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이다`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 저런 문구가 있었다. 하긴 불행하려고 여행을 떠날까 `궁극적인 목적지` 같은 센 표현이 걸리긴 하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일정이 제법 그럴듯했다. 이스탄불까지 비행기로 가서 거기서 부터 배로 갈아타고 미코노스,아테네, 몰타,시실리,로마까지. 로마에서 다시 비행기로 프라하를 경유해 인천으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매일 짐 싸서 떠나는 여행이 우리 나이에는 이제 체력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배에 짐을 풀고 기항지에서 몸만 홀가분하게 호도도 내려 어슬렁거리기만 하면되니 편하긴 편했다.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이스탄불은 당연히 모든 게 제자리에 있었다. 성소피아 성당,블루 모스크,그랜드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에서 깔깔거리며 스카프를 사들이는 우리들을 보며 가이드 언니가 스카프族이라 불렀었지 기억을 되살려 바자르 중앙路에서 샛길로 우회전해 스카프가 많은 집을 찾아냈다. 이미 추억에 잠겨있는 상태에서 백프로 캐시미어라는 구구절절한 설명을 들으니 아니 살 수 없었다. 세계에 이곳저곳을 다녀본 후 늘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늘 꼽히던 이스탄불이었다. 그런데 전보다 감흥이 훨씬 덜하다. 나이 탓,밤에 이스탄불을 못본 탓,같이 간 일행 탓. 세가지 탓 중에 나이에서 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듯하다. 이십대에 수원 연구소에 있던 오빠를 친구와 함께 찾아 간 적이 있었다. 종일 오빠에게 대접을 잘 받고 헤어지는 시간이 됐다.버스에 올라 오빠를 보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수원에서 인천이 천리길이라도 되는 양, 내가 뭐 오빠의 보호자라도 되는 양, 훌쩍 키만 크고 마른 오빠를 보며 불빛이 흔들리도록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그것은 젊음의 싱싱한 감수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반면에 육십이 넘으니 눈물샘도 마르는가. 이역만리에 딸과 손자를 떠나 보내면서도... 그때 같았으면 대성통곡하고 사흘은 울어야 했을텐데... 그런면에서 늙은 건 축복이지 싶다.담담이라는 묘약을 세월따라 체득했으니.
배에 올랐다. 아파트 한 채보다 더 큰 배다. 여행지에서 혼자 방을 쓴 경험이 없었다.새로운 경험이다. 베란다가 있는 방은 깨끗하고 혼자 쓰기에 호사스러울 정도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저녁식사 자리에서 비로소 일행들을 제대로 만났다. 우리 가족 다섯명을 빼면 네쌍의 부부가 우리 일행이다. 예쁜 부인과 함께온 수재형의 신사,남도에서 온 의사부부,부인이 영문과 교수인 부부,여교수의 언니 부부 그들은 50대 중반에서 육십대 초에 나이였다. 저녁식사는 꼭 만찬처럼 치뤄졌다. 이름하여 양식 풀 코스. 좌빵 우물, 포크와 나이프가 어쩌고 저쩌고 여러 격식이 있는 먹는 예절, 거기에 맞는 사람들의 옷차림. 무쟈게 예쁜 부인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만찬에 어울리는 옷차림을 제대로 했다는 얘기다. 블랙과 화이트를 적절히 그리고 악세사리까지. 감각있는 옷차림을 보는 즐거움으로 밥맛까지 좋아졌다면 내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ㅎㅎ 남도에서 온 의사분은 밝음의 아이콘. 그는 우울이라는 단어를 모르는가 아예 제거했는가? 어쨋든 주위를 밝게 만드는 힘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새록새록 보태준다. 그의 부인은 시부모님을 잘 모시고 네자녀를 훌륭히 키웠으며 시댁식구와 화기애애하게 잘 지내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지방의 명문 여고를 나오고 S대를 나왔다 하는데 그녀의 설명으로 들은 그 집안 사람들의 학벌이 일제히 어마번쩍했다.나도 그녀만큼 학벌이 좋다면 쫘르륵 얘기했을까는 의문이지만 여행지에 젖은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얘기가 속물스럽게 들리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fact일 테니까 또는 그런 상황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일테니까. 남의 행복을 구경하는 게 불행을 보는 것보다 얼마나 더 행복한가 말이다. `행복은 생각보다 훨씬 오묘해서`......
*`사람 너는 누구냐`
미코노스 섬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끼가 묵었다 해서 관심이 간 섬이었는데, 재클린과 오나시스가 밀월여행을 했다해서 유명해진 섬이라한다. 불가사의한 여자 재클린.그래서 샘솟는 매력이 있는 것 같던 여자. 그런데 그녀의 일생은 내 머리 용량으로는 해독불가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선천성 징그러움 회피증이 있는 나로서는...... 아무리 물질적인 호사가 좋다지만 지성을 갖췄다는 그녀를 의심해보게되는 부분이다. 알수록 몰라지는 게 사람이란 생각을 하며 소박한 섬 미코노스를 둘러봤다.
모든 집들이 흰색이다.프라하나 두브로니크의 집들이 붉은 지붕 가진 것과 대조적이다.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푸짐한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마신 한 잔의 맥주 맛, 여행의 참 맛을 보탠다.
*`여행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드디어 아테네 도착 파르테논 신전을 보는 날이다 그리스 여신 같이 차려 입을까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어떻게 차려도 결국은 여신의 짝퉁일 뿐, 그래서 아주 눈에 안띄는 희끄무레 파란빛이 들어간 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물론 배가리개용으로 하늘거리는 스카프는 길게 둘렀다.
세계문화 유산 일번지라는 파르테논 신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귀퉁이 벽에서 셀카를 찍으려 하니 웬 서양청년이 찍어주겠단다.서양 사람들의 자연스런 친절한 메너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저렇게 큰 기둥을 세우려고 얼마나 많은 노예들을 동원했을까.그 덕에 수천년 후에 후손들이 잘먹고 잘사는 것을 미리 계산해서 했을 리는 없다.다시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깊게 감사드렸다.우린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몇십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언감생심 이런 여행을 꿈이라도 꿔봤을까.
신전 내려오는 길에 세계적인 음악가만이 공연할 수 있다는 야외 음악당을 보았다..언젠가 그곳에서 음악을 들을 날이 있을까 그런 꿈이 생기니 살아있는 자의 기쁨이 느껴진다.
*`아는 것과 느끼는 이 두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고 그중 정말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다`
하루종일 바다에서 선상생활을 하는 날이다. 서양인들은 낮에는 수영과 선텐을 즐기고 밤엔 댄스를 하는 즐거움이 있어 하루가 바쁘지만 나는 그냥 빈둥빈둥 쉬면서 선내 도서관을 기웃거렸다 모두 알파벳으로 돼 있는 책은 다만 불립문자(不立文字)일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다시금 부러워진다. 할일 없어 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는다.`꾸베씨의 행복여행` 프랑스 정신과 의사가 쓴 소설이다.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에 크게 공감한다. 늙어가면서 줄어들기만 하는 느낌들,그래서 파생된 서걱거리는 메마른 감정이 마음에 나는 쥐를 잡아주는 특효약일까 아니면 쥐약일까?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거울 같은 지중해를 보며 늙은 바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
몰타 라 발레타항에 도착 기항지 관광을 하는 날 예쁘고 몸매도 날씬한 현지 가이드가 나왔다. 어학 연수를 왔다가 현지인을 만나 아들 낳고 딸 낳고 행복하게 산다고 본인 소개를 한다. 우리네 규격화된 삶에 비하면 그녀의 삶은 얼마나 파격인가. 우리가 삶의 규격 안에서 살려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소심함 때문일 것이다. 기존틀 밖으로 나가 자기 인생을 꾸려가는 그녀가 참 용기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헤어지는 시간,그녀는 울컥 목이 메어서, 금년에 처음으로 한국 관광객을 맞았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고 자기는 그래도 행복하다고 흐느낀다. 나도 속으로 읊조린다 그래요 행복하게 살면 됐어요. 삶의 공식은 정말 다양하군요 *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시칠리아아 가타니아 항에 기항에 에트나 화산을 보는 일정이 이번 여행의 큰 결점으로 남아 있다. 시칠리아에 남아 있는 로마 유적도 많이 있건만 어째서 시커먼 화산재만 구경시켰는지 정말 모르겠다. 언제 또 그 먼 곳을 갈 수 있다고 원망들을 일을 벌인 것인지 크게 실망했다. 국내 굴지의 H사, 그들의 얄팍한 상혼을 발견한 일은 민망하기만 했다. 이러구러 배는 이탈리아 살레르노에 입항 버스로 갈아타고 로마로 향한다. 로마도 두번 째다.트레비 분수,콜로세움,스페인광장 나보나 광장 등을 눈도장 찍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실은 로마에 또 오고 싶었던 건 미켈란 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십여년 전 너무 많은 인파에 밀려 넋이 나가 성당안에 있는 피에타를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무더운 날씨 (33도) 떄문에 혹은 나의 예술적 심미안 부족으로 글로 표현된 피에타의 감동을 실제로 느끼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미켈란 젤로의 어머니가 그가 네살 때 세상을 떠났음으로 작가의 머릿속의 어머니는 영원히 젊기 때문에 피에타의 성모마리아 얼굴이 젊은 거라는 설명만이 새로웠다. 너무 더운 날씨에 넘쳐나는 볼거리는 마치 식사 끝에 다시 상다리 휘어지게 받은 12첩 반상만큼이나 부담스러운 것이었다.갑자기 고즈넉한 화엄사 경내가 떠올랐다.이곳보다 볼거리 훨 부족해도 여백의 미가 충만한 그곳이 그리웠다. 로마는 젊어서 봐야 하는 곳이다.매사에 소화능력이 부족한 논네가 하루 관광할 곳은 절대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로마에서 비행기로 한시간 반 날아 체코 프라하에 도착. 도착 멘트 대신 먼저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이 흐른다. 멋진 나라다. 선선한 공기가 우선 반가웠다.공항 근처 호텔엔 일본인 관광객 일색이다. 7시간 일정의 프라하 관광, 프라하 성과 카를 교 등을 보여준다. 프라하성 광장에선 여전히 클래식 연주자들이 연주했다. 연주에 감동받아 달랑 5유로 남은 돈을 바구니에 넣었다. 또 걸어보는 카를 교 언제 또 와볼 수 있을까~~~?유한한 인생! 몰다우 강이 내려다 보이는 우아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적어도 여행을 하는 동안은 벌레로 변신한 거 같은 불유쾌한 감정이 낄 새 없으니 카프카님 당신은 여행을 독려하는데 일조를 한 건가요? `프라하의 봄`을 연출한 바츨라프 광장에서 자유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을까 살짝 생각해보기도 했다. 20대에 본 새벽의 7인`이란 영화에서 이미 체코인들의 불굴의 정신을 보았었다. 어느날 문득 자기 존재의 가벼움이 느껴져 의기소침해지면 무조건 여행을 떠날 일이다. 낯선 곳을 무작정 걸으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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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왔구나.
이제는 여유있는 널널한 여행이 좋긴 해. 크루즈 같은.
함께 하는 사람도 좋아야 하구.
두 번째 같은 곳 방문은 확실히 그 감흥이 떨어지긴 하더라만
지난 번 로마는 두 번째... 전에 가지 않은 곳을 가서인지
좋았고, 피에타는 마리아가 너무 젊은 것이 좀 흠이긴 하지만
감동이 되더라. 두 번 다.
이제 하와이에서 만나 보겠네.
인숙이도 생각 중이래.
독림기념일 연휴에 바르셀로나에 간다고 했으니
돌아오면 확정할거야.
담담한 여행 후기, 잘 읽었어.
지난번 들었던 지중해여행 잘 다녀오셨군요.
가족여행!!
부러워라~~~
언니의 여행기에 잠시 빠졌어요.
감동하면서 끝까지 읽어내려왔어요.
같은 곳을 다녀온들 이렇게 여행기를 쓸 수 있을꼬!!!
그곳을 함께 다녀온 듯 상세히 현장감있는 생생한 글 감사해요.^*^
룸메가 없으셨남 왜 혼자서?
북유럽 갔을 때 룸메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그때도 잊을 수 없는데......
언니 덕분에 지중해여행 참 잘했습니다~~~
피로 회복제 살구 드시와요^*^
경선아~
정말 소설 같이 썼네.
소제목을 읽고 본문 읽으니 더 깊이가 있네.
이스탄불 다시 가고 싶다더니 너무 좋았겠다.
난 남편 모임에서 중국 황산 다녀 왔는데 지금 다리가 아직도 안풀리고 아파서 절절 매고 있어.
계단이 너무 많아서 다리에 무리가 갔나봐.
우리 나이엔 너무 난코스는 안되겠더라.
게다가 살이 갈수록 찌니~ ㅎ
사진 좀 올려봐.
사진 없으니 허전하네.
경선이가 또(!!!) 지중해여행을 했구나.
여기서의 또는 질투의 의미!
며칠 컴이 속썪혀서 그냥 대강 급한 건 스마트폰으로 봤는데 댓글은 못달겠더라구.
다들 사진이 없다고 아쉬워하는데 이렇게 소설을 읽는 듯한 여행기도 멋지다.
일행이 다섯이라고 했는데 해독이 잘 안되네.
(난 항상 이런 비본질적인 것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ㅎㅎㅎ)
딸과 손자를 멀리 떠나보내고 혼자 방썼다는 거 보면 미국에 있는 작은 딸과 현지에서 만난거니?
암튼 신애 첼로독주회에서 만날 수 있어 좋다.
우리 친정 오빠 언니 부부팀에 껴서 갔어.
혼자 갔더니 부부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추가되더라 ㅎㅎ
6쌍의 부부가 어찌 그리 다르던지......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지? 그런데 거기라는 먼거리에서는 대동소이하겠지만
요기라는 가까운 거리에서는 삐거덕하는 게 보이더라구.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하루 종일 손 잡고 다니고 자기 부인의 독사진을 시시때때로 찍어주는 커플도 있더라니까.
나으 체질상 ㅎㅎㅎ 부럽다고까지는 말할 수없지만 보기엔 꽤 좋았어.
Are you happy?
이런 말을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지.
남보다 행복한 게 생존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행복이라는 추상명사에다 경쟁심을 대입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명옥인 늘 행복을 잘 가꿀 것 같어.
특기가 있으니 행복의 조건이 남다르잖어
잘 지내고 첼로독주회에서 만나자.
나두 야단 맞을 각오하고 말대꾸!
내가 말하는 악조건은 언제나 결혼 이후의 이야기라오.ㅎㅎㅎ
일찌감치 행복을 경험했으니까 쎔쎔이라는 건 남이 볼 때 이야기고 거꾸로 간다는 건 엄청 고행의 길이더라구요.
피아노가 생활의 일부인 사람에게
피아노는 부르죠아계급들이나 가능한 젊은 시절의 사치정도로 인식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공생은 참 .........................................
5기에다 쓰기는 좀 뭣하지만 봄날이란 모임은 그런 나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의 길 부활의 길이었다오.
한편의 수필을 읽는듯.
잔잔한 함축의 미,
역쉬 경선스러운 글,
난....
주절주절 산문을 좋아하고
그대는....
미루어 짐작케하는
느긋함과 조바심쳐지지 않는 여백의 미가 좋았네라.
건강해서 너울너울 또 날라다니기를~~~!
우린 잔잔한 함축의 미가 담긴 글도 좋고
주절주절 산문도 무지 좋아한다오.
너울너울 날라 다닐 사람은 날라다니고
귀경할 사람은 귀경하고 암튼 건강하자구!
구면인 분들이 여기 다 모여 계시네요.
제가 원체 부끄럼을 잘 타서 선배님들 방엔 잘 못 가는데 용기를 내어 왔어요.
이름난 절경에 어울려 환성을 지르고 사진이나 찍어대며 거죽만 훑고 몰려다니는
수학여행같은 여행기 많이 보았는데요,
나름대로 감상하며 '같이와 따로' 를 적절히 즐기신 듯한 여행이 참 좋아 보입니다.
같이 여행하셨던 분이 `몰타 이야기` 라는 글을 멜로 보내왔네요.
몰타! 너무 할얘기가 많아 설명할 수 없었던 곳입니다.
이런 설명을 보탤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 지중해의 보석, 몰타의 역사이야기
지중해를 여행하면서 몰타에 들렸다. 아테네를 출발해 꼬박 하루반을 달린 배가 마침내 육지에 접근했다. 갑자기 바다 가운데서 중세의 모습을 지닌 찬연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발레타 항구다. 몰타는 이탈리아 남서부 시칠리아섬에서 남쪽으로 약 93㎞ 떨어진 인구 40만명의 강화도와 비슷한 크기(316㎢)의 작은 섬나라다. 수도인 발레타는 서울에서 직선거리가 9310㎞에 달하는 멀고 먼 지중해 한 가운데에 떠있다. 이 섬은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 아주 먼 옛날부터 인접국가와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어 왔다.
몰타의 역사는 BC 3000년대 중반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석조 사원 등 대단히 발달한 신석기시대 거석문화유물이 이를 증명한다. BC 1400년대에는 이탈리아반도 등지로부터 청동기문화가 유입됐고 이후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등 지중해를 지배한 세력들이 차례로 이 섬을 차지했다.
로마가 몰타를 지배할 때 일이다. AD 60년경 사도 바울이 기독교 선교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위해 로마로 압송되는 중 크레타섬을 지나 몰타 인근에서 난파를 당했다. 그는 3개월간 몰타에 머무르면서 전도를 했고, 이때 로마인 파견관 푸블리우스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후에 몰타 최초의 주교가 되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성바울 성당이 세워졌고, 지금도 예배를 본다. 신약 사도행전 28장 1절의‘멜리데’라는 섬이 바로 몰타다. 당시 바울이 거처하면서 전도했다는 지하감옥 카타쿰은 지금도 남아 그의 사역을 증거하고 있다
동서로마 분리 후 비잔틴제국이 점령한 이 섬은 870년경 이슬람세력의 지배에 들어갔다. 11세기 십자군 전쟁때 시리아지역으로 출정했던 성요한기사단(일명 몰타기사단)은 팔레스타인 지역이 다시 이슬람세력에 점령되고 십자군이 패배하자 방향을 바꿔 1309년 터키 남부의 로도스섬을 점령하여 근거지로 삼고 사실상 독립국가를 세웠다. 이들은 해적활동 하는 등 오스만투르크와 대치했는데, 이 오스만투르크가 바로 몽골고원에서 발원한 기마군단 돌궐(투르크)의 후예다. 돌궐제국 멸망 후 투르크인들은 위구르를 세웠고 다시 서진하여 셀주크투르크를 건국했으나 몽골군에 멸망당했다. 1299년 투르크족의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반도에서 건국한 오스만공국은 오스만투르크로 이어지져 훈족, 몽골에 이어 아시아 기마군단이 또 다시 유럽을 무대로 전쟁을 하게 됐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을 완성한 술탄 슈레이만 1세는 지중해를 장악하면서 1522년 로도스섬을 점령해 버렸다. 이에 성요한기사단은 로도스섬에서 쫓겨나 1530년 몰타섬으로 옮겨갔고, 이로 인해 몰타기사단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몰타섬을 지배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에스파냐왕은 기사단에게 매년 매(hawk) 두마리를 바치는 상징적인 대가로 사실상 섬을 무상 양도했다.‘몰타의 매’라는 유명한 소설과 영화는 이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이다. 몰타기사단은 이슬람선박을 계속 공격했고, 이에 오스만투르크 함대는 1565년 다시 몰타를 공격하나 기사단은 발레타장군의 지휘하에 맞서다 유럽지원군의 도움으로 전쟁을 끝냈다. 그 발레타장군의 공적을 기려 몰타의 수도인 그 항구를 발레타로 이름 지었다.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길에 몰타를 점령하고 기사단을 내쫓았으나 나폴레옹 몰락 후 영국령이 되었다가 1964년 독립하여 영연방국가가 됐다. 내쫓긴 몰타기사단은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어 유럽을 전전하다가 1834년부터는 로마에 정착하면서 무력활동을 포기하고 인도적인 활동만 유지하는 종교조직으로 변신, 영토 없는 비공식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몰타는 우리와 비슷한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역사의 흐름속에서 수많은 곡절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중해의 이 작은섬이 멀리 몽골고원에서 유래하고 발원한 아시아 기마군단 오스만투르크가 유럽세력과 대치했던 최서단 지역이어서인지, 처음 찾았지만 감회가 유난히 새로웠다.
언니 부부 따라 갔구나~
몇년전 환갑 여행으로 갔던 그리스의 몇몇 섬 들른 기억은 나는데 이름이 뭔지는 다 까먹었어.
공부 시켜봤자 금방 까먹어 ㅎ
니가 아주 예쁘다는 그여자 요기서 보니 누군지 알겠는데~ 손댄 티가 나고~
난 자연스레 늙어가는 니가 젤 예쁘게 보인다.
사진 보는 눈길을 대하니,
너는 둔감한 듯 예민하고, 나는 예민한 듯 둔감하다.
감춘 예민과 드러낸 예민 재미있당 ㅎㅎㅎ
일본에서는 요즈음 둔감력(鈍感力)이 셀수록 살기 편하다는 말도 나온데.
그렇다면 둔감한 것도 福일세그려.
까먹는 거 때문에 나도 머리가 띵해.
이스탄불 가는 뱅기에서 영화 두편을 보았는데
한편은 기억나는데 다른 한편이 뭘 봤던지 도무지 생각 안나는 거 있지.
이제는 기억하려면 몇 번 돌이키고 되새기고 해야할 모양이야.
그치만 기억이 나지 않아 좋은 점도 많구.
기분 나빴던 상항만 희미하게 남고 그 내용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점점 많아져.
좋은 현상이겠지?
놀이터(홈피)에서 이렇게 수다 떠는 시간 달콤한데......
애들은 왜 이 재미를 기피(?)할까?
홈피를 읽기만 하면서 분석의 자만 들고 있는 사람들이 꺼려지던 시절도 있곤 했지만,
`더 늙으면 이 짓도 못하리` 뇌가 그래도 덜 시들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놀이잖어
안그래?
화림이가 예쁘게 늙어간다니 힘이 난다 ㅋ
경선언니!
"이 짓도 더 늙어지면 못하리..."
맞는 말씀입니다...
화리미언니는 맘이 이쁘니 얼굴도 이쁘지 요...
경선언니는 피부가 뽀얗고 늘 웃는 얼굴이세여...
경선아!
너야말로 손댄 거 아뉴?ㅎㅎㅎ
우째 날이 갈수록 더 멋있고 예뻐지는감
빨간 재킽에 하얀 모자와 머플러!
여행지에 대한 지식없이는 불가능한 패션이지!!!!!
주위에 보니 좀 예쁜 원판을 가진 여자들이 늙어갈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
또 그런 여자를 택한 남편들은 계속 미모를 요구하니!!!!!
요즘 청문회 보니 난리도 아니고.
아무도 불러주지않게 별 볼일 없고 새 옷을 입어도 머리를 해도 전혀 모르는 무심한 남편에게 감사를 하고 시포요.
경선이 말에 무한 공감이다.
이 짓을 할 수 있는 건강과 남의 시선을 그다지 의식하지못하는 적당한 둔감함에 감사하자구요.
언니
넘 아름다운 글 잘 읽었어요.
언니 따라서 격조 있는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
그것도 행복입니다. 제겐.
감사해요.
언니와 곰배령 갔던 기억을 떠올리면
벌써 시간이 또 많이 흘러 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계속 되는 여행기 기대하고 있어도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