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 받은 후-

여호와의 영이 다윗의 걸음 걸음을 아주 치밀하게 인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첨엔 여호와의 영께서 다윗을 왕실로 입궁시키는 것을 봅니다

악신 들린 사울 왕 앞에서 다윗은 수금 타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엔 골리앗 앞으로, 그 다음엔 사울의 군장이 되여 이스라엘 앞에 출입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미갈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신혼생활은 한갖 꿈일뿐이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니 사울은 자기의 사위 다윗을 일컬어 자기 대적(원수)이라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도 자기 딸 미갈 앞에서 말입니다

이제 다윗은 왕의 대적으로 죽어 마땅한 국가적인 죄수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간 곳은 사무엘이 있는 라마입니다

그에게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어찌 행하였는지 말했다 합니다

쪼쟎하다 싶지만 만일 사무엘이 다윗과 사울에 관한 사전정보 없이 있다 갑자기 왕의 군졸들이 쳐들어 오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암튼 다윗은 사무엘에게 미주알 고주알 다 일러바치고 난 후 대단히 홀가분했을 것입니다

나 같은 경우 혼자 끙끙거리던 문제를 담임 목사님께 넘기고 나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숨통이 트이고 발걸음이 가벼워지지요

 

나아가 다윗은 자신의 기름부음에 관하여 무척이나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담 더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왕의 대적자로 몰리게 된 것인지 가장 질문하고픈 난제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갓 결혼한 신부 미갈를 두고 이리 도망다니는 신세가 과연 기름부음 받은 자의 모습인 것인지..

도대체 기름부음이 뭐길래 이토록 괴로운 것인지...

다시 물리고픈 심정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그는 예전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정치판에 들어가게 된 것을 봅니다

선지자나 제사장의 기름부음이 아닌 왕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응당 그리 되어야 할 것이지만

무척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낮 양 치는 목동임에 불과한 자신에게 정치적인 자질이 있기나 한 것일까?

아니 그 무엇보담 더 <정치적인 소명감>이 있는 것일까?

 

길지 않은 시간들이였지만 다윗의 눈에 들어 오는 왕권과 야합한 세력들을 보며 그는 절규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정치판에 뛰어 들어가느니 차라리 다시 목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신상에 좋다 싶었을 것입니다 

 

나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자각할정도로 받은 이후 맨 처음에는 예수 믿는게 참 쉬워보였습니다

허나 날이 갈수록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예수 믿는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예수님을 내가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예수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날 떠나지 않고 늘 십자가의 못박히신 예수와 함께 죽고 또한 그분과 함께 사는 복음의 비밀을

삶속에서 가르쳐주시지 않았다면,나는 벌써 오래전에 예수님을 배도하였을 것입니다

아님 십자가와 세상을 적당히 야합한 폼새나는 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하길 나욧에서 사무엘이 다윗과 함께 살았다 합니다

사울과는 사무엘이 함께 살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허나 다윗만큼은 사무엘이 곁에 품고 살았습니다

비록 다윗은 사울의 핍박이 원인이 되여 왔지만 그 핍박은 가장 축복스러운 만남을 갖도록 만든 희망 가득한 핍박이였습니다

삶이 우리를 핍박할 때, 그것은 가장 축복된 만남으로 나를 인도해 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게 정답일 것입니다

 

왜 사무엘은 다윗을 곁에 두고 살았을까요?

사무엘이 일평생 살면서 알게 된 하나님과 그 나라에 관한 여러가지를 소상히 가르쳐주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사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예요

 

결국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왕도를 배우게 된 셈이지요

더불어 왕으로서의 소명 의식도 새롭게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앞으로 통과하게 될 고난의 터널을 넉넉히 지나갈 수 있는 자양분들을 많이 많이 섭취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사무엘과 라마나욧의 공동체를 통해 배울 것들을 배웠을 때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오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어찌 보호해주시는가를

다윗 평생에 기억할 수 있도록 놀라운 일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걸 직접 눈으로 보면서 살았으니 다윗이 어찌 다윗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역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리 당신이 만드셨는데도 다윗을 두고 두고 당신과 마음이 합한 자라고 칭찬하시는 것 보면 울 아버지 참 재미있으셔요

 

사울이 세 번씩이나 다윗을 잡아 오라고 보낸 전령들과 

네 번째로 찾아 온 사울에게까지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하도록 만드는 것을 봅니다

사울은 세구라는 큰 우물가를 떠나 라마나욧을 향해 가는 길 내내 예언을 했다 합니다

라마나욧 사무엘 앞에서는 옷을 벗고 온종일 누워서 예언 했다 합니다

 

누구를 위한 예언인 것인가?

무엇을 예언하였을까?

분명 그 예언은 하나님을 위한 에언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함은 그가 기름을 부은 다윗 왕과 그 나라를 위해서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이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때 그 예언들은 사무엘과 그의 생도들에게 라마나욧 신학을 정립하는데 엄청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라마나욧의 실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라마나욧의 실체인 말씀보다 기도를 더 중요시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이 우선시 되지 않는 기도는 모두 인간적인 기원에 불과한 종교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를 지켜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다윗이 그 때 라마나욧이 아닌 다른 곳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해주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결코 라마나욧이란 공동체원들이 기도를 하도 많이 한 결과 그 터가 특별히 영빨이 세기 때문에

악한 사울도 넘어져 예언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기도 빨 하나도 없는 다메섹 석상에서 꼬꾸라져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누군가 다메섹에서 열심히 기도를 한 자가 있었기에 특별히 예수님께서 그 장소를 택해 사울을 꼬꾸라지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필요하셔서 다메섹 석상에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라마나욧을 엉뚱하게 해석하면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게 됩니다

라마나욧의 실상인 예언, 즉 말씀을 붙잡지 않고 그곳에서 나타난 성령의 현상만 본다면

우린 얼마든지 지극 정성 기도 많이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할 것이라는 헛된 영광과 헛된 꿈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도구화시키는 대단히 큰 죄를 범하게 된답니다

사탄은 이런 자를 미혹합니다

말씀을 붙잡지 않고 나타난 표적과 기사만 붙잡고 기도할 때 미혹의 영이 왜 아니 오겠습니까?

미혹의 영이 주는 기적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자랑하며 다닐 때 그 말을 듣는 자들이 미혹되고 그러다 보면 미혹의 영들이

집단화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미혹의 세력이 형성된 것이지요

라마나욧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영낙없이 미혹의 영들이 틈타 종내는 미혹의 세력 장소로 전락해버리게 되지요

 

주님!

소명이 있는 자를 보호해주시는 주님

소명을 다 이루기까지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시는 주님

라마나욧에서 사울과 그의 전령들이 예언한 그대로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라마나욧은 

오늘도 내가 껴입은 두터운 옷들을 벗고

다윗의 사자이시며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 말씀과 상관하며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능히 벌거벗은 자로 만든다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입혀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그리스도로 입혀 주시기 위함입니다

자격 없는 자를 어찌 이리 우대하시나이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