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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양지의 독창회가 어제 열렸습니다.
한.이.수교 130주년을 맞아서 열린 독창회입니다.
 
소프라노 양지는
한국 가곡과 이탈리아 아리아를 불렀으며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습니다.
특별히 모차르트의 곡은 밀라노에서 작곡한 것입니다.
 
소프라노 양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소개(리뷰)를 해드렸기 때문에
그녀의 노래의 표현에는 크게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녀가 뿜어내는 노래가 얼마나 출중한 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른 촛점에 맞추어 리뷰를 쓸까 합니다.
 
저는 어제 독창회의 연주를 감상하면서
갑자기 우리 나라의 가곡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가곡은,
말하자면~~~~서양식의 작곡법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곡입니다.
원조는 뭔 지 잘 모르나
홍난파선생님의 곡들이 초기의 가곡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내려 오고 있습니다.
 
가곡이 유행처럼 한때 많이 불리우기도 했고
그에 따라 우리들도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전에는 가을맞이 가곡의 밤, 봄맞이 가곡의 밤이 큰 무대에서 자주 열렸고
KBS-1 FM 에서는< FM 신작 가곡>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프로그램의 중간 브릿지에 한 곡씩 선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열심히 듣고, 좋아서 따라 부르게 된 곡도 있었는데 말이죠^^
(임긍수님의 내마음의 강물도 이때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가곡이
우리들의 음악회에서 슬며시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년부터 저도 그런 점들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소프라노 양지를 만나 그녀가 부르는 가곡을 들으면서
다시금 우리 나라의 가곡이 제 마음에 부각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나라의 가곡은 우리의 노래이므로
가곡의 멜로디도 좋고 거기에 가사까지 주옥같은데
그 모든 것을 잘 음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사가 주는 의미와 아름다움에 빠져
곡을 들으면 마음이 애잔해지고  반대로 기뻐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제 역시 그랬습니다.
정덕기선생님의 네 곡이 바로 그런 곡입니다.
저는 어제 이 곡들을 처음 듣습니다만,
가사와 곡조가 어쩜 그리 애절하고 사랑스러운지요^^
 
특히 네 번째 곡은
도은 이숭인(고려 말의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삼은이라 함)이 쓴 한시(漢詩)
박숙희님이 번역을 해서 내놓은 곡이라고 하는데
친구(유군수)가 보낸 차를 마시면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 곡이었습니다.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친구를 그리워 하며 마시는 차가
머릿 속에 그려지면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곡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요, 격조입니다.
 
이렇듯~~~우리의 가곡은 우리에게 주는 정서가 상당히 지대합니다.
그러므로 가곡이 더욱 활발하게 많이 불리우길 희망합니다.
 
2부에서 불렀던 곡 중에
<얼굴>이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신귀복선생님이 작곡한
<청자 예찬>역시 1부의 <그대가 보낸 차>만큼 좋은 곡이었습니다.
두 곡이 옛 정취를 자아내게 하는 곡으로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했는데
그것이 우리의 저 깊은 심연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성을 되짚어 주는 데에도
더 없이 좋았습니다.
 
어제 양지의 독창회를 감상하면서
우리 가곡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현듯 크게 일어서
제가 평소에 생각한 부분을 이렇게 감히 내놓아 보았는데
실력도 없으면서 공연히 한소리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도 드는군요.^^
송구하기 그지 얺습니다만, 널리 혜량하여 주세요^^
 
다시 독창회로 돌아 옵니다.
한국의 가곡과 이태리 오페라의 아리아
그리고 모차르트의 <exultate jubilate>까지....
그녀는 시종일관 한 음도 놓치지 않고 알차게 잘 불렀습니다.
소프라노 양지~~~~최곱니다!!!
 
다만~~~~외람돼죠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박수의 에티켓과 핸드폰의 문제들을요....
 
연주회를 하기 전에 프로그램을 받아 보는데
어제도 거기에 보니 노래가 묶여서 소개가 되고 있음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곡들은 한 곡이 끝나도 박수를 치지 않아야 합니다.
한 묶음 다 부를 때까지 말이죠^^
뭐~~~꼭 그런 법칙은 없습니다.
(저도 가끔은 이 규칙을 어기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렇게 해야 연주를 하는 입장에서는 곡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감상을 하는 청중의 입장에서도 곡을 좀 더 잘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주 직전에 무대에서는 방송으로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말라고 그렇게 그렇게 고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지요...ㅠ.ㅠ.
 
어제의 가곡은 한 곡 한 곡 다 다르지만 전체의 흐름으로 보건대
하나의 악장처럼 생각하면 훨씬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박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흔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안다박수>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곡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박수를 미리 치는 것입니다.
곧 끝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어제 2부의 가곡과 모차르트의 모테트에서 박수가 미리 터졌었지요...
더 나중에 쳤으면 무척 좋았을 텐데요.....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음악은
코다(coda,곡의 말미)부분이 꼭 포르테로만 끝나진 않습니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서 피아노나 피아니시시모로 끝나는 곡이 있습니다.
그렇게 피아니시시모로 끝나는 부분은 곡이 다 끝나고도 한동안 그 곡을 음미하라고
지휘자가 지휘봉을 안내리고 있고,
피아노의 경우는 건반 위에서 손을 안떼고 있으며 심지어 페달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때까지는 박수를 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음악회에서의 통례입니다.
 
작년 가을에 사이먼 래틀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이 왔을 때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연주했습니다.
이곡은 마지막 악장이 조용히 끝나고 사이먼 래틀이 지휘봉을 한동안
들고 있었고 단원들도 연주하던 악기를 툭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몇 초가 그렇게 흘렀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박수가 나왔는데
곡을 연주하기 전에 미리 방송을 했어야만 했지요^^
 
또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예수님의 수난을 그린 곡이기에 연주가 끝나도 박수를 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보까지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다박수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쪽으로 흘렀는데
곡을 우리가 잘 안다고 하여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수를 치는 것은
보통의 경우 에티켓에 벗어 납니다.
 
사실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만,
대개의 경우는 보편적인 것들을 따라 가면 되는데
미리 박수를 치면 좀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 역시 기분이 좋고 감흥이 깊으면 악장 중간에도 박수를 치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그것만을 예민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지만,
음악은 거기 온 청중들과 같이 즐기고 공유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차원에서도
보통의 매너는 지켜야 된다고 봅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으므로 한 가지만 더 덧붙입니다.
핸드폰 문제입니다.
제발 핸드폰은 꼭 끄셔야 합니다.
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핸드폰을 켜는 것도 결례고(불빛)
신호가 울리는 건 더욱 더 결례입니다.
게다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 역시 가끔 도촬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규칙을 크게 어기는 것입니다.
이 핸드폰 문제는 세계적으로 어느 음악당이나 다 골칫거리라고 합니다.
재작년에 맨하탄에서 한 뉴욕필의 연주회에서 핸펀이 계속 울리자
지휘자는 연주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것이지요^^
저도 앞으로 잘 지킬 것입니다.
 
어제 양지 교수의 독창회는
청중과 양지선생님이 한마음이 되어서 참으로 편안하고 오붓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양지교수를 다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모인 자리 같았어요^^
그래서 핸드폰과 박수의 문제도 사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청중이나...
그래서 더욱 뜻깊은 자리였기도 했고요...
 
저는 귀명창 몇 분을 모시고 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내노라 하게 음악회를 자주 다니는 분들이고
음악에 대해 내공이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감탄을 연발 하더군요^^
소프라노 양지가 대단하다고요...
인사로만 그러는 것 같지 않아서
제가 공연히 더 으쓱했습니다.ㅎㅎㅎ
 
뿌듯하고 뜻 깊고 은혜가 넘치는 독창회였습니다.
특히 앵콜곡인 <하나님의 은혜>에서는 저도 마음이 무척 뭉클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