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회 - 아이러브스쿨 게시판담당 : 김영자
아래 명제 글(=살아갈 용기)에 댓글을 쓰려고 하니.... 홈피가 고장났는지, 댓글 쓸 칸이 안뜨네.
이리저리 해보다가, 생각해 보니... 윤여사의 특기가 발동한 것 같다(=명제가 댓글쓰기 방지를 한 것 같음)
우리 과 대학동기들이 소식이 뜨마직한 채로 각자 명성올리기에 급급한 것 같아
연전에 선언하기를, 당분간 내가 반장을 하겠다.... 하였고(ㅎㅎ 여성 나 한명), 그 이후 모이고 친해지고 옛 우정을 조금씩 되살리고
있다. 며칠 전에는 아주대학교 생물학과와 환경공학과의 교수로 있는 두 동기를 방문하고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교수들 연구실은 모두 특색이 있고 주인의 개성과 정체가 여실히 나타나는 중에.....
한 연구실에 서양남자 두분과 김근태 님의 사진액자가 걸려 있는데, 방 주인이 퀴즈를 내었다.
저 세사람의 공통점을 알아맞춰 보세요.
서양사람 한명은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 또 한분은 크레이그 벤터라고 휴먼 지놈을 완벽하게 해독한 생물학자!
뭐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니 답을 알려달라 청하였는데
이 세분은 죽음을 극적으로 탈출한 분들이라는 것.
이분들이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은 힘은?........바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그것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근태 님은(=인일인 인재근 의원 부군) 남영동 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는 중에 <고문은 없다>라고 공언하는 집권당에 맞서기 위해
전기고문으로 떨어져 나간 자기 발뒤꿈치 살점을 죽어도 손에 쥐고 나와, 만천하에 고발했다고!
빅터프랭클은 자기만의 심리학 원고를 거의 다 완성했는데 나치에게 빼앗기고 죽음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후
그 원고를 완성하기 위한 열망으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음.
-생각할수록 너무나 하고 싶고,
-아무리 생각해도 꼭 해야만 하겠는데....
-나 아니면 할 사람도 없는... 그 것, 그 일.
벤터의 삶의 여정도 매우 놀랍다.
1946년생인 벤터는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고 사춘기가 지나서는 통제 불능의 삶을 살았다.
즉 범생이도 아니고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벤터는 월남전에 참전하는데 3년 동안 생사를 넘나든 경험은 그가 삶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됨.. 고교 성적이 워낙 안 좋았던 벤터는 제대한 뒤 그저그런 전문대를 거쳐 일반대학에 편입했고 1975년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등생으로 곱게 자라 탄탄대로로 학위를 받은 많은 연구자들과는 달리 벤터의 이런 인생역경은
기존 방법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개척자의 태도로 이어졌다. 벤터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있으면서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발현서열꼬리표(EST) 방식을 개발해 유전자를 대량 발견하는 길을 열었다. EST는 유전자가 발현된 mRNA를 주형으로 역전사를 시켜 cDNA를 만든 뒤 그 서열을 분석해 유전자를 밝히는 방법이다.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인간게놈을 분석하는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개발한 방식이 바로 산탄총 염기서열 분석법(shotgun sequencing)이다. 게놈을 마구잡이로 조각낸 뒤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그 데이터를 컴퓨터가 재구성해 게놈 전체의 염기서열을 알아내는 산탄총 염기서열 분석법은 일종의 거대한 조각퍼즐(무려 2600만 개!)이다. 반면 인간게놈프로젝트 컨소시엄의 경우 게놈의 지도를 그려놓고 하나하나 염기서열을 분석해가는 방식이었다. 안 될 거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벤터는 산탄총 염기서열 분석법으로 인간게놈을 분석했고 그 뒤 이 방법은 게놈 연구에 널리 쓰이게 됐다.
한편 벤터는 2007년 자신의 개인 게놈을 분석해 공개했다. 세계 최초로 밝혀진 개인 게놈이었다. 현재 벤터는 비영리연구소인 J.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를 차려 합성생물학 연구에 열정을 불사르고 있으며 1998에는 그 유명한 바이오벤쳐 셀레라 제노믹스 대표.
나는 배재 생물학과/생물의약학과 30주년을 맞아 1번의 학과창설교수로서 <과연 배재Bio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동문박사들에게
돌렸는데, 바로 크레이그 벤터가 답! 우리는 비단길 탄탄대로가 앞에 깔려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 바이오가 좋아 목숨을 걸고
크레이그 벤터처럼 배수진의 이노베이션을 한다.
저 얄미운 김 상무 면전에 언젠가 사직서를 던지고 물처럼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리라 다짐했던 최 과장에게 후지와라 신야는
죽기 전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뒤 카메라 한 대 메고 7년간 인도를 걸었던 남자.
'인도방랑'이란 책으로 1970년대 인도 여행 붐을 일으킨 그는 티베트·네팔·터키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을 섭렵한 사나이였다.
"여행은 지기 위해, 좌절을 맛보기 위해 한다"는
고수(高手) 중 고수에게 자신의 갈 길을 묻고 싶었던 최 과장은 마침내 그 소망을 이루었다.
신야가 제주 올레에 온 것이다.
제5회 월드 트레일즈 컨퍼런스에 특별 연사로 초청됐다. 검정 코트, 검정 중절모에 빨간 머플러,
앞코 뾰족한 가죽 구두를 신고 나타난 칠순의 방랑자는 "천천히 걸으면 멀리 갈 수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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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에 붉은 머플러라니요.
"'늙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늙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여행을 하십니까?
"사람은 눈을 감기 직전까지 여행할 수 있습니다."
―바람·돌·여자가 많다고 해서 제주를 삼다도(三多島)라 부릅니다.
"천국이 바로 여기 있었군요."
―물처럼 바람처럼 살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아내와 아이들 사진을 지갑에 넣어 다니는 남자치고 진정한 방랑자를 본 적은 없습니다만."
―음식과 여자를 좋아해야 여행을 오래 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 남자의 배기량이 얼마인가에 따라 다르겠지요. 5000㏄ 버스라면 여러 사람을 태울 수 있지만 500㏄ 자동차라면 글쎄요."
―저의 배기량이 이렇듯 졸아든 건 우악스러운 제 아내 탓입니다.
"여자이기를 포기한 여자보다 세상에서 강한 것은 없습니다(웃음)."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은퇴 쇼크'에 시달리는 남자가 많습니다.
"자기 인생이 아니라 회사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지요. 일벌레일수록 회사를 떠나는 순간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아직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은퇴 후에도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서 회사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주변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고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말했지요. 회사 앞을 배회하는 대신 당신이 살았던 고향의 지도를 그려보라고요. 사람이 가장 자기답게 사는 기간은 기억이 생기는 서너 살 때부터 10대 후반까지 고작 십몇 년에 불과합니다. 지도를 들고 자기가 살던 집, 다니던 학교, 추억이 어린 장소들을 찾아가 보세요. '자기다움'을 회복하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이 보입니다. 40년간 오로지 회사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말 한마디, 손짓 하나, 걸음걸이 하나까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머리만 가지고 살았던 인생을 온몸, 육체를 활용해 사는 삶으로 바꿔보십시오. 바벨이나 골프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 팔과 다리로 밭을 일궈 열매를 거두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지요. 몸의 녹슨 부위가 사라지고 새 살이 솟아날 겁니다."
―나이 듦이 서글프지 않습니까?
"머리숱이 많은 사람을 보면 부럽기는 합니다(웃음)."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흠칫 놀랍니다. 시푸르던 나의 청춘은 어디로 갔나 싶어.
"여인은 어릴 적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게 아름답지만 남자 얼굴엔 인생이 담겨야 합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남자가 되도록 노력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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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병중에 계시니 죽음을 자주 생각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99세에 웃으면서 돌아가셨습니다. 나의 형은 59세에 폐암으로 고통스럽게 죽었지요. 죽음의 모습은 여럿이지만 무(無)로 돌아가는 모든 죽음은 숭고합니다."
―갠지스 강변의 개들이 시체를 물어뜯는 당신의 사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인도의 바라나시는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느낀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찾아오는 성지(聖地)입니다. 한 힌두교 승려가 강변에 누웠지요. 나는 그 승려가 언제 죽을지 대머리독수리처럼 앉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쯤 지나자 몸을 하늘로 향한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거두더군요. 이전에 나는 죽음의 신(神)이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승려의 임종을 보고 인간이 스스로 죽음의 신을 찾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한없이 슬프고 절망스러울 땐 어찌해야 합니까?
"온몸이 말라버릴 정도로 우십시오. 그 눈물이 땅에 떨어져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겁니다."
―저를 좀 응원해주십시오.
"세상엔 위대한 삶도, 시시한 삶도 없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14년 1월 20일)
어쩔 수 없이.... 크레이그 벤터 에 대해 교보서적에서 올려 놓은 서평 등 글을 좀더 찾아 보았다.
세계 최초 인간 게놈지도 완성의 주인공.
1946년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태어난 그는 1975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생리 및 약리학 박사를 취득하고, 버펄로 뉴욕 주립대학교 의학부 교수를 지냈다. 국립보건원NIH 연구원, 비영리연구소 TIGR 소장, 벤처기업 셀레라 지노믹스 사장을 지내면서 게놈 연구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게 된 그는 마침내 2000년 6월 31일 백악관에서 인간 게놈지도 완성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현재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미생물 게놈 연구와 인공생명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동안 발표한 논문으로는 160편이 넘으며, 2000년 파이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유전자왕’, 미국 <포천> 선정 혁신기업가 등 그를 수식하는 문구들에서 그가 과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http://www.alifedecoded.org 책 속으로
164p. 유전학자들은 DNA 조각과 형질의 관계를 찾아내는 것에만 만족하고 더는 파고들지 않는 사람이 많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유명인사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감탄하는 것과 다... 더보기
164p. 유전학자들은 DNA 조각과 형질의 관계를 찾아내는 것에만 만족하고 더는 파고들지 않는 사람이 많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유명인사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감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말이다. “이 친구는 마돈나를 안다구!” 하지만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더 깊숙한 곳까지 알고 싶었다.
184p. 인간유전학자 가운데는 질병 유전자를 찾아내는 시합에서 얼마나 빨리 결과를 얻는가보다는 자신이 이기는가 지는가에 더 관심을 두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 자기들이 영예를 얻지 못하면 유전자를 더 빨리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더라도 인정을 하려 들지 않았다.
197p. ‘훌륭한’ 아이디어를 ‘위대한’ 아이디어로 만드는 건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는 방법인 것이다. …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진하지 못하는 사이 다른 사람이 비슷한 영감을 얻어 이를 입증해내는 일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진화의 개념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다윈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에 걸친 연구와 저술을 통해 아이디어의 타당성을 뒷받침했다.
210p. 문제는 느리고 지루한 낡은 방식을 어느 연구자가 가장 잘 견디느냐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유전학으로부터 핵심적인 통찰을 이끌어내어 최대한 빨리 임상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등반객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하루 종일 산을 오른 강인한 구급대원에게 감명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헬리콥터를 타고 2분 만에 도착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454p. “ … 인간 게놈을 해독하면 생명의 신비가 사라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시인들은 게놈 염기서열 분석이 ‘영감을 고갈시키는 환원주의의 사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유전부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생명이 없는 화학물질입니다. 이로부터 측량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이 생겨나는 복잡하고 신비로운 과정은 앞으로 영원토록 시인과 철학자에게 영감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509p. 최초의 인공 게놈인 자연 생명체의 축소판은 겨우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 … 진화의 새로운 국면, DNA로 이루어진 한 종種이 컴퓨터 앞에 앉아 다른 종을 만들어내는 날을 맞고 싶다. 나는 진정한 인공생명을 창조해서 우리가 생명의 소프트웨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러면 삶을 해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삶을 이해하는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인간 게놈을 해독한 것은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서 벌어질 혁명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크레이그 벤터는 대기와 바다의 미생물 게놈에 눈을 돌렸고, 인공 생명체 창조를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모든 계획은 21세기의 가장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잠재력을 지닌다. 2009년, 그가 다시 한번 ‘게놈의 기적’을 일으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게놈의 시대를 앞당긴 결정적 사건
“미국연구진, 감기바이러스의 게놈 해독 성공” “김성진 박사, 세계에서 네 번째로 게놈지도 완성” “개인 게놈 해독비 1000달러 시대 도래” “생명 2.0시대는 머지않았다” …
이 기사 타이틀들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보도된 것들이다. 일반 대중은 게놈 연구의 난해함과 윤리성 논란 사이에서 헤매는 동안 첨단과학 연구진은 성큼성큼 미래를 앞당기고 있다. 사실 게놈 연구에 가속도가 붙은 전환점을 알려면 2000년 6월 일어난 한 사건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 최초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 인간의 수명 연장과 질병 정복의 꿈이 시작되고, 개인별 맞춤의학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물려받은 생물적 본성은 이제 더는 숙명이 아닌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생명공학의 최전선에서 21세기를 이끌어가는 과학자로 손꼽히는 인물, 크레이그 벤터다.
유전체학으로 세상을 바꾼 크레이그 벤터
현재 생명공학을 논하는 데 있어 크레이그 벤터의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유전자왕’, 미국
사실 크레이그 벤터는 어린 시절 자유분방한 가정교육 덕분에 호기심과 모험심은 남달랐지만, 학업에 흥미가 없어 그다지 주목받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군 의무병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뒤 인간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때 정립된 가치관 때문에 대학생 때 반전시위를 주도하기도 한다. 과학과 의학의 매력에 푹 빠져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한 크레이그 벤터는 곧 재능 있고 거침없는 과학자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국립보건원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그는 1991년 발현 서열 꼬리표(EST)를 사용하는 혁신적인 기술로 신속한 유전자 분석에 성공하고, 1995년에는 자신의 연구소 TIGR에서 역사상 최초로 생물의 게놈(하이모필루스 인플루엔자이)을 해독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번 성공을 발판으로 전체 인간 게놈을 해독한다는 훨씬 야심만만한 목표를 세우게 되는데, 수십억 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인간 유전 부호는 인간 능력과 컴퓨터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이 될 터였다. 벤처기업 셀레라 지노믹스를 세운 그는 정부의 후원을 받는 인간게놈프로젝트(HGP)보다 더 빨리, 더 적은 비용으로 목표를 이루겠다고 공언한다. 그리고 2001년은 결국 그의 예언이 실현된 해가 되었다. <사이언스>에 인간 게놈지도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예상 기간 10년을 5분의 1로 앞당긴 성과였다.
생명공학의 최전선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생명공학의 역사는 크레이그 벤터를 기점으로 새로 쓰였다
인간 게놈지도를 최초로 완성한 크레이그 벤터,
환경,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게놈의 시대를 열다
2000년 6월, 과학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세계 최초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 인간의 수명 연장과 질병 정복의 꿈이 시작되고, 개인별 맞춤의학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현재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핫이슈, 크레이그 벤터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에는 저자가 주목받지 못했던 학생에서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여정과, 생명과학 최전선에서 게놈 연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하고 숨 막히는 사건들이 담겨 있다. 크레이그 벤터의 비전과 통찰력, 연구자이면서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유전체학의 흐름과 전망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정부 게놈 연구《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은 이 치열하고 숨 막히는 연구 과정을 뒤쫓는 최초의 기록이다. 크레이그 벤터의 비전과 통찰력, 연구자이면서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유전체학의 흐름과 전망을 파악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비행기를 따라잡겠다고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던 장면부터 미생물 게놈 연구를 위해 또다시 바다를 항해하는 장면까지, 저자는 자신의 일대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소년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가는 데 무엇보다 끈기와 도전정신이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서울의대 서정선교수도 벤터에게는 “'모험심과 성취욕'이 특별히 강화된 유전자”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오늘날 과학 연구의 적나라한,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사실 크레이그 벤터와 그를 도운 여러 헌신적인 연구자들의 거침없는 행보 앞에는 금전 문제, 정치적 음모, 명예 다툼 등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저자가 기존의 통념에 저항하고 비판을 잠재우는 과정은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콜린스를 비롯한 정부 게놈 연구 진영 저자들의 책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실제 사실을 유추해보게 한다.
또한 본문 중간 중간 나오는 박스글에는 저자 본인의 DNA를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흔히 알고 있는 유전자 상식을 뒤집는다.
‘게놈의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인간 게놈의 해독은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서 벌어질 혁명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이 책 마지막 장에 썼듯이, 크레이그 벤터는 대기와 바다의 미생물 게놈에 눈을 돌렸고, 인공생명체 창조를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모든 계획은 석유고갈 문제, 환경오염 문제 등 21세기의 가장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2009년 전망을 다룬 기사에서 크레이그 벤터에 의해 인류 최초 인공생명이 탄생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바다로 나가 항해를 하며 마음을 다진 크레이그 벤터, 어쩌면 그는 비바람과 파도로 가득 찬 과학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과학 항해자’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게놈의 기적’을 일으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벤터의 비전과 모험심이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산업을 일으켰듯이, 우리나라의 유전체 연구도 세계적으로 우뚝 서서 인류 사회에 공헌할 수 있기를 바란다.”
_ 서정선(서울의대 교수)
“벤터의 특이한 인생유전은 인간의 창의성과 담대함이 얼마나 원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_ <주간동아>
“이 책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위대한 인물인 한 과학자의 삶과 정신을 보여주는 창이다.”
_ <사이언스>
“벤터는 공격적이며 오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 교향곡의 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벤터 덕분이다.”
_ <타임>
“학계로부터 거부당한 좌절감, 그리고 경쟁심리가 불러일으킨 열정이 벤터를 이끈 원동력이다.”
_ <뉴욕타임스>
“거대 과학에 몸담은 이들이 펼치는 갈등과 음모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_ <커커스 리뷰
-살아남는 힘
-살아갈 용기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화두를 직면하게 된다.
-일과
-사람을 만나면서
-본인의 의지로 이 <일과 사람>을 취사선택하므로서, 우리 삶은 시간에 따라 쭈욱 엮어져 나아간다.
나이가 60이 넘고보니, 우리 형제들의 선택은 어떠했나 그 will을 돌이켜 보게 된다. (위 세분을 보니 주변환경 문제는 will을 못꺾음)
-큰언니 유명애 님은 수도사대 미술과를 다녔는데, 수석입학이요 졸업 시 금메달리스트였다. 만일 언니가 대학원 진학을 하고
교수요원이 되었다면? 지금쯤 세종대학교 총장은 기필코 하였을 그릇. (그러나 언니는 중학교 미술선생님을 거쳐 결혼 후에는
사임하고 주부화가의 길을 선택함) 더우기 서울대 미대는 화풍이 추상/비구상이요 수도사대는 언니와 똑같은 화풍의 따듯한 구상
이었으니 언니는 어찌보면 하늘이 도와주었던 셈. 훌륭한 지도교수 김창락 화백 등과의 만남.
-둘째언니 유현애 님은 이화여대 교육학과 학령전 아동 전공을 하였는데, 우등졸업하여, 당시 최고의 유치원이던 종로 YMCA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원생으로 이재용 형제자매가 있었다 함). 계속했으면? 엄청 훌륭한 유치원 원장이 되셨을 듯. 그러나... 언니도 결혼 후
사임하고 카나다 이민.
-셋째언니 유인애 님은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와 영동여중(지금 강남) 교사를 십년 가량 하였는데.... 계속하였으면 고교 교장님으로
정년하였을 듯. 이 언니도 결혼과 더불어 사임하고 전업주부로 피안의 삶을 살아오심.
-나의 지난 배재 근무 30년을 회고해 보면 출근을 위해 아침 4시에 일어나고 용산역에서 떠나기를 한번도 마다한 적이 없다.
서울과 대전과 신안과.... 어디고 (가기 싫어. 조금만 더 이불 속에 있자) 한 적이 없으니 돌이켜보면 나 자신도 신기하다. 이제
<함초코리아 (주)다사랑>의 연구소장 , 내 연구실 학생들의 벤쳐 <PCU조류한경자원>의 고문, 새해 또 하나의 벤쳐를 학생들과
시작 하는 준비를 하면서 계획을 품으니, 나는 확실히 언니들과 다른 will 을 가지고 선택하여 왔구나.... 싶다. (물론 어떤 누구도
따듯한 이불 속 때문에 직장을 사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경우는 언니들과 달리 대가족 함께 하는 맏며느리로 큰살림! )
하고자 했다면 했을 힘, 해내고야 말았을 힘(Will)....에 대한 이야기
살아 남아야만 했고, 살아남아 해내고야 말았을..... 그런 일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