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지만 드디어 꿈꾸던 농사를^^ 짓게 됐다.

넓은 땅도 아니고 딱 한 평 정도 되는 땅에 무언가를 기르고 싶었다.

우리집 창 밖엔 조그만 터가 있지만 거기에는 나무만 심어져 있고,

절대로 아무 것도 심을 수가 없다.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나.

 

올해 어찌나 하고 싶던지 나무들이 앞을 가린 그늘로 가득한 뒷쪽에

몰래 땅을 파서 비료도 뿌리고 상추도 심고, 고추, 당귀, 쑥갓 등을 심었다.

그늘지고 뿌리 깊은 나무들에 영양을 다 뺏긴 땅에서 그 애들은 잘 자라지 못했다.

마치 도둑질 하는 것처럼 몰래 몰래 남의 눈을 피해 물을 주며 그것들을 기르는데

우습기도 하고 참 뭐랄까 마음이 좀 그랬다.

 

그런데 똑 손가락만하게 자라는 상추며 쑥갓이며 갓이며 비타민이며 바질이며를

따 가지고 오면 그래도 큰 그릇으로 하나 가득 되고 하루 끼니 샐러드 용으로 충분했다.

신기했다.

 

게다가 또 아무렇게나 꽃씨도 가지가지 뿌려서 이것이 살래는공 클래는공 했더니

무슨 꽃인지도 모르는 잎들이 이것 저것 났고, 우뚝 봉숭아가 세 그루 피어났다.

 

그러나  결국 묵정밭이 되고 말았다.

 

 

동네 위에 올라가면 산 꼭대기에서 농사를 짓는 할머니들이 호박이며 가지며를 갖고 와서

길에서 팔고 있다.

어제 산책을 갔다 오다가 혹시나 하고 갔더니, 할머니가 계시길래

갖고 오신 호박, 오이, 고구마 줄거리, 가지, 호박잎.... 등을 몽땅 샀다.

어차피 끝물이라서 지지하고 팔릴 것들이 아니었다.

된장찌개를 왕창 만들어서 처녀 선생들 나눠주면 되니까.

 

 

호박잎.jpg 고구마줄거리.jpg 깻잎.jpg 야채...jpg 오이.jpg 큰호박.jpg

 

 

사면서 -나도 한 평 정도 되는 밭에서 농사짓고 싶은데....- 혼잣말처럼 했더니

할머니께서 -내가 밭 만들게 해 줄까?- 하시는 거였다.

-네! 네! 네!- 했더니

내일 아침 7시에 밭으로 오라는 거였다.

 

그래서 아침에 할머니 밭으로 갔다.

주인은 따로 있는 빈 터를 할머니가 일구어서 밭을 만든 곳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그 땅을 팔 때 문제가 있으니까 할머니한테 인심쓰는 것처럼 해서

허락을 한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가 보니

 

      가꾸어야할밭.jpg

 

 

이 무서운 풀밭을 다 메서 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콩쥐가 되기로 작정하고 스승님이 보여주는 대로 땅을 뒤짚고 풀을 메면서 흙을 파기 시작하였다.

 

       밭만들기.jpg 밭만들기2.jpg

 

스승 할머니는 삽으로 흙을 파서 훌렁훌렁 뒤집으며 풀을 덮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도저히 삽질이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내 수준에 맞게 호미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

 

얼굴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지고, 검은 모기는 왱왱 내 귀 옆에서 날고,

아픈 허리를 펴고 쳐다 봐도 쳐다 봐도 메야 할 땅이 좁혀지지 않았다.

콩쥐가 따로 없네.

 

그러다 할머니 밭을 보니 세상에 저 마른 할머니가 이렇게 힘들게 밭을 일궈 만드셨구나

절로 존경심이 생겼다.

도대체 누가 야채 값 깎는 거야?

 

힘을 내어 호미질을 계속했다.

할머니는 우습게 보이던 내가 땀을 흘리며 열심히 파는 모습이 신통해 보이셨는지

자꾸 와서 삽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서 도와 주신다.

 

두 시간 반 동안 애를 쓴 결과

 

완성된밭.jpg

 

이렇게 내 밭이 만들어졌다.

 

할머니는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되고 알타리 정도만 되니 그것만 심으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쪽파씨도 같이 사 와 봐, 아마 될 거야..... 하긴 사 먹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시는 것이었다.

 

할머니 밭에 고추묘 4개를 주시면서 이것 쏙쏙 넣어 심어 봐.

그냥 저냥 따 먹을만 할 거야 하시면서.

그러시더니 고추묘 사이에 동그랗게 구멍을 만들어 거기에 비료를 한 움큼 넣어 주셨다.

 

일요일에만 와서 해. 주인은 괜찮은데 주인 운전사가 아주 못됐어

그리고 배추 씨하고 알타리 씨는 내가 내일 씨 사러 갈 때 같이 사 올게. 직장 다니다믄서.

 

네!  할머니

할머니 전생에 저한테 무슨 빚졌나 봐요. 하하하

했더니 할머니가

글쎄 그런가 보네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너무 좋다!

 

 

밭 메고 와서 씻자마자 온몸 두드려 맞은 듯 아파서 아침 낮잠을 자 버렸다.;;;

어쨋든 농사 일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