienne BWV 1031 Valentina Lisitsa
옥규씨 반가와요.
여긴 한국 서점이 있어도 한국보다는 비쌉니다.
몇년 전에 '알라딘'이라고 새책과 중고 서적을 파는 제법 큰 서점이
생겼어도, 한인타운까지 가야해서
한국 갈 때 마다 몇 권씩은 습관처럼 사옵니다.
Midvalley Library를 누가 소개해 줬어요.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
미국 도서관인데, 한국 책도 많다고요.
그래 혹 최명희씨 '혼불'이 있다면 빌려보려합니다.
'침묵은 흉내가 아니라 존재의 평화로움에서 저절로 나온다'란
류시화씨가 깨달은 진리는
혼이 살아있는 자들의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삶인 것 같습니다.
류시화적인 교훈이 담긴 글 감사해요.
마침 읽은 책에 류시화의 글이 있었어요.
읽으셨을지 모르지만 옮겨 봤어요.
인디언이 지은 이름들은 재밌기도 하지만 참 정곡을 찌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인디언이 지어준 이름 얘기엔 가슴이 뜨끔하기도 했답니다.
오하이오에 아이의 고모가 살고 계신데 거의 40년 가까이 되셨답니다.
출발할 당시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을 좀 받습니다.
특히 가족의 관계에서요.
가장 아쉬운 건 책이라고 하셨답니다.
책장 세 개 정도의 책을 꾸준히 보냈습니다. 물론 배로요.
다 읽은 책은 오하이오 대학 한국 문학 도서관에 보내라고 했는데
아직은 갖고 계시겠다고 합니다.
저도 만약에 외국에 산다면 한국 책을 못 봐서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 일은 없겠지만요.
침묵으로 느끼기 류시화
미국의 인디언 축제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인디언 천막 안에서 인디언 노인들과 흥미 있는 대화를 주고받으리라 기대했던 나는
아주 뜻밖의 일을 경험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마주 앉자마자 나는 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며, 인디언 세계에 무척 관심이 많고,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인디언들의 철학과 역사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도 넌지시 내비쳤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묵묵히 앉아 있
을 뿐이었다.
천막 안이 어슴푸레해서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건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천막마다 그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불청객으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축제 구경을 온, 잘난 체하는 이방인의 침입을 부정 타는 일로 여길 법도 했다.
아니면 나와 동행한 백인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천막마다 구부리고 들어가느라 허리만 뻐근했다.
훗날에야 나는 그것이 인디언 부족들의 전통인 것을 알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한동안 침묵으로 상대방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 앞에 있는 존재를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은 말을 통한 것이 아니라 침묵을 통
한 것임을 그들은 깨닫고 있었다.
그 후 미국에서 돌아와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인디언들 흉내를 내고는 했다.
상대방의 존재를 느낀답시고 입을 다물고 오 분이고 십 분이고 앉아 있었다.
그 결과 아주 괴팍하고 거만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침묵은 흉내가 아니라 존재의 평화로움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임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인디언들과의 만남은 내게는 새로운 눈뜸이었다.
그들의 땅을 사랑하고, 그 세계에 이끌린 나머지 나는 몇 번의 여행을 인디언들과 함께 보
내면서 그들로부터 인디언식 이름을 얻었다.
하나는 ‘너무 많이 말해(Too Much Talking)’였다.
내가 뭘 얼마나 떠들기에 그런 식으로 날 부르는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너무 많
이 따져’라는 이름을 또 얻게 될까 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 고백하지만 나는 그들의 침묵에는 턱없이 모자랐고, 그들의 말에는 더없이 넘쳐
났다.
나는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