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그랑 주머니 이정록
노각이나 늙은 호박을 쪼개다 보면
속이 텅 비어 있지 않데? 지 몸 부풀려
씨앗한테 가르치느라고 그런겨.
커다란 하늘과 맞닥뜨린 새싹이
기죽을까 봐, 큰 숨 들이마신 겨.
내가 이십 리 읍내 장에 어떻게든
어린 널 끌고 다닌 걸 야속게 생각 마라.
다 넓은 세상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여.
장성한 새끼들한테 뭘 또 가르치겄다고
둥그렇게 허리가 굽는지 모르겄다.
뭐든 늙고 물러 속이 텅 빈 사그랑 주머니를 보면
큰 하늘을 모셨구나! 하고는
무작정 섬겨야 쓴다.
(사그랑 주머니 : 다 삭은 주머니라는 뜻으로, 속은 다 삭고 겉모양만 남은 물건을 이르는 말)
몸과 맘을 다
장독 뚜껑 열 때마다
항아리 속 묵은 시간에다 인사하지.
된장 고추장이 얼마나 제맛에 골똘한지.
술항아리 본 적 있을 거다.
서로 응원하느라 쉴 새없이 조잘거리던 입술들.
장맛 술맛도 그렇게 있는 힘 다해 저를 만들어가는데.
글 쓰고 애들 가르치는 사람은 말해 뭣 하겄냐?
그저 몸과 맘을 다 쏟아야 한다.
무른 속살 파먹는 복숭아벌레처럼
턱만 주억거리지 말고.
-이정록 시인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어머니 학교라는 시집을 다시 읽었어.
시집이 뭐냐 하면 사서 보는 책이란다.
음악은? 씨디를 사서 듣는 것이고. 음악회에 가서 듣는 것이고.
세상 한 귀퉁이 이런 분들이 안 계시면 세상은 얼마나 되짚어 볼 수 없는
허전한 곳일까 생각해 본다.
이 봄, 시집들 한 권씩 <돈 내고 사고>, 씨디 한 장 <돈 내고 사라고>
주제 넘은 이 연사 친구들에게 외칩니다.
잘들 지내셔~~
<늘쩍지근한 이 봄날에>
올초 담근 고추장, 막장은 김치 냉장고에서
나머지 뜸을 들이고.....
(워따메 ~겁나게 맛있두먼 ㅎㅎㅎ)
정월대보름 지나 담근 간장은
자자한 햇볕받으며 지들끼리 소근소근 맛을 들이고 있다네,
갈색으로 우러난 간장물위에
이리저리 걸쳐대는 비쩍 마른 누리끼리 붉은 고추
수문장노릇을 하며 검은눈썹 치켜뜨고 있는 참숯덩이...
(아가덜아 ~! 재밌게들 놀고 있어라 ~잉~!)
흐미한 <봄날> 한탕 즐기고 돌아오면~~~
풀어헤쳐진 안동메주 두덩이는 소쿠리에 간장빼서
작년김장 때 꿍쳐놓은 고추씨가루와 맨손으로 처덕처덕
버무려 노리끼리 햇 된장내 풍겨내는 곱디고은 그넘일랑
예쁜 항아리에 나무주걱으로 꾹꾹 눌러담아 고은소금 솔솔 뿌려
양지바른 창가에 망주머니 씌워 놓고.
자기본분 다하고 짜 ~한 햇볕아래 반짝이며 지둘리는 간장물을
댓짜솥에 쫄여내어 자그마한 예쁜 항아리에 곱게 담아
장항아리 옆에다가 자리잡아 망주머니 씌워놓고.
(내배 다칠라.....!)
장마때엔 눈알 요리조리 돌리다가 손 툭툭 털고
심산유곡 나으 놀이동산으로 여름날 즐기려 떠나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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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갈뀨?
(주제넘은 연사 외치는 소리에
주제넘은 온니가 한번 들어 와 봤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