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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박현호>- 몽블랑

 

 

이 책은 시인 마종기와 싱어 송 라이터인 루시드 폴(Lusid fall)이 2년에 걸쳐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다.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좋아한다.

나는 그의 산문도 몹시 좋아한다.

단정하고 지나치지 않으며 올곧게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는 그의 글이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루시드 폴은 오래 전부터 마종기 시인의 시를 많이 좋아했고, 그래서 그의 시집을 거의

다 갖고 있으며 여러 편을 외우기도 하였다.

음악과 시를 좋아한 그는 서울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스위스 로잔으로 건너간다.

거기서 그는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외국에 산다는 일과, 해야 할 공부 때문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그 속에서 해 내야 할 일을 해 냈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극도의 외로움과 힘겨움 속에서 오히려 모든 것이 약분되면서 진짜 중요한 것,

즉 진짜 그리운 사람, 진짜 해야 할 일 이런 것이 보이는 거 말이다.

 

그래서 그는 대서양 너머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이제는 의사일에서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고  있는  마종기 시인에게 편지를 한다.

그리고 마종기 시인은 나이 차와 무관하게 정성껏 지나치지 않게 마음을 실은

답장을 한다.

 

마종기씨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동화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마해송씨고,

어머니는 무용가 최승희의 애제자였다.

시인이 아기였을 때 엄마가 잠 재우려고 업어주며 노래를 불러주면 자지는 않고

노래가 슬프다고 울었다 한다.

그런 감수성이 일흔 여섯인 지금도 그대로인 것 같다.

 

마종기 시인이 미국으로 건너갈 때가 1966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미국에 갈 때

주머니에 50달러 이상 있으면 안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가긴 갔는데 올 수는 없는 것이었다.

혼란한 시국 속에서 시인은 잡혀 들어갔고, 공갈과 매타작 속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외국에 나가서 죽은 듯이 있어. 절대로 다시 들어 오지 않는다고 약속해.-

그래서 그가 다시 한국에 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

 

루시드 폴은 음악과 학문을 병행하고자 노력했으나 많은 생각 속에서 자기의 길을

선택한다.  음악의 길을 가기로.

그런 갈등과 고민을 편지로도 나눈다.

 

두 사람이 나눈 편지가 어찌나 아름답고 좋은지 어제 아껴가며 읽었다.

얌전한 고집장이 예술가들.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해 하면서도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놓치지 않았던 사람들.

 

나는 사실 루시드 폴이라는 가수를 잘 몰랐고, 노래도 차분히 들어 본 적이 없다.

어제 하루종일 그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왠지 기적처럼 느껴지는 두 사람의 만남이 어찌나 보기가 좋고 부럽던지

하루종일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가슴에 안게 되는데

이 책도 그랬다.

뭐랄까.......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본 느낌이랄까.....

 

둘이 나눈 이야기 중에 여러가지 마음에 남는 것이 많지만 그 중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루시드 폴이 스위스에 남아서 공부를 더 하든지, 혹은 영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라는 교수의 권유와,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구 속에서 고민할 때 마종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해도 좋습니다만 너무 늦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 노후를 보내시기를 권합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이라는 말,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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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시인의 시 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암송한다는 시 하나 읽어 볼려?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