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도보여행가께서 알려주고 함께 신청을 해주셔서 다녀온 둘레길 걷기.

운좋게도 인천시 하고도 옹진군 북도면의 신도,시도,모도--삼도를 연결해 걷는 "해안누리길 삼형제길" 걷기 행사를

다녀왔다.


해양수산부 산하의 한국해양재단이란 곳에서 주최한 것인데

인천사람들은 삼목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면 간단하지만 대중교통 연결이 원활치 않을 경우를 생각해

집합장소인 서울역으로 갔다.

행사를 안내하는 젊은이의 조심스럽고 성의있는 자세가 말투와 행동에 그대로 나타난다.

생김새 만큼이나 반듯한 청년이다.

안개가 살짝 낀 날씨라 걷기에 아주 좋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여유있는 일정이라 바쁠 것도 없으니 선착장에 도착해서도 주변을 둘러보며 모처럼의

섬여행에 기대가 커졌다.


버스를 탄 채로 배에 오른 후,통과의례처럼 새우깡을 한 봉지 사들고 갑판으로 나간다.

각자의 양심대로 돈을 넣고 사는 무인 시스템이다.

이 동네 갈매기들은 뭔가 좀 세련된(?) 데가 있어 배가 출발 하기 전엔 차분히 배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한다.

배가 출발해야 먹을 것이 날아온다는 걸 알고 있나 보다.

과자를  던져주니 여러 마리가 단계별로 잡아채는 방식이라 한 쪽도 그냥 버려지는 게 없다.

배에 붙다시피 가까이 날며 윗쪽 갈매기가 놓친 걸 아랫쪽에서 챙겨먹는 놈들도 있고

물 속에 떨어진 것도 순간적으로 잡아채 알뜰하게 건져 먹는다.


10분도 안 되어 신도에 도착.

예약된 식당으로 가 점심을 먹는다.

식당 한쪽 벽은 통유리로 되어있어 시원한 바다 풍경과 자그마한 섬들이 그대로 액자에 든 풍경화다.

메뉴는 우럭 매운탕과 꽃게 매운탕.

각자 입맛에 당기는 걸 먹으면 된다.

모자라는 국물과 반찬을 열심히 리필해주는 성의가  보기좋다. 


선착장으로 돌아가 오늘의 행사에 대한 안내를 듣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걷기 시작.

거리도 10Km 가까이 되고 세 개나 되는 섬을 연결해 걷는다는 것도 성취감을 높여줄 듯 하다.

처음 참가하는 행사라 30명 가까운 참가자들의 성분(?)이 살짝 궁금해진다.

대부분 여행작가들과 파워 블로거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들고 온 카메라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어쨌거나 걷기에만 신경쓰면 되는 입장이 부담없고 경쾌하다.


구봉산 등산로를 오르며 가끔 눈에 띄는 건물들은 여기가 어딘가 궁금해질 정도로

양식이 굳이 말을 만들어 보자면  "스위스 스럽다".

뾰족지붕에 벽면은 나무널조각 사이딩으로 마감한 펜션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제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쓰였던 세트장이 두 군데 있어 그것도 홍보에 일조를 한다.

비록 세월 지나 방치되어 흉물스럽긴 했지만...

북도면 면장님의 호의로 슬픈 연가 세트장 내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 면한 건물은 이제라도 손질만 잘 하면 멋진 건물로 환생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안 그래도 얼마 전,감정 결과가 나와 매각을 준비하고 있단다.

능력 안 되는 문외한의 생각에도 그 값이면 아주 싸다는 느낌.

조용한 바닷가에서 아무 생각없이 쉬기에는 그만한 곳도 드물 것 같다.

세트장은 곧바로 수기해변으로 연결된다.

울퉁불퉁한 바위에는 따개비들이 빼곡하게 붙어있고 안개 속으로 보이는

강화도의 남단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이쪽에서 직접 강화도로 가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동검도도 눈 앞에 빤히 보인다.

괜히 아쉽다.


풀하우스라는 드라마 촬영 때 주연배우인 비와 송혜교가 3개월이나 묵었던 숙소임을 강조하는 펜션과

드라마 세트장 있던 자리에 세워진 위풍당당한 펜션.

주중엔 한가해도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을 하나 사려고 하니 녹았다 다시 언 흔적이 역력하다.

그나마 온전한 것으로 한 개 골라 밍밍한 물을 식힌다.


다리 건너 시도로 들어서니 해당화꽃길이 1,4Km나 이어진다.

오른쪽엔 바지락 체험장이,왼쪽으로는 염전이 펼쳐져 있다.

내년부터는 유료로 바지락캐기 체험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걷기와 체험을 어우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해당화는 한창 때를 지나 이미 붉은 열매가 맺혀있는데

가끔 철모르고 핀 분홍꽃잎이 노란 꽃술과 조화를 이루며 고개를 쳐들고 있다.

꽃 필 때 왔더라면 해당화 은은한 향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산길을 오르고 내려 수기전망대로 간다.

걷기 좋은 날씨이긴 하지만 이 대목에선 좀 더 맑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긴다.


걷는 동안 재채기와 콧물이 멈추질 않는다.

알러지 증상이라곤 없는 터라 좀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점점 심해지는 걸 보면 뭔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인자가 있는가 본데...

살다 별일을 다 겪는다.

휴지 한 팩을 다 썼다.

뭐지?

어떤 분이 혹시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버린 기름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요?

그런가?

글쎄...


펜션마당에 잔디로 만들어놓은 하트와 화살 모양이 웃음을 자아낸다.

지켜보고 있자니 여자들은 어머나! 잔디가 하트모양이네...

남자들을 아무 생각없이 밟고 지나간다.

참 다르다~


다리 하나를 또 건넌다.

바위 위에 솟아있는 나무 한 그루.

모도에 조각공원이 있다더니 여기도 바닷바람 맞으며 달려가는 두 여인네 조각상이

조금은 덜 쓸쓸한 풍경을 만든다.


모도쉼터가 걷기의 끝지점이다.

이건창이란 암행어사를 기리는 불망비도 눈에 띈다.

행사를 주관하는 젊은이들의 감사인사가 깍뜻하다.


저녁식사는 새우 소금구이와 바지락 칼국수.

여럿이 어울려 먹으니 더 풍성한 느낌.

잘 삭힌 김치의 새콤함이 슴슴한 칼국수 국물에 포인트를 준다.


7시 반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육지로 나온다.

인천 사람들을 배려해 운서역에 잠시 정차.

역주변의 호텔과 모텔은 이곳이 국제공항 근처임을 증거하듯 온통 비행기 패턴으로 현란하다.

인천 촌사람 구경한 번 잘 했네~


인천에 오래 살았어도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섬들이 있는 걸 몰랐다.

유난 떨며 새로 길을 만들지 않고도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낸 지혜도 높이 사고싶다.

접근성 좋은 곳을 놓아두고 좀 걸어보겠다고 일부러 먼 길 찾아갈 일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과격한(?) 발상까지 해 볼 정도로 이런 길을 알게된 것이 반갑고 소중하다.


널널하게 4시간 남짓 걸었더니 제대로 걸었다는 만족감은 물론이고

약간 뻐근한 듯한 다리의 통증마저도 뿌듯한 성취감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피로는 숙면에의 기대로 오히려 즐겁다.


일반적으로 직접 불편을 겪을 때 말고는 국가기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지 않나.

거창하게 새로 뭘 만들어 생색을 내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현재 있는 것에 약간의 손질을 더해

삶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배려해 줄 때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좋은 계절에 부담없이 가벼운 물병 하나 들고 걸을 수 잇는 곳이 가까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 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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