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영화를 빨리 내렸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영화.
한국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배우 탕웨이가 나오는 건데 왜 이러지?
며칠 전 이런 생각을 하며 겨우 하나 남은 극장에 갔다.
저녁 7시 40분 시작.
전혀 상식 없이 보기 시작한 영화는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졌고,
끝나고 나오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주인공인 샤오홍이라는 작가도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앉았다 저렇게 앉았다 무릎을 세웠다 내렸다 하면서도 그게 시간이 길어서 그런 줄 모르고 보았다.
길었고, 낯설었고, 특히 끝 부분, 마지막인가 하면 또 나오고 마지막인가 하면 또 나오는 편집이 좀 아쉬워 음~~ 하는 생각은 있었으나 사실 매우 흥미롭게 보았고, 그 샤오홍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1911년에 태어나 1942년, 겨우 서른두 살 나이로 생을 마친 중국 작가인 샤오홍의 일대기라 할 수 있는 영화다.
다큐는 아니고 다큐 방식을 취한 드라마다.
샤오홍은 5.4운동의 영향 아래 있던 1933년에 문학을 시작했는데,
생애 마지막 10년간 집중적으로 쓴 글이 100편이라고 한다.
주로 작가들인 샤오홍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한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그것이 이 영화를 객관적인 것으로 느끼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샤오홍의 작품을 읽어 보진 못했으나 아마도 작가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인 듯하다.
제대로 된 문학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녀는 쓰기 시작하였고, 그저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아기를 낳고, 아기를 버리고, 기다리고, 병에 걸리고, 엉뚱한 인연을 맺고....
이런 도무지 연관이 되지 않는 현실의 사건 속에서도 그녀는 <쓴다>.
더구나 투쟁과 혁명을 선으로 삼던 시대 상황에 맞지 않게 <문학>에 매달린 그녀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랬다 한다.
하지만 관계치 않는다.
영화 속의 그녀는 도무지 어떤 적극적인 욕망이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다 한다. 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변함없는 건 <쓴다>는 것이다.
결국 그 10년간 그녀는 100편의 작품을 쓴다.
그리고 병으로 죽는다.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작가들이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보통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만나야 신이 날 것이고, 운동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들의 모임에는 조금 더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작가 모임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무척 암투가 심하고,
경계도 심해 맘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가끔 책을 통해 보는 그들의 만남은 한 편의 작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샤오홍과 남편이 대 작가 루쉰과 만나는 장면>
옛날에 지방에 살고 있는 작가가 서울에 한 번 올라오면 당연히 그 작가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고, 거의 일주일 이상 그들은 같이 자고 마시며 지냈다고 한다.
눈이 와서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며,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느낄 것을 부끄러움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만남.
이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너무나 많이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사랑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부도덕한 일을 해내는 그런 모순과 결함, 병 속에서도 그들은 늘 연결되어 같이 있다.
<작가들의 즐거운 모임>
설명이 필요 없는 이런 중요한 부분이 이 영화를 아주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감독이 그런 것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안화 감독의 작품으로 <심플라이프>를 본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영화의 소재도 실화라 했다.
좀 멋을 부린 영화라고 느껴져서 실화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기억이 난다.
부산영화제에서 탕웨이와 함께 서 있는 허안화 감독을 보았다.
아름다운 여배우 탕웨이가 보여야 하는데 내 눈에는 허안화 감독만 보였다.
한 작가를 대상으로 이렇게 긴 호흡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영화로 인하여 중국 영화의 가치가
한 단계 올라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세 시간의 긴 영화를 보니 좀 힘들었다.
체력이 충분치 않은 사람은 좀 생각해서 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