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 왕에게는 마르둑(사람과 동물을 창조한 신이라고 여김)이라는 자국의 신이 있었습니다

고대 국가체제는 대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지 않은 정교일치로 종교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마드룩 신을 섬기는 모든 제사장들과 모든 술객과 지혜자들을 다스릴 수 있는 높은 직위를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일은 결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왕이었기에 가능한 일은 아니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향한 열렬한 구애의 작전으로 펼친 하나님의 첫번째 프로포즈 때문이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상한 꿈의 프로포즈를 받고 난 느부갓네살 왕은 그 하나님을 모든 신들 위의

신이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정한 신을 자기의 신으로 섬기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세 번의 프로포즈를 보냅니다


다니엘 3장의 금신상과 뜨거운 풀무불은 느부갓네살 왕을 향한 하나님의 두번째 프로포즈라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보다 일곱배나 더 뜨겁게 달군 풀무불보다 더 뜨거운 사랑의 구애로 느부갓네살 왕에게 

자신을 계시해주시길 원하셨던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니엘서를 보면 칼 위를 걷는듯한

일사각오의 정신을 압도할 만한 불 같은 사랑을 사모하게 된답니다


내 온 몸을 불살라 던진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진들,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에

어느정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과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게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우상을 섬기는 느부갓네살 왕일지라도 그에게 할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왜일까요?

그를 향한 하나님 사랑때문일 것입니다

선민의식에 굳혀진 유대인들의 생각 밖에서도 얼마든지 사랑할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나도 아버지 하나님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일사각오의 관점에서 본다면 풀무불가운데 니티난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세 친구들의 생명을 보호해주시기 위해 나타나신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느부갓네살 왕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풀무 불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 친구들의 목숨을 위해서라기보담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당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나타나신 것이라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사실 세 친구들은 자신들은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자들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죽음을 얼마든지 존귀하게 여길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에서 구원해주시지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에 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 그들의 신앙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냥 타죽게 내버려둘 수도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허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건져내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현저하게 볼 수 있는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 그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그 때 철저히 어둠이였고,악인이였고, 죄인이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두번씩이나 당신을 보여주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사람 판단하심에 우리같지 않으시며 사람 사랑하심에도 우리같지 않다는 걸 실감합니다


다니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걸 알았던 청년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한 그 사랑 못지 않게 그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유다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대상이 아니라는 걸 다니엘은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 아니라 대왕께

 그 꿈의 뜻을 알려서 마음에 생각하시던 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니엘2:30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이 느부갓네살 왕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거룩한 그릇으로 쓰임받는 모양새를 보면 많은 것들을 생각케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거룩한 그릇이 된다는게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허나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내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은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