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왔는데
연락이 온 거야.
일 주일에 한 번 어디로 강의를 나가는 선생이 있는데사이버 대학 강의라 혼자 두 시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찍나 봐.
그게 끝나고 나면 좀 허탈하기도 하고 좀 뭐랄까 맥이 탁 풀리는 모양이야.
교류가 있는 수업도 아니니까.
그래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나는 힘이 빠진 채로, 그 선생은 허탈한 상태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자기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어.
"그때 아버지가 어른들만 가는 어느 모임을 가시려고 준비중이었어요. 남이섬인가 가평인가
암튼 평소에 저는 제 주장을 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너무나 아버지랑 거기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한테 거의 땡깡 부리듯 데려가 달라고 졸랐어요.
자기가 그렇게 처음으로 간절히 조르니 아버지가 데려가실 거라고 생각했지요.
근데요...........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참 미숙했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내 따귀를 때린 거예요."
그런데 그게 너무나 큰 상처로 남은 것 같아요. 대인관계에서 말예요.
그 다음부터 저는 어떤 사람에게도 부탁이나 무엇을 요청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지금은 제가 완전히 아버지를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역시 밉다는 생각이 있어요."
내가 "아버지하고 얘기해 봐. 아버지 그때 왜 그랬어요? 하고 지금이라도 " 했더니
지금 그런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러더라.
고등학교 1학년 때 첫눈이 오는 날이었다.
전형적인 10대 아이의 마음으로 눈길을 미끄러지며 내려오고 있었다.
즐거움으로 가득찬 얼굴로.
그때
"병신 꼴값\하고 있네"
이런 소리가 들렸다.
어떤 남자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하지만 그 말투와 목소리는 꽤 오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엄청난 두려움으로 많이 위축되었고, 세상의 눈치를 살피는 큰 원인이 되었던 일이기도 했다.
어렸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남자는 어쩜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은 날이었는지 모른다.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되는 일도 없고 어쩌면 막 싸우고 나온 건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눈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보기 싫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 부아가 났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내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맞다. 어제 그 선생한테는 말을 못했는데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잘못된 거였고 자기 말마따나 많이 미숙했던 거지.
대항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미련한 폭력이었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내 잘못인 양 느끼며 너무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건 좀 억울하다고
전에는 내 속에 커다란 어른과 어린아이만 있었지만 이제 우리 맘 속엔 작아져버린 엄마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노숙자도 있고
미숙하고 한심해서 딱해보이는 어른들도 있으니 이제 그만 그 아직도 양 뺨을 감싸안고 있는 그 여자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자고. ...
생각하다 보니 이제 화도 못내겠다. 내 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