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날 밤 환상가운데 그 비밀이 다니엘에게 나타났다" 다니엘2장19절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아낼 것과 그 꿈을 해몽하라는 느부갓네살 왕을 어찌 이해할 것인가? 

더구나 말하지 못하면 다 죽으리라고 명한 왕의 처사를 두고 어찌 악하다 말하지 않을 것인가?


선악과를 따먹은 모든 인류는 우리들 앞에 놓여진 사건이나 

그 사건속에 연루되어 있는 당사자들을 선악간의 옳고 그름으로부터 한 순간만이라도,

한 발자욱만이라도 떨어져 생각하거나 바라보지 못할 때가 태반입니다

 

왕의 명을 듣는 순간 왕의 신하들은 선악과를 따먹은 자들로써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합니다 

해몽은 자기들이 할 것이나 꿈만큼은 꿈을 꾼 당사자이신 왕이 말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라는 식의 말을 함으로 그들은 암묵적으로 왕의 처사가 옳지 않음을 고발하고 있는 걸 봅니다


그들은 다 왕을 섬기고 있다고 자부하는 왕의 고위층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의 녹을 먹고 살며 

왕이 주는 직책상의 신분으로

왕과 생명을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허나 하나님께서는 묵시적인 한 꿈을 세계를 대표하는 대 바벨론 제국의 대왕에게 던져 줌으로 

왕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세상 정사와 권세들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를 폭로시켜 주고 있는 

걸 봅니다


우리들이 정녕 선악간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선으로 성경을 본다면 성경속엔 이처럼

통쾌한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밤에 느부갓네살 왕을 강타한 묵시적인 꿈이 지닌 힘은 엄청난 힘입니다

그 힘은 묵시자의 주권적인 힘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며,

그 힘은 묵시자의 주권적인 뜻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며

그 힘은 묵시자의 주권적인 사랑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며

그 힘은 온 땅 온 세계 온 왕들과 백성들이 다 묵시자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기이한 꿈으로 인한 소요는 마치 광휘로운 묵시의 별 따라 한 왕이 태어났음을 알고 

헤롯 왕궁에 찾아 왔던 동방박사들로 인해 일어났던 어지러움과 같은 느낌일 것입니다


허나 그 묵시적인 꿈은 어둠과 그늘과 흑암의 비참한 운명에 사로잡혀 있는 노예들에게는 

한없는 혜택과 위로를 주고 있는 걸 봅니다


느부갓네살의 명은 선악간의 이원론적인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허나 그 왕조차 절대자인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일원론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종내는 다니엘의 신앙으로 업그레이드 되리라 확신합니다


다니엘은 모든 걸 하나님 한 분으로 일원화시킨 사람입니다

의문스러운 것들이 그에게 오면 분명해지고

이원화된 것들이 그에게 오면 하나로 반듯하게 세워지는 것을 봅니다


생각해보면 포로로 끌려와서 그 뼈대가 완성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기 이년전-

스스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을 정한 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확증을 갖고 살게 된 다니엘에게 있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은 즐거웠을 것입니다

배움과 섬김에 여러가지 공적 업무에 그는 필시 하나님의 숨결과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왕의 명대로 업무를 시행코자 하는 아리옥(왕의 경호대장)에게 물을 때도

지혜롭게 말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선악간의 판단으로부터 한 발치 뒤로 물러설 때 나타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라도 예외없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명에 순복한 결과 이미 하나님처럼 되어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마 내가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 노릇에 젖어 살았을까? 

사람의 힘으로는 인정이 안 됩니다

우린 도대체 무엇을 회개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우리들이 따먹은 선악과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미 선악을 알아버려 선악의 주체자가 되어버린 내가 곧 하나님처럼 된 상태입니다

선악을 알기에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내 혀가 바로 뱀의 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드린 말을 보면 그는 결코 명을 내린 을 선악간의 율법적인 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는 오로지 얼마 간의 시간만 요구했을뿐입니다


우리들에게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우리들이 챙겨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얼마간의 시간>입니다

다니엘에게 있어 그 <얼마간의 시간>은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시간>이였습니다


어지롭고 혼탁한 이 삶속에 우리들에게 분별은 없어서는 아니되는 요소입니다

때문에 분별이라는 명분으로 우린 우리들 앞에 날마다 놓여진 현실적인 사건들을 

선악간의 율법의 잣대에 내주게 됩니다


분별은 그렇게 까다로운 법조문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에 분별을 의문의 증서에 두고 있다면 아직도 나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총화이신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의문의 증서보다 낮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이란 첨부터 나중까지

때와 계절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흐름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온전히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심령으로 세 친구들에게 

하나님께 자비와 이 이 비밀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자는 말을 한 바로 그 날 밤-

환상가운데 그 비밀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실로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주님!

우린 얼마큼 묵시적인 꿈이라 할 수 있는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우린 무엇에 목숨을 걸고 기도했을까요?

우린 정말 사도요한처럼 봉해진 계시를 알고자 오열하며 통곡해 본 적이 있었을까요?

우린 정녕 무엇을 구하면 산 자들이였을까요?


그 때,

지상의 하룻 밤을 강타했던 묵시적인 꿈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