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묵상본문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묭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어른이라고 지혜롭게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그가 내게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 없음이었더라
당신들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 욥기32장 1-22
해석도움
엘리후의 등장
하나님은 세 친구의 변론을 통해 욥의 고난에 대한 당신의 선하신 뜻이 밝혀지지 않고 오히려 감정 대립만이 조성되자
대화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서 엘리후를 등장시키셨습니다
그의 변론은 32장부터 37장까지 이어집니다
나이가 가장 어린 엘리후는 지금까지 경솔하게 대화에 뛰어들지 앟고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을 말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엘리후가 그들의 대화에 대해 인용한 구절들은 그가 얼마나 자세히 귀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아무런 결과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자 그제야 압을 열었습니다
엘리후는 열정적인 젊은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킬 줄 아는 겸손과 충분히 듣는 지혜와 말을 해야 할 때에
대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위치를 지킬 줄 아는 겸손과 충분히 경청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까?
나는 말해야 할 때를 잘 분별하는 사람입니까?
중재자의 위치
엘리후는 먼저 욥이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자기 의를 주장한 것에 대해 노를 발합니다
이 같은 욥의 주장은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욥기 40장 8절
하지만 엘리후는 세 친구들에 대해서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욥에게 고난의 정당한 이유도 밝히지도 못하면 그를 단죄한 것은 횡포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 사이에 공평하게 개입하고 있으며 다시 한 번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말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엘리후의 모습은 중재자의 위치를 잘 보여줍니다
그의 변론은 다른 세 친구들과는 달리 중립적인 위치에서 더욱 진리에 기초한 것이었기에 나중에 다른 친구들처럼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게 됩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중립적인 자리에서 진리에 기초하여 공평하게 중재하고 있습니까?
출처-생명나무 GT
하나님의 출현을 예고하는 자를 사모하며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욥기32장17절
본분을 생각해보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분대로 살다보면 오리무중속에서도 대답할 말들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딜레마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의견이 보여지리라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본분이 그러하면 그러할 것입니다
엘리후를 보면 그는 자신의 입지를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나 연륜이나 경험이나 부귀 영화에 두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함에 두고 사는 자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게 그의 본분이였습니다
요즘 말로 풀어보면
배경도 없고
학연도 없고
지연도 없고
공식적인 자리나
사회적인 신분의 뚜렷함도 없고
부귀도 없지만서도 그렇다고 인간됨을 하챦은 곳에
처박아 두지 않고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앞에 자신의 입지를 둔 것으로 소신을 삼고 사는 자라는 말이겠지요
누명과 억울함을 견디기보담은
그것의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열변을 토하는 욥이 천만번 등장할 때마다
분열과 대립과 고립이 불가피한 것처럼,
자신의 본분대로 대답하는 엘리후가 등장할 때마다
화평을 도모하시는 여호와의 등장을 막을 길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결과
세계는 다시한번 귀로만 듣던 하나님(율법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는(은혜와 진리의 예수님) 놀라운 축복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엘리후의 출현이 실제로 우리들가운데 나타나길 간절히 사모하는 시간들이였습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시대가 어두울수록
교계가 어두울수록
젊음의 정욕과 세상의 야망으로부터 떠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고 살아가는 젊은 엘리후들을 출현시키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