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벌써 깊은 가을이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너무한 게 시간뿐인 것처럼 시간이 야속하다.
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병으로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해보고 싶은 일을 항목으로 만들어
차례대로 해보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었다.
그영화 이후로 버킷리스트가 인구에 회자(膾炙)됐던가.
구태여 나의 버킷리스트를 말하자면 이것저것 배우다 죽기인가보다.ㅎ
그야말로 성취가 목적이 아닌 배움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행위랄까.
행여 멋지게 포장돼 보일까봐 즈레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다만 가르치는 책임감에서 온전히 벗어나 시험평가는 절대없는 것들을 이것저것 집적되는 거에 불과할 뿐.
가방 네개를 쭉 늘어놓고 그 요일에 해당되는 가방을 들고 들락거리는 날라리 배움이다.
그 중 한 가방을 들고 간 날
선생님이 물었다.`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입니까`
영어회화 반이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선생이 의아해한다.
유창하게 이 노인네의 그리 대답하는 심리를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버킷리스트를 갖는 것조차 욕심으로 느껴지는 이 조로증(早老症) 현상을 무슨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친구들은 지공선사가 이미 되기도 했고 곧 되려고 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누가 할머니라고 불러도 억울해할 게 없는 공인인증서가 지하철 공짜 표렸다.
자타가 인정하는 늙음의 시대가 도래하니 일단 눈이 침침해오지, 허리 무릎이 새큰거리지,
그래서 일용할 양식에 약이 필수품으로 들어간다.
같은 클라스에 다른, 상대적으로 젊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를 들어보았다.
세계 곳곳 여행하기,골프 싱글치기,글 써 단행본 내기,etc etc
나이에 맞게 그들의 리스트는 다양했고 욕구는 싱싱했다.
그 순간 늙어서 사라지는 것들의 일번타자가 자신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감이 없어지니 성취는 강건너 등불이므로 노인네의 잔꾀가 발동해서
해보고 싶은 것을 미리 알아 삭제 시킨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영어로 시원하게 말못한 나의 버킷리스트를 억지로라도 꼽아보자
죽어도 느낌이 죽지 않기,그래서 감동받기,떠난 버스 다시 타려고 버둥거리지 않기.
흐르는 물처럼 세월따라 가면서 마음은 건강하게 죽기를 훈련하기.
천국가려고 급행료 내지 않기 ㅎㅎ
이러구러 또 가을이 무르익었다.
자연의 질서 앞에 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나만의 치희(稚戱)런가.
이기지 못하는 장사, 세월을 인정하며 거울 보는 시간이나 줄여야겠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
Kick the Bucket 에서 유리된 말로,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발로 차 버리는 행위에서 전해졌다.
즉, 우리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말한다.
?화림 약받는것도좋아 이정도 상태로라도지속하려고 나역시 버킷리스트는 맛있는것 나눠먹고 순하게 현실적응하기야 어우렁더우렁 적당한바보로 어울리며 좋은할머니로 살다가 선종하는게다 커피향인생이되곺아
다음 글은 대학을 방금 퇴직한 물리학 교수의 글입니다.
<前略>
이제 물리학을 가르치는 삶을 마무리하며 제가 느끼는 점은, 제가 그리 뛰어난 물리학자나 교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자연 세계의 신비로움을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어서, 저 자신이 만족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알게 된 자연세계는 참으로 신비로워서, 우리가 감각적으로 인식하거나 느끼는 세계와는 다른 더 깊은 측면을 가진 세계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자체가 제게는 큰 보람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으며, 절대적인 시간이나, 절대적인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성 이론 개념, 그리고 삶과 죽음 같은 두 개의 물리적 상태가 중첩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양자론 개념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한 자연세계의 놀라운 측면을 보여주는 개념들이지요.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상대적이며, 또한 두 개의 상반된 극단이 사실은 하나의 기원을 가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과학을 통하여 우리 인간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또 한편 그렇게 되면서 우리가 모르는 것 또한 더 많아지기도 했지요. 사실, 우리가 발견한 과학적 진리는 모두 우리의 제한된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것일 뿐이며, 그 진리들이 영원한 진리로 남아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 뿐인 것 같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겸손하고 기쁜 삶>을 살라고 권하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면, 겸손해지게 되고, 겸손하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고, 그런 마음이면 어떤 경우에라도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저희 집에서 키우는 개나 닭 같은 동물들은 제가 보기에 그런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내 이웃도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삽니다. 예컨대, 우리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고, 불행해 보이거나 화난 것 같은 사람과 어울리기는 싫어합니다. 그 사실은 우리 모두가 내 이웃이 행복한 사람들이기를 내심 바라고, 또한 내 주위 사람들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우주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이웃들이 모두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와 이웃 간의 갈등 또한 필연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인간 사회의 많은 갈등의 원인이,‘사상’이나‘종교’같은 이념이나 신념이 너무 강해서 온다고 보고,
“확고한 이념이나 신념을 가지지 마라.”
라는 어느 철학자의 충고를 생각해 봅니다. 비슷한 뜻으로 미국의 작가 보네거트(Kurt Vonnegut )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지요.
“선을 넘어가는 일 없이 최대한 경계선에 붙어서 살고 싶다.
중심에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양자론 개념 중에 큐비트(qubit)란 것이 있습니다. 큐비트란, 예컨대 <좌>와 <우>가 중첩된 상태인데, 누군가 그 존재를 측정하는 순간 중첩상태는 깨지면서, <좌>와 <우>의 확정된 두 상태로 존재하게 되지요. 즉, ‘측정’됨으로서 큐비트는 죽었다고 볼 수 있는 물리적 상태로 변하며, 그런 의미로 매일 매일 ‘측정’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행위를 하는 존재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좌>와 <우>가 정해지지 않은 큐비트 상태가 바로 경계선에 붙어사는 존재의 예이며, 그런 상태만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생명체라 보고 싶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정해지고 편안해지겠지만, 확실히 삶은 그 자체가 고단하고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바로 삶의 의미이며, 편안하고 쉬운 삶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이 무겁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나는 세상을 유머스럽게 본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생각하곤 합니다.
<後略>
삶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게 되는 글이네.
지구상에 어디서고 없어지지 않는 전쟁이나 갈등이 신념이나 이념이 강해서 생긴것이라 확고한 신념이나 이념을 가지지 말라는 말에 공감간다.
삶 자체가 고단하고 힘든것이니 ~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겠지.
힘든 여건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고 이겨나가는 것도 방법~
날씨가 어쩜 갑자기 이캐 추워졌나~ 감기 조심
경선아~
가방 4개 두고 다녀서 그렇구나~ㅎ
걷기대회에서 오랫만에 보니 너 더 싱싱해졌더라.
그저 숨이 꼴깍 할때까지~ 계속 뭔가를 배우는것은 삶에 활력을 주는게 확실하다.
점점 이상한 짓을 하는 나~ 지금 카메라 줄을 못찾아 사진도 못올리고~
지난번엔 은행에 갔는데 ~ 차 타려고 보니 왠 첨보는 자동차 키가 또 들어있었어.
그것도 가방 안주머니에 얌전히~ 내껀줄 알고 남의껄 무심코 넣었나봐~
그사람 얼마나 찾았을꼬?
아마도 이 정신나간 여자가 집어간걸 모르고 자기가 어디다 흘린줄 알고 얼마나 찾았을까?
직원한테 맡기고 오긴 했지만 치매 검사를 해야할지~
버킷 리스트의 어원을 적어주니 좋네.
나보고 물어도 ~ 그냥 순리되로 살기야.
뭐든 하게 되면 하고 아님 말고~ 아프지나 말았으면 ~
오랫만에 글 올리오니 좋다..gif)
건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