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40년 넘게 온 국민을 울리고 웃겼던 배우 김자옥 씨가 63세에 이른 나이에 16일 폐암으로 별세해 팬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대장암을 앓고 있던 김자옥 씨는 그동안 암세포가 폐로 전이돼 투병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앞서 한 방송에서 이 사실을 털어놨던 것으로 전해져 슬픔을 더하고 있다.
김자옥 씨는 “대장암 투병중 암 세포가 임파선과 폐에 전이됐다. 3년 정도는 괜찮았는데 작년에 임파선, 폐에 암이 전이돼 추가적으로 항암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한바 있다.
김자옥 씨는 투병에도 활방하게 방송활동을 해와 그의 사망 소식은 팬들에게 더욱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인은 지난해 tvN ‘꽃보다 누나’를 통해 발군의 예능감으로 안방극장에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이다. 장지는 미정이다.
김자옥 씨는 1951년 부산에서 시인의 딸로 태어났다. ‘꽃보다 누나’에서 보여준 소녀적 감성은 천부적인 것이기도 했다. 서울교대 부속 초등학교 재학시절 기독교방송 어린이 전속 성우 활동을 했다. 이후 배화여자중학교 재학 중 TBC 드라마 ‘우리집 5남매’로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 활동을 한 셈이다.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면서 정식으로 성인 연기자 입문을 했다.

20대이던 70년대, 드라마 ‘심청전’(1971)‘, ’한중록‘(1972), ’신부들‘(1973) 등 2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70년대엔 ’보통여자‘(1976) ’미스양의 모험‘(1977) ’상처‘(1978) ’태양을 훔친 여자‘(1979)’ 등 영화 12편에도 출연했다. 김자옥 씨는 70~80년대에 절정의 젊음, 절정의 인기를 자랑했다.
당시 그는 청순 가련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금 갖고 있는 코믹한 이미지는 90년대에 들어 얻었다. 1996년 공주병에 걸린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코믹한 노래 ‘공주는 외로워’를 발표하면서 코믹한 이미지가 더해졌다.
김자옥 씨는 최근까지도 ‘꽃보다 누나’와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오작교 형제들’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故 김자옥 별세…과거 투병 방송 눈시울 “암은 힘든게 아니다”
뉴스엔
입력 2014-11-16 11:03:00 수정 2014-11-16 11:03:00
故 김자옥이 별세한 가운데 과거 한 방송에서 투병 일화를 공개했던 내용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고 김자옥은 지난해 8월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마지막회에서 과거 대장암 투병 도중 임파선과 폐로 전이된 사실을 공개했다.
고 김자옥은 “지난해에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던 사람도 있었다. 그 때 대장암 재발해 드라마 하차했다는 기사가 났었다. 다 죽어간다는 말도 있었다더라. 당시 종합검사 하다가 암을 발견했다. 용종을 넘어선 암이었다. 다행히 수술하기 좋은 부위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다시 종합검진을 받는데 지난해 4월에 임파선에 조그마한 게 하나 있다고 하더라. 대장에서 임파선으로 전이된 것이었다. 또 폐에도 전이됐다. 오장육부 중에서 장이 약한 사람은 폐도 약하다더라. 그래서 떼어내고, 추가적으로 항암 치료도 받았다. 암은 힘든게 아니다.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병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故 김자옥은 폐암 투병 끝에 11월16일 별세했다. 향년 63세. 빈소는 서울 강남 카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나랑 동갑인줄로만 알았는데 한 살이 많네요.
여고시절 책가방을 들고, 양쪽 머릿가랑이를 따고 지나가는
김자옥을 보았어요. 피부가 상아빛으로 얼마나 예쁜 얼굴이던지.
하나도 얼굴에 손을 안 댄것 같은 고왔던 김자옥님.
고통없는 곳에서 여전히 환한 미소와
찬찬한 말투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빕니다.
인선 선배님 안녕하세요.
우리 50년대 태어난 세대에서는 한살 두살 뭐 그리 차이가 있으려나요..싶어요.
웬지 이분이 데뷔하던 시절의 우리 모두를 생각하면 그래요.
대한민국의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시기...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모두 격변기 였었잖아요.
이분의 개인 연기도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지만,
저는 제가 여기 오기전 80년대말 이전의 모습이 더 생생합니다.
고인의 소식을 듣고
" 꽃보다 누나' 시리즈를 보았어요.
바로 1년전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르르해지더군요.
투병기간 계속 여행을 포기하며 지냈었다고 얘기하며
이 여행을 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짓는 모습,
어디든지 이제는 자신있게 갈것이라고 각오하던 모습,
불과 1년전인데...
그러나 이제는
영원히 여러사람 기억에 남을 분이 되셨네요.
?어떤분이 쓰신 "로마의 휴일' 영화칼럼을 읽다보니
오드리 헵번의 얼굴위로 김자옥얼굴이 오버랩 되네요.
오드리 햅번이 1963년부터 30년을 살았던
스위스의 작은 마을 톨로셰나즈에서
대장암으로 1993년1월 24일
향년 63세로세상을 떠났다...라고.
옥인후배님의 유럽여행기를 사진과 함께 볼때마다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드부로브닉의 맑은 바닷밑이 생각나죠.
큰물고기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들이며...
어느 한 골목에서는 '데자뷰' 경험도....
내가 혹여 전생에 유럽인이었었나????ㅎㅎㅋㅋ
옥인후배님 ~ ~ ~
늘 영육간에 건강하셔서
좋은 글들 많이 쓰셔요.
?금재안나후배님 안 ~~녕~~~!
지금은 오히려 그곳 캘거리가 더 따뜻한것 같아요.
오늘은 그래도 눈이 없고 날이 풀렸네요.
나의 점괘로는
11월 12월에 올 눈이 다 오고는 1~2월은 따뜻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라오. 몇해 전 캘거리처럼ㅎㅎㅋㅋ
그해에 이곳은 눈과 추위로 힘들었었는데
캘거리에서는 여유로운 골프를 즐겼던 모습들을 보여주데요.
언젠가는 나도 다시 몬트리올, 퀘벡을 다시 갈것이요.
오늘은 딸이 파리 노틀담성당에서 나를 위해 샀다고
제법 큰 Size의 핑크묵주를 주더라고요.
즈그 아빠한테는 조금 싼 꼬냑을 준비했고요.
이곳 동부가 그리워서
동부로 이삿짐을 싸고싶은 계획은...???ㅋㅋ
점점 싸지는 Oil로 큰 차질은 없겠죠?
젊은이들은 서부로 가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리더라고요.
암튼 추운겨울에 감기조심하시길.....
+++
동시대의 예술인,
고 김자옥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사진: 1973년 당시 22세 / 서울신문의 타이틀: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