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기다리던  반가운  비가  빗금을  그리며  창문을  때리면  불현듯  옛생각이  떠오른다.


대학시절,  4년간의 기숙사  생활은  꿈많던    화려한  시절이었다.
한  방에  주로  6명이  같이  살았는데  1,2,3,4학년  학생들을  골고루  섞어  놓았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선배들이  관례처럼  해  주던  일이  있었으니  바로 미팅주선이다.
나도  선배  노릇한답시고  우리방  신입생들에게  미팅을  주선했다.
여배우  김지미의  먼  친척이  된다는 예쁘장한  가정과  후배를  친구의  동생과  먼저  소개를  하고
서로의  친구들을  엄선한  후  가평  구곡폭포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후  편지가  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후배는  편지를  들고  와  나에게  읽어주고는  "언니!  나  편지  못  쓰는데..."하면서  대신  써  달란다.
내가  봐도  예쁘기만  한  두  아이를  위해  기꺼이  대필을  해  주고는  했다.
실상  그  당시  나는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곤  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고  한창  줏가를  올리던  때였다.


그러던  중  둘은  급속히  가까와지고  여자네  집에서  강력하게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여자네는  부유한  반면 

남자는  내세울  것  없는  가난한  집안으로  똑똑해서  S대에  다니는  것  하나뿐,  내세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반대를  하면  할수록  둘은  더욱  더  뜨거워지고
몰래  아기를  갖고나서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후배는  맨날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가까와  진  것은  언니때문이라고.....


우린  그  때  참으로  많은  미팅을  했다.
서울대  "정영사"와의  만남은    남학생들이  얼마나  촌스럽던지...

그런데  지금  "정영사"출신들이  정,  재계에서  누구도  무시못  할    출세를  했는지  신문보고서를  보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나중에는  외모가  멋지다는  이유만으로  캬츄사들과  용산의  미군부대  안에서도  미팅을  할  정도였으니
그  때  좀  더  철이  났더라면  실력있는  학생들과  사귀었고
내  앞날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목요일이면
미8군에서  밴드가  나와
강당에서  댄스파티가  열리곤  했다.
그  때  우리  학교에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과  "편지"를  부른  어니언스들이  자주  찾았고
가수  남진도  사촌여동생이  우리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자주  출연을  하고는  했다.
그  때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나도  결혼을  했다.
힘든  시집 살이에  점점  친구들과  멀어지고  바깥생활을  끊어버렸다.
20년이  흘러  까마득히  옛날을  잊고  살고  있을  때  그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어떻게  된거야?  그렇게  소식을  끓을  수가  있어?"
자기  막내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인천  인일여고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학교에  열심인  아이  아빠가  혹시  도산학이란  분을  아느냐  했더니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가정뿐이  모르는  남편은  크게  출세했고
은행장인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정어머니는  방황을  하다  요즈음은  남자친구가  생겨  즐겁게  살고  있다고.
학교를  자주  찾았던  유난히  금술이  좋았던  후배의  부모님이  아른거렸고
사이가  안  좋았던  부부는  혼자가  되면  절대로  재혼을  안  하지만
금술이  좋은  부부는  헤어지면  그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못해  꼭  재혼을  한다는  말이  맞구나  했다.


그  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두  아이까지  다  결혼을  시킨  후배가  이혼을  결심  했다고.
이유는  여비서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이중생활  때문이라고....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고  아내라면  꺼벅  죽던  그  아이가  딴 살림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만약 
그  시절...
미팅을  주선만  안  했으면  그리고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결혼을  했을까?
후배의  부모는  딸의  미래를  알고  걱정하고  반대를  한  것은  아닐까?
후 배는  오늘도  웃으면서  말한다.
"언니!  나  또  한번  좋은  사람  소개해  줘..."라고.    


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도  이만큼  살다보니  부부가  해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임을  절감하고  있다.
하늘이  허락을  해야만  이루어지는  일이  부부해로이니 

전생에  쌓은  덕이  대단하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다.
두  사람이  건강해서  오손도손  걱정해주며  사는  모습이  정말  귀하고  아름답다.
얼마전  종편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김지미가  "나이  어린  남자 부터  나이  많은  남자까지  살아봤지만  결국  남자는  다  똑같다.  아이더라".
소도둑같은  인상의  나훈아랑  살면서  나훈아를  최고의  연예인으로  만들어  놓고  헤어진  여장부  김지미의  경험당이다.
이렇듯  인생길에  별다른  남자  별다른  여자가  있을까?


나는  지금  고민중이다.
피붙이도  아니면서  가슴이  저리게  아파
후배의  남편을  한번  만나 다시  합치라고  설득을  해  볼까?
아니면  긴  편지라도  써  호소를  해  볼까?


이럴  때  나에게  어떤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