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묵상본문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먹고 마시더라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용ㅂ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 1장1-5
해석도움
동방 사람 욥
우스 땅에 살았던 욥은 대략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추정되며 그가 살고 있던 지역을 부르는 '동방'이라는 표현은
요단 동쪽의 북아라비아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이런 이방인을 참된 믿음과 경외심의 표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가장 큰 믿음의 표본을 하인의 병 낫기를 구하는 로마 백부장과 귀신 들린 딸의 치유를 구한 가나안 여인에게서 찾았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민족을 구원하셔서 경건한 자기 백성으로 삼으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 1절은 욥의 신앙에 대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온전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영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여워해야 하며, 악을 미워하고 멀리 떠나야 합니다
*나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에게는 하나님의 경건한 백성이 되어야 할 이방인을 향한 비전이 있습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삶
오늘 본문은 욥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겼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녀들의 생일잔치가 끝나면 혹시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녀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 즉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딤후3:2)는 모든 타락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에서 거역하고도 전혀 마음에 찔림이 없고 도리어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화인 맞은 마음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욥과 같이 확시 부지중에 범했을지라도 모른 죄에 대해서도 고백하며(민15장27-28)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도 있습니다
이처럼 청결한 마음을 가진 욥은 결국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욥42장5절)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일에 대해 각별히 경계하고 있습니까
나는 말씀 앞에서 마음의 찔림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자입니까?
출처-생명나무GT
오늘부터 욥기서를 묵상합니다
바라긴 욥기 묵상을 통해 "세월호 침몰"로 고통 당하는 조국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이 위로와 용기를 받아 새롭게 비상하길 간절히 빕니다
고난의 신비, 고난의 유익(출처 생명나무 GT)
욥은 대략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의 족장들과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추정되며, 요단강 동편 지역에 있는
북아라비아 사람으로서 그 이름의 뜻은 '회개하는 자' 입니다
사탄은 이같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현세의 축복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뿐이라고 참소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탄이 그릇되었음을 증명하시기 위해 욥을 선택하였습니다
욥은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난 속에서 번뇌하며, 친구들의 정죄 앞에서 고통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의심과 싸워야 했지만
결국 사탄의 참소를 무너뜨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허용하신 이유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탄도 욥도 알지 못한 더 큰 계획을 위해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욥을, 아무런 죄도 없이 모든 인류를 대속의 고난을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욥기의 주된 내용은
'고난은 인과응보인가? 아니면
의인에게도 고난이 있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그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에 대한 논쟁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펼치는 주장은 현실에서 겪는 모든 재난은 죄의 결과이며,
그것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선행을 쌓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들 중
엘리바스는 자기의 종교적 체험을 기준으로 해서,
발닷은 조상들의 전통을 기준으로 해서,
소발은 자신의 직감을 기준으로 해서,
욥이 과거에 저질렀을 심각한 잘못에 대해 추정하여 '정죄합니다'
여기에 비해
네 번째 친구인 엘리후는 비록 욥의 항의가 사실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이 잘못되었고 고난이 단지 인과응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부여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친구들보다는 더 균형 잡힌 논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욥에게 직접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이 품었던 의혹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답변도 주지 않으신 채
창조주로서의 당신의 주권을 상기시킬뿐이었고, 욥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의인이 고통받고 악인이 잘되는 현실의 많은 모순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회의심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욥기를 통해 우리는 고난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절대 주권앞에서 피조물인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 큰 믿음의 성숙을 이루게 하며, 더 나아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을 보다 가까이에서
체휼하게 해줍니다
또한 욥이 경험한 갑절의 회복을 통해 고난을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최후의 심판을 통해 완전한 공의를 실현하실 것을 기대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