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글 수 1,334
"손바닥만한 창으로 내다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책 표지에 있는 글=
# 이사진은 내가 찍은것이 다 없어져 네이버에 들어가서 하나 슬쩍한 것임.
2014.06.13 11:04:29 (*.37.141.162)
갤러리 안의 무인 찻집에서 순호가 차마시는 모습.
자기는 다 본거라며 나만 갤러리 안으로 던져 놓은 뒤 여유작작 커피 마시는 모습~
벌써 그곳에 또 가보고 싶으니 워쩌냐~
2014.06.14 06:16:23 (*.78.203.182)
화림아
사진이 배꼽으로 보여.
원래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화림이 글은 참 깊이있고 맛갈나게 느껴지다니까.
또 푸근하고.(난 요게 젤루 좋더라)
화림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라는 생각!
암튼 이게 다 순호 덕분아니유?
그대 존 일 많이 하고 사시는구려!
2014.06.14 08:32:26 (*.63.96.59)
마지막 오름은 갤러리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요.
김영갑 작가가 평생 사진에 담았던 오름중 가장 좋아하였던 곳이랍니다.
2014.06.14 09:49:14 (*.37.141.162)
명제 안녕?
나도 어제는 7기 방에 들러봤다가 영화감상 쓴거 보고 그 영화 봐야겠구나 ~ 했어.
역시 작가는 달라.
이번에 김영갑 갤러리랑 이중섭 미술관 들러서 좋았는데 어째 볼줄 몰라서 그런가~ 이중섭 미술관은 좀 실망~
먼길을 달려 갔는데 작품이 너무 적어서 서운하더라.
은박지 몇개만 있는 느낌~ㅎ
이런 소리 하면 안되겠지?
예술가들은 온 영혼을 불태워서 작품을 했을텐데 말야.
김영갑의 사진은 정말 달랐어.
황홀한 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서성거렸을까?
사진 까지 올려줘서 너무 좋아.
또 놀러와.
제주에 가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곳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다.
일전에 순호가 먼길 마다않고 데리고 가준 바람에 그곳에 가서 경이로운 사진도 관람하고 아기자기한 정원도 보고 무인 찻집에 가서 차도 마실수 있었다.
오면서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란 그가 찍은 사진이 같이 실린 책을 사왔다.
그의 예술혼이 사진과 글에 담겨 있는듯이 느껴져 빠져들어 읽었다.
책을 읽고 나니 다시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그는 1957년 충남 부여에서태어나서 1982년 부터 제주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제주의 모든것이 그에겐 신비로웠다.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 억새 등 밥먹을 돈을 아껴가며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담았다.
어느날 부터인가 사진을 찍을때면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없이 허리에 통증이 와서 병원에 가보니 루게릭이라는 병의 진단을 받았다.
이 두모악( 한라산의 옛이름) 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그가 아픈몸을 이끌고 손수 만들어 2002년에 문을 열었다.
투병생활 6년 만에 두모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이제 김영갑은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에 영원히 있다.
~책에 있는 소개 글에서~
정원의 아기자기함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뭘 잘못 눌러 사진이 다 없어지고 말았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이 책을 읽으면 사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저 아름다운 광경이나 순간의 사실만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그의 사진에는 시간을 거슬러 시간의 흔적을 포착하려는 무엇이 있다.
그가 원하는 황홀경을 찍으려고 하루종일 들판을 헤메다가 그냥 돌아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한다.
그는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은 구원받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병생활을 하는중 그가 얻은 깨달음~길위에서 또다른 길을 만나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지금이 나는 행복하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두려움 없이 기꺼이, 기쁘게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게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어떤 상황도 펀안하게 맞을수 있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면 웃으면서 떠나자."
~ 그의 책에서~
개인전을 열네번이나 하면서도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를 피해 있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고정관념에 매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란다.
배를 곯아가면서도 작품을 팔지 않는다.
어째서 神 은 천재는 일찍 데려가시는 걸까?
"그는 예술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의 수도자이다.
지독한 가난과 고독, 외로움을 견디며 자연 속의 황홀경을 훔쳐본 작가, 세속을 뛰어넘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던 기인.
제주의 오름과 대자연을 스승처럼 받들던 자연 철학자 .
사진을 찍다가 죽을 수도 있기에 결혼하지 않았다는 휴머니스트~
20만장의 사진 원고를 내걸고 예술혼 굿을 여는 그는 분명 사진 무당이다."
~ 안성수 제주대학 교수의 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