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마지막날....
푹  자고  늦게  일어나니  온  세상이  적막하고  조용하고  편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평화로움을  만끽하려  이불속에서  나오지를  않고  그냥  누워있다.
며칠간 짓누르고  있던  온갖  무게를  벗어던지고  홀가분해진  오늘,
아무  생각도  없다.
空이라는  것이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어제  새벽부터  일어나  제사  준비를  마치고  상차림을  점검하자마자, 
8시  식구들이  들이닥치고  추석  차례를  지낸다.
우리집  차례상은  예쁘고  맛난  냄새로  다시  들여다  보게된다.
갈비찜,  산적,  북어찜,  조기찜,  녹두빈대떡,  새우전,  호박전,  똥그랑땡,  삼색나물에  잡채,
나박김치,  식혜  그리고  밤  대추  곶감  과일등이  상위에  자태를  뽑내며  단정하게  놓여있다.
이  상을  차리려고  열흘이  걸렸다면  남들은  믿을까?
일이  굼뜬  나는  남들보다  배나  걸리나보다.
그렇게  정성을  들였으니  차례상이  나로서는  예쁠  수  밖에.

 


친정  식구들은  매주  만나지만
시댁  식구들은  일년에  몇번이나  만날까?
제사나  명절  그리고  결혼식  등  큰일이  있어야만  만나는  시댁  식구들이니  오늘은  참으로  중요한  날이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시댁 식구들이  일어나면 
나도  곧장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간다.

 


33명이  모인  친정에서는  결혼을  한달  남짓  앞둔  조카아이의  여자친구가  인사를  드리러  와서  더  화기애애하다.
해군에  복무  중인  조카아이는  흑산도를  거쳐  홍도로  가는  선상이라며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는
이사람 저사람  바꾸며  안부를  전한다.
미국에  사는  동생도  전화를  해서는  "다들  모여서  좋겠다"를  연발한다.

 

 

한쪽에서는  백일을  조금  지난  남자아기  둘이  누워  있는데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신기한  것은  서로를  절대로  쳐다 보지를   않으니  정말로  모를 일이다.
3살짜리  승아는  5살  윤서언니가  자기  인형을  빼앗았다고  잽싸게  뒤뚱뒤뚱  걸어가서는  언니의  머리채를  낚아채고  놓지를  않는다
동생에게  머리채를  잡힌  윤서는  악을  쓰고  울어댄다.
9살  예원이는  그래도 자기가  제일  크다고  뛰어가  둘을  뜯어  말린다.
6살  지원이는  언니  옆에서  같이  거든다.
"승아야!  언니에게  그러면  못  써"라고  하면서.
오늘  동물의  왕국은  우리집이  더  볼만하다.
결국  아이들을  위해  현관  앞에  돛자리가  펼쳐지고  이불까지  깔아주니  아이들의  천국이  바로  이곳이다.
물론  이모  한명이  감시자로  따라  붙고
아이들의  음식까지  차려놓으니 
오늘같이  신나고  좋은  날이  또  있을까?
결국  헤어질  때에는  "윤서야!  토요일에  송림동에서  또  만나자"라며  바이  바이를  한다.

 

 

벌써  옛날...
우리  아이  둘이랑  삼촌이  비슷한  나이라  서로  자주  어울렸다.
어느  날,  방에서  조용하길래  들여다  보았더니  얼굴을  가로  세로  줄자로  재어서는  공책에  쓰고  있었다.
누구  얼굴이  얼마나  큰가를  궁금해서  그런  놀이를  했던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겼으니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이야기  할  때  3ㅡ2 ㅡ1  이렇게  소개한다.
3ㅡ2ㅡ1 이란  말은  세째네  두째가  난  큰아이를  말한다.

 


한  방에서는  술상을  앞에  놓고  토론이  한참이고
또  다른  방에서는  이모와  조카들의  돈내기  고스톱이  한참이다.
녹두  빈대떡이랑  갖은  전들이 계속  이방  저방으로 배달된다.
아버지는  오늘도  누워  계시는데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며  할아버지  앞에서  춤과  노래를  한다.
정말  즐거운  추석  명절이다.


세상에  사는  것이  뭐  별  것이 있을까?
生老病死의  苦海속에서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누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행복이  아닐까?            
장이모  감독의  人生이  오늘  또  생각난다.
인생에  나오는  대사  한대목....
거위가  커서  닭이  되고
닭이  커서  염소가  되고
염소가  커서  소가  되고
소가 커서  사람이  된다.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인생이란   시대에  부응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주인공  부귀는  "어쩌면   인생은  후회하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라며   자조한다.

 


며칠간의  고달픔이  있었기에
달콤한  휴식을  맘껏  누리고  있는  오늘.../

참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