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그리운 집 / 김옥인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에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니
나비일까, 어린 새일까.. 나풀거리듯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바로 몇 집 걸러선 창너머로부터 오는데
발자국 소리에 사라질까
눈만 사르르 감고 음을 붙잡네.
......................
나는 시를 별도로 깨닫기 전에
가곡을 통하여 가사를 익히며 시를 어렴풋이 감지 했었다.
소녀시절 애틋한 감정으로 음미하던 곡들이 모두 그렇다.
현제명 작곡 이은상 작사의 ' 그 집 앞'을 지금도 부르다 보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언제인가는 꿈속에서도 ´그 집´을 그리며 부를 것이다.

현제명(玄濟明, 일본식 이름: 玄山濟明 구로야마 즈미아키, 1902년 12월 8일 ~ 1960년 10월 16일[1])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가, 바이올린 연주가, 테너 성악가, 가곡 작사가, 가곡 작곡가, 편곡가이다.
딸 현혜숙도 성악가이며, 문학자 겸 기독교 종교사학자, 정치인인 백낙준과는 사돈간이다. 본관은 연주(延州)이고 아호(雅號)는 석(石), 현석(玹石)이다.
대구 출신으로 개신교 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서양음악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시카고 무디성경학교(Moody Bible School)에 입학했다가 인디애나주에 있는 건음악학교(Glun Music School)로 옮겨 1년간 음악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뒤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의 서양음악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0년조선음악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문예회에 참여하여 친일 활동을 시작한 후 대동민우회,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 친일 단체에 연이어 참가했다. 조선음악협회의 음악회에서 친일적인 내용의 성악곡 〈후지산을 바라보며〉를 발표하고 대화숙 주최 ‘국민음악의 밤’과 같은 친일 행사에 참가해 독창을 하거나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전국 순회 가창지도대에 참가하는 등, 그의 친일 행적은 음악가들 가운데서 매우 뚜렷한 편이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소속의 우익 음악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울대학교에 음악대학을 설치해 예술학부 초대 학부장을 맡았다.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고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창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 오페라 연출자로도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예술원의 종신회원을 지냈다.
1960년 10월 16일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향년 59세를 일기로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발췌: 위키백과)
이은상(李殷相, 1903년 10월 22일 ∼ 1982년 9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시조 시인·사학자이자 명예 문학박사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노산(蘆山)이다. 그는 조선 제2대 정종 임금의 열번째 서자 덕천군 이후생(德泉君 李厚生)의 직계 후손이며 경상남도 마산 출생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와 일본 와세다 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성 이화여자전문학교·서울대학교·영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대한민족문화협회장·한국시조작가협회장·한국산악회 회장 등을 지냈다. 광복 전에는 국민문학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조선문단〉지 초기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의 시조는 조국과 국토 산하에 대한 예찬, 전통적 동양 정서, 불교적 무상관 등이 얽혀 바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은 거의 신앙적 집념으로 나타난다. 평이한 언어가 자연스럽게 유출하는 즉흥성은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여 시조 부흥을 이룩한 공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언론·학술·사학 방면의 저술을 많이 남겼다. 또 국토를 편답하면서 쓴 기행문도 많고, 충무공 연구가로도 이름이 높다. 1963년 민주공화당이 창당될 때 창당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국정자문회의 자문위원에 임명되었으나[1] 그해에 사망했다. 김구 선생 추도가, 박정희 대통령 추도가의 가사를 작시(作詩)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노산 시조집》, 《민족의 맥박》, 《조국 강산》, 《이 충무공 일대기》 등이 있으며 기행문 《피어린 육백 리》가 있다.
( 발췌: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