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올해 교회에서 여선교회장이 되었답니다.
회장이 되고 첫번째 월례회 하는날, 회원네 어머니 초상이 났어요.
1년 넘게 의식도 없이 병원에 계시던 분이었거든요.
패혈증까지 와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았는데 오래 버티신 거에요.
이번에 어머니를 여읜 그 집사님에겐 딸이 하나 있어요.
아마 서른 아홉살 쯤 되었지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난관이 막혔답니다.
도저히 자연적으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주사를 맞으며 몸을 만들고
연말에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는데 단번에 임신 성공 ~
나이가 있으니까 이왕이면 쌍둥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초음파를 찍어 보니 콩알이 두개 ~
쌍둥이가 생긴 거에요.
모두들 기뻐하고 축하했지요.
이제 임신 8주차 ~
며칠 전에 갑자기 산모의 배가 아프고 피가 보인다고 해서
친정 엄마가 놀라서 딸네 집으로 달려갔답니다.
딸네 집에서 머무르며 돌봐주고 있는데
화장실에 들어간 딸이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게 울더래요.
얼른 쫓아 들어가 보니 시뻘건 핏덩어리가 뭉턱 ~
순간, 유산이 되었나 보다 싶어 가슴이 철렁해서
앞뒤 가릴 겨를 없이 맨손으로 그 핏덩이를 건졌답니다.
혹시라도 그 속에 아기가 들었나 싶어 손가락으로 살살 더듬어 헤집어 보니
아무것도 든 것이 없고 순두부 같더랍니다.
우는 딸을 달래고 추슬러서 병원에 가 검사해 보니
쿵쾅쿵쾅 심장 소리 씩씩하게 들려서 안심 ~
아예 딸을 집으로 데려와 돌보려고 차를 타고 오는데
이번엔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따르르릉 ~
아무래도 어머니가 곧 떠나실 것 같으니 어서 오라고 다급히 부르더랍니다.
그날은, 몇 십년 만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눈발도 거세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잉태한 새 생명을 온전히 잘 보호해서 무사히 받아내는 일과
기한이 다 된 생명을 보내는 일이 동시에 터져 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딸을 집에 데려다 놓고,
그길로 어머니에게 달려가 마지막 이별 준비를 했습니다.
청색증이 와서 손발이 파랗게 변한 어머니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아무 반응이 없는 어머니 얼굴을 어루만지며
사랑한다고, 편히 가시라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울면서 속삭였습니다.
금방 돌아가실것 같던 어머니는 평온한 상태로 주말을 보내셨습니다.
혹한에 장례 치를 사람들 형편을 봐 주시려는 양
월요일 오후에 한파가 누그러지자 홀연히 천국으로 이사하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호스를 끼고 누워 계시던 그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변기에 빠진 핏덩이마저 맨손으로 건져 헤집어보는 자기 딸의 애끓는 사정 말입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의 모성애가 너무 애처로우셨나 봅니다.
딸 때문에 힘든 자기 딸에게
당신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다 끊어진 명줄 한 가닥으로 간신히 버티던 어머니가
서둘러 먼저 맥을 턱 ~ 놓으신것 같습니다.
반쯤 넋이 나간 그녀가 애달파서
장례를 치르는 내내 제 마음도 허공에 붕 ~ 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도 극진하고, 딸에게도 지극정성인 그녀가
애처롭고, 딱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불현듯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납니다.
보고싶고, 미안하고 ~
그때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여한이 많이 남습니다.
휴 ~
?
이 글은 며칠 전에 봄날 수다방에 댓글로 쓴 것이야.
어디에든 토로하지 않으면 못 견딜것 같아서 늦은 밤에 썼단다.
남의 일을 통해서 자기 일을 생각하는 것이 사람인 모양이야.
장례 모시러 쫓아다니는 내내 다들 자기 엄마 생각하고 울었거든.
지나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더라.
너무나 어이없게도 나는 나름대로 효녀 축에 든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나는 언제나 내 입장에서만 엄마를 바라봤고
나이 들어가는 엄마의 입장과 처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더라고 ~
우리 아이들도 다 그렇게 할거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이듯이 내리사랑이 순리겠지.
쌍둥이를 잉태하고 친정에 와서 가만히 누워 엄마의 시중을 받는 딸도
아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가끔씩 짜증부리고 하겠지.
자기 아이가 태어나면 죽을 힘을 다해 그 아이에게 모든 진액을 다 짜 내 줄 것이고 ~
부모에게 못 갚은 빚을 자식에게 갚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홀가분하겠지?
미국 어느 대학에서 오랜 연구 끝에 밝혀낸 자료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관심과 사랑을 100으로 볼 때,
자식이 부모에게 향하는 것은 0.7에 불과하단다.
잘 생각해보니 나도 내 부모님에게 그랬어.
여든 살 넘은 노모가 환갑 먹은 자식에게 끊임없이 몸조심 해라, 차조심 해라 할 수 있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우리가 노년에 너무 슬퍼지지 않으려면 너무 자식에게 올인하지 않도록
스스로 마음 단속을 좀 하며 사는 것이 좋겠어.
너무 지독한 짝사랑은 지독하게 아픈 상처만 남길 뿐이거든.
괜히 혼자 배신감과 소외감에 슬퍼하지 않으려면 100을 다 자식에게 향하지 말고
마음 분배를 적절히 잘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환갑이 되니 철이 조금 드는 모양이야.
이번 오키나와 여행길에서 친구들과 엄마 이야기 한 것이 참 좋았어.
우리 엄마들은 얼마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사셨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라.
이미 세상을 떠나신 우리 엄마에겐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네.
아이고 참....
엄마가 돌아가신 후, 멀리 이사가는 바람에 문상을 못 한 옛 동네 사람들이
찾아오신 적이 있어.
그 중에는 엄마를 자기 엄마처럼 생각한 얼굴이 동그랗고 하얀 새댁이란 분이 있었는데.
새댁으로 우리 동네에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던 거야.
조용히 웃을 뿐 얌전한 성격으로 말이 없었어.
옆집 작은 방에 세들어 살았는데 두 해가 가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
그 시대는 그렇잖아.
우리 엄마는 그 새댁이 고운지 가여운지 그렇게 마음을 쓰시더라.
늘 챙기고 음식을 나누고 웃으며 얘기하고....
어느 날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근심을 하며 옆집에 갔던 엄마가 막 울면서
어딘가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그때 참 어리기도 하고 철도 없고 그저 노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나 보다 이런 정도 생각하고 말았는데(어른들의 배려가 있었겠지)
그 새댁이 약을 먹은 거였어.
가슴에 결혼사진을 얌전히 얹어놓고 말이지.
차를 부르고 병원으로 가고 하는 우여곡절 끝에 새댁은 살아났어.
몸조리를 하는 동안 엄마는 거의 그 집에서 살다시피 했지.
그 이후 새댁의 인생관이 좀 바뀐 것 같더라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
그 후 다른 동네로 이사 간 새댁은 그 당시 여자들이 돈을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인 계주를 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더라.
그리고 이어 이사 간 동네 인근에서 벌써 큰손이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고 말이지.
게다가 자연스럽게 아이가 들어서더니 아들을 두 명이나 낳았다고도 하더군.
그리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어.
내 어린 맘에도 그분이 이 동네에는 오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았고,
뭔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이후로 우리가 두 번이나 이사했는데 어찌 들었는지 그분이 찾아 오신 거야.
정말 오랜만에 뵙는 그분의 모습은 참 많이 변했더라.
그분은 쉬지 않고 울면서 이야기했어.
자기가 다시 <이 좋은 세상>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이미 물질적인 풍요에 익숙해 삭막해 보이는 중년 여인의 마음 속에
그래도 아까워 아끼며 행복할 수 있는 추억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한 부분을 우리 엄마가 맡아 주었다는 것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러 오신 거겠지만, 글쎄......
새댁과 중년(하긴 그때 우리 엄마가 마흔 정도밖에 안 되었네!)의 우정과
배려의 풍경이 내 마음을 오히려 따뜻하게 하더라고.
외롭고 두렵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을 배려하고 보살펴 준 엄마가
뿌듯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때 우리집에는 엄하고 고집 센 할아버지가 계셨고,
엄마는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개장국을 점심 때 맞춰 준비하시기 위해
매일 아침 설거지가 끝나면 그릇을 들고 배다리까지 뛰어가 사 오셨고,
삼촌과 함께 우리 형제 자매 다섯 명이 있었고, 오빠,언니들은 중고등학생이었고,
오빠 친구들은 우리집에 와서 살다시피 했고,
오분 거리에 큰 고모, 십분 거리에 막내 고모가 있었고,
사촌들은 우리집에서 살다시피 했고.
와우 내 기준으로 하면 기적이다 기적!
춘선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기적처럼 빛처럼 위안과 안도가 되는 순간이 있지?
너의 여행이 그랬나 보다.
다행이다!
봄날인줄 알고 들어왔네요. 댓글 봄날로 옮겨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