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좀 어려운 일이 많았던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의 100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느라 그 전 해에 너무 많이 힘들어서인지

후유증이 있었다.

 

눈에 문제가 생긴 건 꽤 되었는데 100주년 준비를 하느라 내 몸 돌볼 사이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몇 명이 모여 책을 보는 모임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그 시간이 되면 눈이 많이 쑤셨다.

그래서 왼쪽 눈에 손을 가만히 대고 있기를 자주 했다.

 

그 전 해에 지리산에 갔다가 딴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 길에

앞에 있던 굵은 나뭇가지에 왼쪽 눈을 정통으로 부딪쳤다.

안경을 썼지만 얼마나 세게 부딪쳤는지 눈알이 터졌을 거라 생각하고

뭔가 흘러나오겠지 하면서 일행들 몰래 눈 아래에 손을 댔었다.

눈 생각은 안 하고 안경 부러졌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에

비뚜러지긴 했지만 부러지지 않은 안경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종주의 기쁨에 좋아서 병원 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운전을 하는데 안내판이 이중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뭐든지 두겹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직선은 모두 구불구불하게 보이고.

모니터 글씨가 가장 보기 힘들었고.

그래서 한 눈을 가리고 일을 했다.

 

학교에 있으면 거의 모니터 앞에 하루종일 있어야 하니까.

학기 초나 시험 때, 그때 그때 해야 할 일들이 몰릴 때는 눈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몸이란 게 우스워서 불편한 것도 되풀이되면 또 그것에 익숙해져서

한 눈을 가리고 보는 것도 익숙해지네 하며 3년 정도를 보냈다.

안되겠다 하고 안과에 가서 검사를 해 보니 망막 굴절이 심해서

한 6개월 정도 후에 수술하자고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작년에 수술을 했다.

이것은 더 나빠지지 않는 수술이지 낫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의사가 말하더라.

전신마취를 하고 진행된 수술 결과는 매우 좋다고 했다.

사진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좋다.

 

그런데 왜 눈이 계속 이럴까요라는 질문에 그 의사는

뼈가 부러져서 깁스를 하고 다 붙으면 의학적으로는 다 낫다고 말하지만

환자는 걸을 때 불편함을 느끼고 뻐걱대는 느낌을 갖는 거와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더라.

아하!

 

사실 내 수술은 문제도 아니었다.

내 가까운 거의 가족과도 같은 동료 두 명이 거의 동시에 투병을 하게 되었다.

더 심한 병을 가진 사람은 의연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그 힘든 치료를 받고 있고,

약으로도 어떻게 하기 어려운 위무력증이라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 사람은

너무 심하게 마음앓이를 하며 투병을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책꽂이에 같은 주제의 책들이 꽂히기 시작한다.

이른바 죽음학.

난 늘 살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잘 먹고 늙고 아프고 하는 일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처럼

잘 죽는다는 것도 매우 매우 중요한 일인데

왜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터 놓고 그야말로 어른다운

담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 공부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슬픔과 두려움이 너무 커서?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도 아닌데.

게다가 다른 일과 달리 너무나 많은 고통이 수반되고,

남의 도움도 몇 배로 받아야 하는 일인데.

그냥 간단히 그저 상황이 되면 그때 생각해 보자 하기에는 너무 많은 공부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인생의 마지막이기에 더 중요하게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 말이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이 사람은 의사인데 자기 자식들에게 자기가 만약 투병하게 되어 어느 정도 

막판에 이르게 되면 어떤 의학적 조치도 하지 말라는 약조의 글을 공증하여

액자 뒤에 두었다는 것을 읽었다.

난 공감을 했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갔을 때 마취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목 아래를 뚫어

호흡기를 낀 건지 뭘 낀 건지 모르지만 암튼 그런 조처를 하는 것을 봤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막 손을 휘저으며 고통을 표현하셨다.

코에다, 팔에다, 목에다, 소변줄기까지.

그리고 일주일을 더 지내시고 가셨다.

 

고광애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2000년에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라는 책을 냈다.

그리고 근 20년간 죽음을 화두로 잡고 올바른 죽음 준비를 위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다. 강의도 하고 책도 냈다.

그분의 책을 봤다.

가벼운 산책을 하듯 심상하게 글을 써내려 갔다.

제목은 <나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하여>

 

뭐 아름다울 것까지야....

아름다울 수는 없지. 너무 아프고 힘든 일 투성인데.

원초적인 퇴행이 수반되는.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준비하는 자세는 너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일 것 같다.

 

가족의 투병을 돕느라 너무 고생을 하는 친구가 얼마 전에 종교 기관에서 하는

죽음 세미나에 다녀 왔다고 한다.

7번으로 이루어진 그 세미나에서 그 친구는 너무나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원치 않는 이별은 정말 누구에게나 너무 슬픈 일이다.

하지만 슬프다고 없는 건 아니다.

슬퍼하느라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혹은 간병하느라 혹독한 노동에 지쳐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그토록 가슴이 아팠던 엄마나 형제나 친구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리워 할 때는 마지막 모습과 함께 그들의 원래 모습이 떠오른다.

같이 웃었던 기억, 마음을 나누던 시간, 서로 바라보고 편했던 그 시간,

그들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던 시간, 모습.

좋은 기억은 힘이 세다.

 

우리 동기 누가 치매를 앓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어머니를 품 안에 안고 조용히 이야기하며 편안히 가시게

한 후 한참을 안고 있었다 한다.

그리고 혼자서 조용히 깨끗이 어머니를 닦아드리고, 옷도 잘 입히고, 머리도 깨끗이 다 만지고나서 가족들을 깨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마음이 좋았어 이렇게 말했다.

 

연초에 뭐 이런 황당한 얘기? 하겠지만,

그냥 얘기하고 싶었어.

같이 산책하는 친구랑은 늘 얘기하기 때문에 난 익숙한데

좀.... 불편하니?

어때?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아이디 비번 잊어버려서 못 쓴다고?

알았어!^^

아무러면 어떻겠니~

 

암튼 좋은 1월 잘 지내시고 3월이 되면 신년회에서 봅시다.

 

 

광장시장 순대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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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석에 할머니고 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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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 쌓인 바위도 있고

그곳을 오르는 이들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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