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회 - 아이러브스쿨 게시판담당 : 김영자
나는 일하는 분야 때문에, 또 성격 탓에 남자사람 친구가 많은 편이다.
1974년 석사과정 중 여러 대학 대학원생이 함께 저명 생태학자 오계칠 박사님 강의를 들을 때에 서강대학교 석사과정의 김박사님을
알게 되었는데, 이분이 직장을 대덕연구단지로 정하셔서 또 다시 만났고, 배재의 강의을 맡기는 등 와중에 개인적인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독실한 가토릭신자이시고, 부모님이 아주 큰 유산을 주셨다는데, 자녀를 낳지 못하여 입양하셨다 함.
김박사님은 체구가 작으신데 반하여, 입양한 아드님은 대전의 얼짱이고 신장은 180cm이 넘는다고 한다.
김박사님은 생태학자로 통계학에 능한데, 한밭대학에서 생물산업 쪽으로 박사학위를 하나 더 하시더니, 어디서 무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통계를 잡는 독특한 능력이 생기셨다. 요즘 뜨는 프랜차이즈를 찾는 것도 통계, 어느집에서 매상이 얼마 오르는가 역시
카드사용 총액을 계산하여 통계를 낸다. 25세 얼짱아드님이 공부는 아니라 하니, 최근 중고등학교 밀집지역에 떡볶이집을 내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우선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훈련을 받게 하였고
나름 전략을 짰는데; 조그만 떡볶이집이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대화도 하고 쉬어갈 수 있는 비교적 너른 공간을 임대했다.
가장 이례적인 것은 주문과 지불을 하는 자동기계이다. 이 기계 앞에서 메뉴를 확인하고 입금하니
직원들이 돈을 떼어 먹을 수도 없고
현찰과 카드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계산대직원이 따로 필요치 않다.
한 곳이 잘되니, 한 곳을 또 차렸고 (한곳의 인테리어 기타 기물 구입까지 1억5천씩)
쉽게 이동하라고 아드님에게 K7 승용차를 사주었다 한다.
아들은 제법 운영을 잘 하고 직원들을 리드하는게 보통 아니라고.....
잘 따라오면 독자적인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주련다, 하심. (이미 프랜차이즈 구상은 마쳤다고 함)
말로만 듣다가, 대전 용산동의 신전 떡볶이집을 방문해 보았다.
독특하게 매운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칼라풀한 옷차림의 50대 여성이 들어온다
저녁시간마다 3시간 설겆이하고 부엌청소를 해준다고......
이 여성은 빌딩을 7채를 소유하고 서방님은 화학연구소 박사님인데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고 가면 잠도 푹 잘잔다고!
삶의 고수들이다. 삶에 적극적이다. 삶의 비밀에 좀 근접한 듯.....
(김박사님은 아들에게 절대 기대기지는 않겠다.... 한다. 그래서 부부가 치매 걸리거나 병원에 누워 있거나.. 그래도요? 내 질문에는
답을 못하심)
눈섶 진한 김영주.....라고 이름에 접두어를 가진 김영주쌤이 막~
터키 여행을 하고 왔는데, 톡에서 오벨리스크 사진을 제가 여기로 따왔습니다.
오벨리스크는 런던에서도 봤지요. (물론 공물 ㅎㅎ)
이 오벨리스크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상형문자를 읽어주시는 분에게는 이번 연말에 큰 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에 Egyptian Hieroglyphs 알파벳을 힌트로 드림)
The Obelisk of Theodosius is of red granite from Aswan and was originally 30m tall, like the Lateran Obelisk. The lower part was damaged in antiquity, probably during its transport or re-erection, and so the obelisk is today only 18.54m (or 19.6m) high, or 25.6m if the base is included. Between the four corners of the obelisk and the pedestal are four bronze cubes, used in its transportation and re-erection.[2]
Each of its four faces has a single central column of inscription, celebrating Thutmose III's victory over the Mitanni which took place on the banks of the Euphrates in about 1450 BC.[1]
Pedestal[edit]
The marble pedestal had bas-reliefs dating to the time of the obelisk's re-erection in Constantinople. On one face Theodosius I is shown offering the crown of victory to the winner in the chariot races, framed between arches and Corinthian columns, with happy spectators, musicians and dancers assisting in the ceremony. In the bottom right of this scene is the water organ of Ctesibius and on the left another instrument.
12월 10일 (토)에는 축현초등학교 동창들의 송년 모임이 있었는데
모였던 친구들은 모두 "참 좋은 모임"이라고 평가하였다. 사실 구성원은 사회 최상층=성공한 사람들과
사업의 실패를 맛보고 어려움에 처해 중장년기를 맞는 친구 등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친구야!)로 부르면서 그런저런 내색도 않는다. 반갑기만 하다.
이번에는 예전 우리를 가르치신 이부순 선생님(82세)도 참석하셨다.
선생님을 벤츠로 모시러 가고, 서울 자택으로 모셔다 드리고; 작은 선물과 마음으로 안겨드리는 꽃다발도 즐거웠다.
그때가.... 1960년 즈음
지금은 2016년, 55년 전이 아닌가!
선생님께서 어찌나 영민하신지, 모든 기억은 우리의 기억과 맞아 떨어졌다. 동료교사들... 학부형들... 또 학생들과 많은 일들.
나는 1학년 때 조진옥 담임선생님, 2학년 때 정구송 선생님, 3학년 때 이상민 선생님,
4학년 때 김영순 선생님, 5학년 때 김필규 선생님, 6학년 때 김영호 선생님 담임이셨는데,
교무실의 풍경을 자세히 그려주셨다. 정구송 선생님은 너무나 선량한 청년, 김영호 선생님은 참 똑똑한 사람인데 학생들을
매로 체벌했다... 김영순 선생님은 어찌나 싸움 잘하고 지고는 못사는 형, 교무실에서도 그이와 대화하는 사람이 없었다...
최경순 선새님은 남편과 사별하고 모든 정을 학생들에게 쏟았었다... 하와이에 사시다가 현재는 본토에 사시는 듯..
이부순 선생님은 연금을 타시는데, 당시는 은행이자가 높던 때여서 대개는 일시불로 타고 은행에 넣어두는 쪽을 선호하혔지만
모두들 빈털터리가 되고보니, 이부순 선생님 얌전히 연금타면서 나이들어 가시는 생활을 칭찬하고 부러워 하신다 함.
소식을 전해주시는 데 모두 감탄사를 연발한다. 일일이 악수를 하는데, 선생님 손이 따듯하신 걸로 혈액순환도 좋으심.
무엇보다 예전모습 그대로 8순이 될 수가 있다!............(아래 사진 앞줄 중앙에 마이크 손에 잡으신 분이 이부순 선생님)
이부순 선생님을 노배방 기기로 모셨더니, 선곡은 개똥벌레.
모두 일어나 백댄서가 되었다. 재벌그룹을 이끄는 사람도 그저 소시민도 모두가 다같이 한목소리를 내었다.
다음에는 좀더 많이 모여보자고 다짐하고 2017년 송년모임의 막을 내렸다.
(Band에 모두 떠있는 동영상과 사진을 어떻게 옮겨올 수 있는지를 모름. 사진만....) 사진을 옮겨싣는 것은, 멀리 있어 송년모임
참석치 못한 친구들, 사진으로라도 한번 모임을 보시라고... (사진을 바라볼 때, 이부순 선생님 왼쪽 빗겨 뒤로 머리가 하얀 안경쓴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1학년 때 이부순 선생님반 반장 ㅎㅎ)
.
다음은 톡에 떠도는 글입니다.
한국언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 (2년전 글이라고 합니다)
한 외교관이 한국 언론의 왜곡 행태를 빗대어 문자 메시지로 보낸 유머를 소개한다.
1. 예수가
"죄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발언한 것을
한국언론의 기사는
<예수, 매춘부 옹호 발언 파장.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
라고 보도했다
2. 예수가
위선적 바리새인들에게 분개 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꾸짖은 데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예수, 국민들에게 X새끼 발언 파문>
라고 보도한다
3. 석가가 구도의 길을 떠나자,
한국 언론은
<국민의 고통 외면, 저 혼자만 살 길 찾아나서>
라고 보도하였다.
4. 석가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대해
한국언론에서는
<오만과 독선의 극치, 국민들이 끝장 내야.>
라고 보도했다
5. 소크라데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고 했을때 한국언론은
<소크라테스, 악법 옹호 파장>
이라고 보도했다
6. 시저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고 하자 한국언론은
<시저, 평소 주사위 도박광으로 밝혀져.>
라고 보도했다
7. 이순신장군이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라고 하자 한국언론은
<이순신, 부하에게 거짓말 하도록 지시, 도덕성 논란 일파만파>
라고 보도했다
8. 김구선생이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입니다."
라고하자 한국언론은
<김구, 통일에 눈이 멀어 민생과 경제 내팽개쳐.>
라고 보도했다
9. 클라크가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고하자 한국언론은
<클라크, 소년들에게만 야망 가지라고, 심각한 성차별 발언>
라고 보도했다
10.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하자 한국언론은
<스피노자, 지구멸망 惡談, 全세계가 경악 분노>
라고 보도했다
11. 최영장군께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 하자 한국언론은
<최영, 돌을 황금으로 속여 팔아 거액 챙긴 의혹>
이라고 보도했다
13. 링컨 대통령이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을 이야기하자 한국언론은
<국민을 볼모로 하는 국가 정책에 국민은 피곤하다.>
라고 보도한다
14.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하자 한국언론은
<현 정권, 신이 죽도록 뭐 했나?>
.
후배사람 친구 얘기를 덧붙이련다.
후배들도 분위기만 맞으면 친구가 되는 법, 인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법.
내가 박사과정 때에 서울대학은 문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하여,
지방대학에서 또 서울 시내의 타교에서 소수정예가 서울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은 wide open).
타교생들 혹은 지방대학생들과 나는 스스럽 없이 우정을 쌓아나갔는데... 그중 강원대 생물과 출신의 J박사는 정말 키는 작고
의에 대한 맑고 투명한 개념을 갖고 있다.
이 사람이 박사학귀 직전에 잠적한 적이 있는데....내가 찾아내었다. 실험실 바쁜데 왜 그랬느냐 물으니....
박사가 되려고 공부한게 아닌데, 박사가 되고 관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라나. 그래서 실험하고 박사가 되고, 면류관을 쓰게 되나
보자고 야단치고 실험실로 복귀시켰었다. 현재는 자기의 모교에서 27년차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예전에 J박사가 좋아하던 키큰 청년이 있었는데... 덜컥 결혼을 하더니, 덜컥 이혼을 해버렸다, 딸 하나를 데리고....
역시 지방대학 출신인 부인은 성악공부를 이태리에서 하고 싶어 이태리 유학병에 걸려있었다.
연하의 이 남성에게 프로포즈를 한 것은 J박사였다. 딸은 아예 자기가 낳은 딸보다 더 자기 딸 같이 삶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제 대학생으로 장성한 딸은 지난 여름, 파리에서 웨이트리스 등으로 지내고 있는 생모의 원룸에 놀러갔다가
J박사에게 이렇게 전화를 걸었단다.... 엄마, 여기는 무지 가난해. 여기다 대면 우리집은 재벌이야, 재벌!
J박사는 아주 멋진 집을 신축하고, 집 이름을 <나무네>로 지었다.
인접한 필지를 하나씩 더 사면서 지속적으로 마당을 넓혀 가고, 거기서 농사도 짓는다. 농사는 서천 소재 국립생태원에서 주중에
근무하고 주말에 춘천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이 전담한다. 서방님 전공이 바로 나무~
집이 너무 멋있다보다, 딸의 마음에 흑심이 생겼나 보다.
엄마, 엄마 늙으면 이집 나줘요..........(아마 죽으면...을 완곡하게 표현 함? 유산으로 달라는 뜻)
J박사 말이.... 안돼, 너는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걸 배워야 해. 이집은 벌써 우리 사후에 자선단체에 기탁한다고 sign했어.
에이, 난 세상에서 독립 두글짜가 제일 싫어- J박사 딸래미가 내뱉은 말. ㅎㅎ
춘천에 가면 오라는 곳, 가야할 곳도 많지만, 잠은
꼭 J박사 집에서 자면서 이 후배사람 친구에게서 많이도 배운다.
누가 나더러.... 어머니 그림전시관 Museum을 하려면, 나중에는 그간 시중에 펼쳐진 어머니 그림을 사모으라 가르쳐 주었다.
J박사네는 집의 방마다, 또 연구실에도 어머니의 빛바랜 수채화가 걸려 있어서 그말을 했다. 내가 되사겠다고....
정말 죽을 듯 혼났다. 에구 웃겨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