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리산까지 와준 친구들 모두 고마워.
지난 주에 일이 겹쳐서 잘 만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철쭉이 생각보다 많이 져서 절정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
대전에서 올라온 승숙이와 또 여기저기서 기꺼이 와준 친구들까지
그동안 외로움과 우울의 빛깔로 칠해져 있던 '다시, 카라의 찻집'이
그 밝은 웃음 소리에 환해지는 느낌이었어.
친구들을 떠올리고 돌아가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산본역에서 헤어지고 집에 오니 몰려오는 피곤에 눈이 내려갔지만
은혜 어머님이 떠주신 덧버선, 옥규가 준 초와 부엉이, 승숙이가 준 포도주,
더 좋은 글 쓰라고 영숙이가 준 만년필과 선희가 준 차와
와준 친구들이 한마음으로 만들어서 안겨준 꽃다발이 나를 일으켜 세웠지.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끝까지 글 써서
같이 겪어내야 하는 아픔들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가장 순수한 의지를 되살려 주고 간 친구들,
참 멋진 인일 12기 여인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눈물이 핑 돌았어.
그리고 옥규야.
'다시, 카라의 찻집'을 그 짧은 시간에 어찌 그리 많이 담았니.
냉장고는 너무 했고, 누가 보면 꽤 그럴 듯한 공간인 줄 알겠어.
어머니 친구들은 잘 다녀가셨어요 하고 묻는 아들은 내심 좋아하는 눈치던걸.
누구도 집에 들이지 않는 어미가 여고 친구들에게 문 연것만으로도
몹시 놀라워했었거든, 한편으로는 기쁘다고도 했고.
시간되시면 자기가 머무는 왜관 수도원 성물방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말까지
건네는 걸 보면서 나는 나대로 흐뭇했지.
이제는 체칠리아와 다니엘이 알베르또를 그렇게 보낸 슬픔 위에
잘 자라는 일상의 나무, 평상심의 나무를 심었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어.
여기까지 쓰고, 옥규 말마따나 빗소리 들으며 나는 또 잘게.
산림욕장과 찻집에서의 친구들 웃음 소리가 따라와 자면서도 웃을거야,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정원이네 대문 가에 피어있던 노란 수세미 꽃과 유주열매..
작은 꽃밭에 여러가지 꽃들을 예쁘게 가꿔놓으셨던
정원이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
정원이네 집과 정원이의 모습이
아득한 그 옛날의 어머니 모습이라
깜짝 놀랐어...
정원아
우리 친구들을 아름다운 계절에
너의 소중한 공간과 좋은 동네에 초대해줘서 고마웠고
애썼어~~
덕분에 이 번 기회에 새로운 많은 친구들도 모이고.
건강 잘 챙겨 좋은 글 많이많이 쓰고
자주 만나자!
정원아
피곤한데도 답글을 썼구나.
좀 잤니? 피곤이 좀 풀렸는지.....
난 갑자기 문상 갈 일이 생겨서 오늘 대전에 갔었단다.
가는 길에 네가 올린 글을 보았어.
네 글을 읽으니 마치 누군가가 등을 두드려 주는 것처럼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어.
오늘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들고 갔는데
세 꼭지 쯤 읽다가 잠이 들어버렸어.
햇빛이 강해 눈이 아파 눈을 뜨니 대전이더라.
오늘은 그 책의 내용이 왜 그렇게 마음에 다가오던지....
같은 책이라도 좀 싫증이 날 때도 있고, 마음을 칠 때가 있는데
오늘은 읽는 것마다 그렇게 마음을 치더라.
작가가 10대에서 20대의 마음의 흐름을 쓴 책이라서인지
아니면 옛친구인 우리들이 어제 만났었기 때문인지
남의 일 같지 않고 남의 생각 같지 않고 남의 경험 같지 않더라.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문장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 읽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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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쓸쓸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 옛일을 생각해보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어린 시절이 지나고 옛일이 그리워져 자주 돌아보는 나이가 되면 삶에 여백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 빈자리들이 그리워질 때면 이렇게 시작하는 두보의 시 <뜰 앞의 감국 꽃에 탄식하다>를 읽을 만하다.
처마 앞 감국의 옮겨 심는 때를 놓쳐
중양절이 되어도 국화의 꽃술을 딸 수가 없네
내일 쓸쓸한 가운데 술에서 깨고 나면
나머지 꽃들이 만발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그렇게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국화꽃 떨어지듯 하나 둘 사라져 갔다.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술을 마시자면 가을 내내 술을 마셔도 모자라겠지만, 뭇꽃이 무수히 피어나고 떨어진 그 꽃 하나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음날 쓸쓸한 가운데 술에서 깨어나면 알게 될 일이다.
가을에는 술을 입안에 털고 나면 늘 깊은 숨을 내쉬게 된다.
그 뜨거운 숨결이 이내 서늘한 공기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동안 허공 속으로 흩어진 내 숨결들.
그처럼 내 삶의 곳곳에 있는 죽음들.
가끔 그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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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 베란다 예쁜 화분에 비치는 햇살이 그리 정결한 책상.
여러가지 색깔로 너를 감싸고 있는 거실과 방.
묵묵히 지켜보는 성상과 책들.
그래도 나는 너의 집 문을 열면 왼쪽으로 그득히 보이는 그 푸른 숲색깔이
너의 마음에 더 많이 가득하길 바란다.
아름다운 너의 미소와 함께.
빗소리 들으며 더 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