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강가에서 들려오는 노래/신금재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네.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하는구나.

"자, 시온의 노래를 한가락

우리에게 불러보아라."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시편 137 중에서--


성당 주일미사전례 중에는 제 1독서와 제 2독서 사이에 화답송 순서가 있다.

성가대의 선창자를 따라 부르는 후렴귀가 있고 신자 전체가 하는 부분도 있는데 대부분 시편에서 따오기 때문에 시적인 표현들이 많이 보인다.

시공부를 하면서 좋은 표현들을 시편에서 발견하곤한다.

어느 날 시편 137편을 화답송으로 부르다가 평소에는 잘 읽지않는 구약의 성경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노예들이 강가에서 예루살렘 고향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가 그날의 화답송이었다.

아마도 잠시 쉬는 휴식시간, 잡아온 히브리 노예들에게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한가락 노래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르자니 만감이 교차하였을 터.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지은 것 같으리라.


얼마 후에 나는 미국 방문길에서 마종기 시작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라는 책을 구하게 되었다.

박꽃이라는 시를 읽으며 어린 시절 우리 뒤란에 심겨졌던 박꽃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시작에 얽힌 이야기 속에서 막스 브루흐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콜 니드라이> 작품번호 47-히브리 멜로디에 의한 아다지오-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곡이 소개되었다.


박꽃의 이미지와 히브리의 옛 성가가 어울리는 음악이라면 꼭 찾아보고싶었다.

느린 단조의 1부와 격한 장조의 2부 음악이 조용하면서도 비통한 선율로 나의 영혼을 바빌론 강가로 데려다주었다.

첼로는 무겁지라는 선입견을 깨고 풍부한 표현력과 진한 호소력으로 울려퍼졌다.


그날 성당에서 불렀던 화답송에 콜 니드라이를 떠올리면 마치 비빌론 강가를 거닐면서 히브리 노예들의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듣는 느낌이 들곤한다.


그런데 엊그제 이곳 캘거리에 나나 무스크리가 공연을 다녀갔다.

팔십의 노구를 이끌고서.


그녀의 노래를 찾다가 나부코라는 노래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나부코는 베르디의 오페라로 제 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나나 무스크리가 부르고 있었다.

제목도 모르고 들었던 노래가사를 찾아보았다.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아름답고 정다운 내 고향

산들바람 불어오는 내 고향

요단강 강물에 인사하고

시온성 무너진 탑을 보라

오라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내 마음 속에 묻히네


운명의 여신 하프소리

왜 그리운 가락을 울리지않느냐

마음 속에 불타는 추억

정답게 나에게 말해주오

구슬픈 운명의 솔리마여

비탄 젖은 소리를 지를 때

그대 위해 주님의 노래가

자비를 베풀어 주시리

자비를 베풀어 주시리

베풀어 주시리.


바빌론의 왕으로 엄청난 권력을 누렸던 그는 오만의 극한으로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였다고한다.

자만이 내린 댓가로 딸의 배신과 자신의 몰락으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참회하면서 겸손해진 느브가넷살왕이 바로 나부코이다.


어느 날 미사시간에 불렀던 시편 137편 바빌론 강가의 노래

마종기 시인의 박꽃이 피어나는 보름달 밤의 콜 니드라이

나나 무스쿠리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나부코


거대한 역사의 강물을 따라 찾아온 히브리 영혼의 물살이 요즈음의 내 마음을 흔들어놓으며 말하고있다.

 모든 것을 시간이 변화시킬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