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늘 소외되어 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울려 있는 듯해도 그것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밭에 꽃이 피었을 때나 실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을 때 들리는 환호도 그것을 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찬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여 쓰러진 날이면 온갖 원망과 지청구는 다 지주목에게 퍼붓는다.
그리고 그것의 정수리가 뭉개지도록 망치질을 한다.
뿌리와 줄기와 잎을 갖추고도 제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하다가 지주목까지 덩달아 넘어지게 해도
고춧대나 토마토 넝쿨을 나무라지 않는다. 지주목을 꺾어진 나무 막대쯤으로만 여겨
그것의 희생을 당연시 한다.
나는 끼니를 지을 때마다 작은 텃밭을 한 차례씩 돌았다.
늘 끼고 다니는 *종댕이에 고추와 오이와 가지, 토마토를 똑똑 따 넣었다.
고춧대나 토마토 넝쿨만 이리저리 살필 뿐, 발목이 묶이고 넝쿨이 감겨 운신할 수 없이 조여드는
지주목엔 무심했다.
느지막이 온 태풍이 가을비를 몰고 왔다.
비가 지나간 며칠 사이에 밭은 앙상해졌다. 벼르던 일을 해야 한다.
고추와 가짓대를 뽑아냈다.
토마토 넝쿨을 걷고, 대나무 장대를 친친 감고 올라간 동부콩 넝쿨을 잘라 서리서리 말아 던졌다.
몇 포기씩 되지 않아도 그 잔해 더미는 부스스한 채 제법 컸다.
장화 신은 발로 꾹꾹 밟으니 힘없이 부러지고 납작해졌다.
찬란하게 한 철을 보낸 작물은 그렇게 떠났다.
그제야 빈 밭에 남은 지주목에 눈길이 머문다.
버텨 줘야 할 것도 그것의 몸을 의지하여 감아 올라 갈 것도 이제는 없다.
헌데 날아갈 듯 홀가분하게 보여야 할 지주목이 오히려 춥고 신산스러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명분을 잃은 지주목은 밭고랑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지주목도 한 때는 푸른 잎으로 하늘을 향해 크고 있었다.
뿌리는 굳건했고 가지와 잎은 건실했다.
대숲이 바람에 부대끼며 서걱대는 소리는 아랫동네까지 들렸다.
하늘을 나는 방패연의 연살이 될까, 어깨를 감싸 안은 연인이 받쳐 든 우산의 손잡이가 될까,
꿈 꾸던 때도 있었으리라.
대나무의 그런 꿈을 지난 봄에 꺾었다 .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고추나 가지는 철제로 만들어 파는 지주대로 감당이 되었다.
하지만 토마토나 동부콩 넝쿨은 그런 지주대의 키를 훌쩍 넘었다.
나는 남편을 부추겨 뒷산 대나무 숲에서 어린아이 손목 굵기만한 대나무를 서너 주 베게 했다.
이제 막 넝쿨손이 뻗기 시작하는 포기 옆에 지주목을 세워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굵직한 왕대는 아니라 해도 기개 높은 대나무가 한해살이풀을 떠받치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기껍기야 했으랴. 다행히 그것을 의지하고 무럭무럭 커 가는 것들을 보며 자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다고 위로 삼았을 것이다. 뿌리가 끊어지고 가지가 잘려 더 이상 키가 자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두커니 서서 기억 속에 묻어 둔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삶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자식들 건사하기도 힘겨운 처지건만 시집 간 고모가
사흘돌이로 와서 "사네, 못 사네." 신세타령을 늘어 놓았다. 막내 삼촌도 걸핏하면 찾아와 돈 아쉬운 소리를 했다.
모두가 푸념을 하며 기대기만 할 뿐,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나눠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여름날 찐 옥수수 소쿠리를 놓고 둘러앉아도 아버지는 옥수수 한 자루를 집어 들고 한쪽으로 나아 앉으셨다.
작은 흑백 텔레비젼 앞에 모여 앉았을 때도 아버지는 신문을 펴 들고 계셨다.
합격을 했거나 내 집을 장만했다는 소식도 어머니에게 알려 아버지에게 전해졌다.
즐거운 일은 우리끼리 즐겼고, 힘들 때는 아버지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달라고 졸라댔다.
서운해 하거나 괘씸하다고 표현하신 적이 없으니 으레 다 그러는 줄 알았다.
내가 스무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다.
아버지가 소년 시절에 삼국지를 읽고 나서 중국 대륙을 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간신히 여비를 마련하여 길을 나섰다. 하지만 소년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도중에 발길을 돌렸다.
가던 길에 만난 사람들로부터 중국 곳곳에서 마적단을 만나 희생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불행한 일이 닥친다면 못 돌아 올 자신보다 홀로 계신 어머니와 동생들 걱정이 컸다.
열다섯 살 소년은 할 수 없이 포기했다.
그 후 아버지는 "그때 내가 중국 대륙을 돌아보고 왔더라면 내 인생이 크게 달라졌을 것" 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성장기를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보냈고, 청년기에 육이오 동란을 겪으며 아버지는 꿈보다 생존에 전념해야 했다.
어수선하던 시기에 혼인을 했고, 전후(戰後) 연년생이다시피 태어난 다섯 자식은 아버지를 더욱 옥죄었다.
아버지의 꿈은 점점 깊숙이 묻혀 버렸다.
콩 넝쿨이 지주목을 붙잡고 크는 것처럼 우리는 아버지를 지주목 삼아 의지하고 컸다.
이제야 지주목의 힘든 세월을 헤아리게 되었고, 묻어 두었던 꿈을 아는 척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이미 먼 길을 떠나시고 안 계시다.
지주목을 한 곳에 모은다. 긴 것은 긴 것대로 짧은 것은 짧은 것대로 묶어 정갈하게 갈무리 한다.
아버지에게 못한 말을 지주목에게 대신 하려는데
입안에서 뱅뱅 도는 그 말을 끝내 뱉지 못한다
*종댕이 : 작은 바구니를 일컫는 경기지방의 방언
????
스마트폰이라 본문은 못읽었네
공식 수필가가 되려한다는 기미는 눈치채 반가운 마음에 축하하오
칼칼해야할 때 그리할 수 있는 그대,사려깊은 게 뭔지 알 것같은 그대
좋은 글을 많이 쓰기를 기원해요
찬정아~
지주목에 아버지를 연상시킨 글 ~ 맘이 찡하다.
나도 많은 식구에 친척까지 두루 돌보셨던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너의 글~ 추천 되고도 남지~
몇번 추천되어야 수필가로 활약할수 있는가 보지?
축하 축하~박찬정 수필가로 이름 날리기를 ~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 찬정이의 눈을 통해
내 맘속 한 귀퉁이를 느껴보았네..
항상 좋은 글 써준 찬정이~~
좋은 소식 계속 될거라 생각한다~~ 축하해!!
아버지의 큰 사랑으로 대륙의 맘을 가진 그대....
작은것 하나 놓치지 않는 예리한 감성으로
앞길을 먼저 가는 선배의 발자욱과 함께
승승장구 건필하기 바라오.
훌륭하신 아버지 그늘에서 잘자란 찬정이
주변도 돌아보며 오늘날 잘 살고 있네요
이 글을 읽으며 문득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불효한게 많네요
오늘은 기도를 해야겠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역쉬~~
정감나고 추억을 더듬게 하는 찬정이의 글~~~
나도 아버지를 생각했단다.
시절을 잘 타고 났음 좀 더 큰 사람이셨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지~~
애잔하다~~
이미 나도 오십대 후반을 훌쩍 넘겼건만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아직 그때 그모습으로 정지되어 있구나~~
우리들만 박찬정의 글을 보는 게 늘 아까웠지.
누군가가 벌써 찬정의 글곳간을 들여다 보았나 보다.
당연한 일이지.
더욱 더 잘 다듬어진 글들을 볼 수 있을 테니 정말 기쁘고 즐겁네.
참 기쁘고
많이 많이 축하해요.
우물쭈물하지 않고 노력한 박찬정에게 박수 박수!
우리 봄날은 원래 온라인 모임이지.
한 분이 쓰신 글에 공감한 또 한 분이 글을 쓰고
그 글에 이어 이어 우리들이 엮어진 거지.
그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때 우리는 정말 얼마나 재밌고 좋았는지 몰라.
누가 보는 줄도 모르고
그런 거 생각도 안 하고
마치 처음 여는 세상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냈지.
그런 것이 서로 닿았고
그래서 만난 거야.
그때 같이 글을 쓰진 않았지만
너무나 좋아하고 열심히 빠져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아직도 줄줄 외우는 사람도 있지.
그런 분들은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봄날에 들어오셨고.^^
10년이 흘러 해외여행도 같이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걸 상상도 하기 어려웠지.
그런데 이렇게 되었네.
참 고마운 일
감사합니다~~
여러 선배님들 그리고 ~
수줍음 많은 제가 마음 속내를 글로 써서 세상에 흘릴 수 있었던 데에는
봄날의 힘이 컸습니다.
어느 때는 거친 욕도 하고, 야죽거리기도 하고, 삿대질도 서슴치 않았는데
그런 저런 것들을 봄날님들께서 어루고 덮으며 격려해 주신 덕분에
두 다리 뻗고 넋두리도 할 만큼 용기가 생겼습니다.
토깽이가 10주년이 된 봄날?과 더불어 철이 들어 간다는 의미로 봐주십시요.
?찬정아♥ 지주목이 무슨 나무인가 하고 읽다가 눈물 난다 ~~~~~ 훌륭한 글 많이 쓸 거야 이미 네가 쓴 감동글들 많이 읽었어 ♥♥♥♥♥
거제댁 찬정아~축하축하해!!!
쓴소리에,
바늘로 콕 찌르듯,
너의 글을 읽다보면 웬지 시원했단다.
그러더니 드뎌 작가 선상에!!!
네 글을 읽다보니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맘 고생하시던 그 아버지가 떠오르네.
얼마나 힘드셨을텐데....그저 미웠던거야.
그 아버지가 무능해 보였으니
많은 자식 키우는 것도 오로지 엄마 몫이 되었으니......
이 시각 그 아버질 많이 미워했던것이........
지난해 시월 써 놓았던 것인데
계간수필 봄호에 초회 추천작으로 실렸습니다.
올해안에 천료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부모님 슬하에서는 천둥벌거숭이 처럼 자랐고,
성가(成家)후에는 제 자식 키우랴, 살림 일구랴 모른 척 하고 살았지요.
나이 들어 가니 서운한 일이 있어도 서운타 하시지 않고,
힘들어도 힘들다 내색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