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술을 마시지만 막걸리를 즐겨하진 않는다.

막걸리는 마시면 너무 배가 불러서 숨이 차고,

이 막걸리가 순한 듯 입에 들어갈 땐 쉽게 들어가는데, 

이게 언제 취했는지 모르는 무서운 술이라는 걸 몇 번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잘 안 마시게 되었다.ㅎㅎ

사람마다 약한 술이 있다는 걸 안 건 나중 일이다.

난 막걸리, 맥주에 약하다!

뭘 즐기냐고? 뭘 그런 것까지 아시려고.....

 

아침에 제고인 한 분이 자유게시판에 사진과 함께 올린 막걸리 이야기를 읽으니

문득 입에 침이 고이면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대학 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써클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서클 활동을 해 온 친구들이었고

고등학교 이후에도 계속 만나다 보니 어떤 때는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말이 써클이지 뭐 노느라도 바빴고, 착하기는 한데 암튼 뭔가 복잡한 애들만 모인

재밌는 모임이었다.

하긴, 그 시절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암튼 큰 돌덩어리 하나씩 등에다 지고는

내가 세상에서 젤 힘들고 젤 괴롭다는 생각을 하며

우중충하게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우리는 참 잘도 만났다.

인생아 너 뭐냐?

이런 화두를 끌어안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절의 아이들.

 

모임을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나면 항상 가는 술집이 화평동에 있는 광신주점이었다.

모양만 감자탕인 아주 싼 음식을 내는 허름한 술집이었는데

친구들은 거기가 편했는지 암튼 거의 매일이다시피 거기를 갔다.

돈들도 없을 때라 한 번 시키고나서는 매번 아줌마 국물 좀 더 줘요 소리가 바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술이란 게 정~말 궁금해서 나 혼자 드라이진 한 병을 사서 학교 등나무 덩쿨 아래에서

마시고 땅이 푹푹 꺼지고 하늘이 도는 상태에서 어찌어찌 걸어 학교 근처 하숙하는

친구집에 가서 자고 그 다음 날 죽을 고생을 한 그 다음부터 살살 마시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주로 신포동에 있는 성지다방에서 만났는데, 거기는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음향이 마치 폭포가 쏟아지는 듯 하던 곳이었다.

우리는 늘 Epitaph를 듣고, The saddest thing을 듣고 송창식 노래 듣고 했는데.....

 

그런데  자리를 옮겨 그 떠꺼머리 친구들이 광신주점에서 부르는 노래는

항상 흘러간 옛노래들이었다.

뭔 스무 살짜리들이 그렇게 흘러간 옛노래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이 노래가 항상 마지막 노래였다고 기억한다.

한 아이가 그 노래를 시작하면 나머지 친구들이 전부 젓가락으로 드럼통 위 양은 판을

두드리고

-철삿줄로 두 손 꽁꽁~-부터는 언제나 합창이 되곤 했다.

 

서로의 고통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그 시절.....

젊고 어렸던 그때 우리 모습이 그립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그때의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치 나의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뇌로 가득 차 깊은 눈빛을 했으나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아이들.

그 시절의 <우리들>의 모습이 안아 주고 싶은 안쓰러운 자식처럼 느껴지는

이 느낌,

이거 뭘까?

 

 

오늘 회식이 있는데 막걸리나 한 잔 마셔 볼까나...

한 잔만!

 

막걸리~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