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명 장군,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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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이순신 역)

          류승룡(구루시마 역)  조진웅(와키자카 역)  김명곤(도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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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순신 장군하면 거북선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유명한 장수다.

나도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이순신 영화를 관람을 했다.

아마 위인전도 읽었을 것이다.

원균에게 모함을 당하여 옥에 가쳤을 때는 분해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순신이란 장군에 대해서는

훌륭한 전략으로 전쟁을 치루고, 승리한

그리고 배 안에서 전사를 하면서, 아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한,

명 장군으로 기억한다.


서울 세종로에 세워진, 긴 칼 찬 모습의 동상도 지나치며,

아 이순신 장군이구나. 나라를 구한 훌륭한 장수지...하는

정도로만 그쳤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분의 인간적인 고뇌를 생각해 보았다.

그 고뇌가 어떠했을까.

나라의 위기는 풍전등화이고, 남은 배는 고작 12척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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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인진왜란은,

임진년에 왜군이 난을 벌렸다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1590,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총으로 일본을 통일 한 후

백성의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조선을 침공한다.

계획은 속전속결 후, 중국으로 침공 할 예정이었는데

한양에 도착하니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도망.

어영부영하다, 2년 만에 철수한다.

    

영화는 1597년 임진왜란 6,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삼군통제사였던 원균이 전쟁에 패하고

국가존망이 위기에 처하자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이때가 정유재란 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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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전투 스타일은,

목표해전 등 그동안 여러 해전을 승리한 것은

방심하고 있는 소수를 공략하여 일단 이겨 놓고 보는

그래서 상대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략이었다 한다.

 

수군통제사로 돌아와서 본 것은,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과

그리고 12척의 배 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

군사들의 사기는 더욱 저하되었다.

(구루시마는 임진왜란 때 형제를 이순신에게 잃었다.)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지휘 하에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인 "명량대첩"을 그렸다.

 

명장이라 해서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장수들도 이 전쟁은 불가하다고, 이순신을 설득한다.

 

6년간 거듭된 패전에서

왜군도 이순신 장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이순신은 가지고 있었다.

와카자카는 이순신을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고

누누이 구루지마에게 이야기 하는데

구루지마는 콧웃음 친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하며,

자신에게 다짐하듯

병사들에게 열정적으로 연설하며 설득도 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능히 두렵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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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은 12척의 배로 330여 척을 물리친 불가능한 전투였고

역사가들은 불가사의한 전쟁이었다고 한다.

이순신도 전쟁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의 위패를 모신 곳에서

절을 하며, 곧 어머니께로 가셌습니다, 라고 했다.

 

권율장군이 이끄는 육군과 합치라고 했는데

이순신은, 우리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고 했으나

그 자신 죽음을 각오 했다고 볼 수 있다.

 

 

육지와 진도 사이명량이란 곳은

물살이 빠르고 회오리 쳐 암초들이 부딪쳐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이 순신은 물때를 맞춰, 울돌목으로 왜군을 유인하여

백 여척을 맞아 싸운다.

 

치열한 해상전투 장면이 61분이나 되어

조금 지루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긴장하며 보았는지

어깨가 아플 정도였다.

그 후에도 한산 대첩, 노량대첩의 큰 전쟁이 있는데

노량대첩에서 이순신이 죽는다.

나는 이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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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작은 나라지만 강한 수군을 가졌고

배는 삼국시대부터 발달했다고 한다.

원래 해적질을 일삼던 일본 배는 작고 빠르게 만들어졌으며

조선의 배는 크고 단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좋아도 작전과 지도력이 없다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순신은 전략을 세우고 정예 병사들과 힘을 합쳐

좁은 해협, 울돌목으로 왜구를 유인하여 싸웠다.

 

무시무시한 복장으로 등장한 구루시마.

물살이 급한 바다를 놀이터로 삼고 자랐다는 해적 출신의

구루시마가 어이없이 죽고, 베어진 목이 배 위 장대 끝에 달린다.

 

멀리 섬에서 구경하던, 섬 주민들도 합세하고

회오리치는 물결에 가라앉을 듯 위태로운 배를 어부들의 작은 배,

수 십 채로 밧줄을 묵어

이순신이 탄 배를 구출해 내는 것은 참으로 감동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연락병의 아내 벙어리 여인의 등장은 많이 어색했지만, 맛보기로.

 

작은 힘이 합쳐내는 그 위대함에서

결속과 민족애를 본다.

보는 이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게다.

이 전투 뒤에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은,‘천행이었다는 말을 사용.

이 천행이 바로 백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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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鳴梁大捷]이란?


임진왜란 이후 왜군에 의한 재침인 정유재란 시기의 해전으로,

1597(선조 30) 916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단 12척으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전투를 말한다.


명량대첩 이전 조선은 파면 당한 이순신 장군 대신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의 패배로

해상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누명을 벗고 복귀한 이순신 장군은 남아 있는

12척의 배로 지형적 환경과 치밀한 전술을 이용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조선의 해상권을 회복했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 전투 중

거북선 없이 출전해 커다란 승리를 거둔 전쟁이다.

 

명량에서 패배했다면

일제 식민지가 300여 년 앞당겨졌을 수 있다는 의견이

존재할 정도로 명량대첩은

조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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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 받아 갔습니다.
영화 리뷰를 쓰야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이순신 이란 분에 대해, 역사에 대해
다시 공부한 느낌입니다.

전투 장면이 긴 것이, 좀 흠이긴 하지만
주제가 '명량 해전'이니...할 수 없었겠지요.

LA CGV에서 8일 개봉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