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은 정신차릴 수 없이 너무 큰 일들이 많아서 밭에 가지 못했다.

할머니를 믿는 마음도 있었고, 도무지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내팽개치고 있었다.

 

얘네들 물 못 줘서 우짜지 하는 마음이 늘 들었지만

거기까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비가 몇 번 왔다.

비 보면서 많이 묵으라 속으로 말했다.

 

우야든동 두근대며 오랜만에 가 보니 놀랄 정도로 아이들이 그럭저럭 깨끗하게

잘 자라 있었다.

아주 큼직하고 튼실하게 자라있었다는 건 아니고

우선 죽지 않았고;;

제법 모양을 내는 정도로 예쁘게 크고 있었다.

 

대단하다!는 생각!!!

사람보다 낫다 니들~

 

날이 쌀쌀해지는데 저걸 어떻게 하지 싶었다.

조금은 크겠지만 더 많이 클 것 같지도 않았고

만약에 서리라도 내리면 금방 폭 거꾸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선생님 할머니께 할머니 저거 더 클까요? 했더니

다 뽑아 하시는 거였다.

더 크지도 않고 서리 내리면 다 죽어 하시며.

 

내 밭 옆에 할머니 밭이 있는데 할머니 배추는 아주 크고 실하다.

내 배추는 그저 저 배추 맞거든요 정도의 모양을 갖추고 있고.

 

일주일 전에 잠시 가서 조금 솎아왔다.

열무도 아닌 것이 나물도 아닌 것이 하늘하늘 그야말로 자태만 뽐내고 있었다.

 

데쳐서 무치자니 아깝고 김치 하기는 좀 뭐하지만

그래도 첫 농산데 싶어 김치 양념을 만들어 야들야들한 이파리 위에

살짝 덮었다.

 

아무도 안 먹었다;;;

 

오늘 밭에 가서 조금만 남기고 모두 뽑아 왔다.

데쳐서 된장에 무치려고 한다.

강제로 나눠 먹어야지.

 

오는데  할머니께서

시금치 씨앗이나 뿌려 그래서

시금치요? 지금 뿌려서 언제 자라나? 했더니

내년 봄에 좋을 거야 하시는 거였다.

내년 보~~옴?

 

한 밭에 있던 알타리는 뽑았고

다음 주에 한 밭에 있는 배추와 무(라기엔 좀 거시기하지만, 암튼 출신 성분은 무인...)를

뽑아야겠다.

 

오는 길에 할머니께서 팔고 있는 고추, 고구마 줄거리, 상추, 무청 등을 잔뜩 사왔다.

2학기 등록금이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올해 고구마 줄거리 볶음 무지 많이 먹었다.

 

어쨋든 추수!

잠깐이었지만

바람만 오가고, 산비둘기 꾹꾹대는 그 밭이 준 위로가 컸다.

 

내년에는 여러가지 쌈채소와 게으른 주인 밑에서도 강인하게 자라는!

몇 가지 야채를 심으려 한다.

그것도 끝이라고 우째 섭섭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