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본문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더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지는구나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는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쫒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욥기 6장1-13


해석도움

말꼬투리 잡기

욥은 자기의 고통이 친구들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것임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극심한 고난 때문에 태어난 날을  저주한 자신의 경솔한 말만 가지고 정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는 먹을 것이 부족해도 울며 탄식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전능자의 화살이 박히고 그 독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공포에 질려 탄식한 것이 당연함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위로하러 온 친구들이 정작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헤아리려 하지 않고 바람과 같이 덧없는

자기의 말꼬투리만 붙잡고 붙잡고 계속해서 회개할 것만 추궁하는 것은 마치 소금 없는 계란이요,

노른자 없는 흰자위와 같다고 하면서 자기는 도무지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만지는 것조차 싫다고 외칩니다

욥이 서운해하는 친구들의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그 말로만 평가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상대방의 어려움의 무게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말없이 잡아주는 손이, 똑똑한 말로 그의 상황을 평가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무수한 충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게는 이웃의 고통을 충분히 헤아리고 공감해주는 대신 문제를 분석하고

  성급한 해답을 제시하거나 정죄하려는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기뻐할 것은

고통 속에 있는 욥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죽여주시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같은 일련의 재앙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멸하기를 기뻐하신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더 완전한 평안과 더 깊은 소망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렘29-11

한편 욥은 비록 죽음이 찾아와도 도리어 그에게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음 후에도 가져갈 수 있는 나의 분깃은 말씀을 지킨 것 뿐입니다(시편119:57)

대부분의 사람에게 죽음은 가장 큰 형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된 자에게는 죽음마저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의인이 가진 담대함입니다


*나에게는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은 분깃이 있습니까?


출처-생명나무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