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 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 갈 때에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숫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상1:19-28
해석도움
한나의 결심
하나님은 한나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던 한나가 아들을 얻게 되었고, 한나는 그 아들을 "여호와께 구하여 얻었다"는 뜻으로
사무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은 가장 위대한 일을 한 인물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구하여 은혜로 받은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선물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편, 한나는 아기가 젖을 뗄 때까지 성전에 올라가지 않고 아들을 양육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여자는 남자들과는 달리 해마다 열리는 절기에 참석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기를 기뻐했던 그녀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에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바로 아기가 젖을 때자마자 곧바로 그를 하나님께 드리기 원했던 것입니다
사실 한나는 사무엘이 레위인 태생이라 굳이 성막에 드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도
있었고, 시간을 지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이 다 자랄 때까지 서원을 갚는 시기를 늦출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서원을 철저하고 온전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한나의 고백
경건한 엘가나는 한나의 뜻에 대해 동의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비록 아내가 서원할지라도 남편이 동의해야 효력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정의 평화가 일방적인 서원으로 깨어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엘가나 부부는 아이가 세 살 쯤되어 젖을 떼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로 올라가, 성대한 예물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리고 사무엘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있습니다
한편, 아들을 바치면서 드린 하나님의 고백은 은혜받은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빌린 것을 되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16)"
오늘날의 부모들도 한나처럼 유아세례나 헌아식을 통해 자녀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맡겨 두신 생명이라는 사실을 똑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출처-생명나무GT
당신의 단 한번 생각해주심을 사모하며
오늘 말씀에 보니 엘가나의 집안이 자기 성읍 라마를 떠나 여호와의 집이 있는 실로까지 와서 제사를 드린 후
아침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다시 돌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엘가나와 한나와 동침한 것을 봅니다
성경은 별 이야기를 다 쓰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후 거기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섭하시는지 덧 입혀 보여주고 있는 것을 봅니다
동침을 그리해도 잉태치 못했던 한나를 하나님께서 생각하자 임신이 되는 것을 봅니다
그분의 단 한번 생각해 주심에 매 달 실패만 했던 임신의 꿈이 성취되는 것을 봅니다
한나가 얼마나 자기를 솔직하게 쏟아 놓았으면 술 취한듯이 기도를 하였을까?
아이 없음이 곧 당대 최악의 수치라는 걸 그녀가 전인적으로 인정해야만 했을 때
그녀의 기도는 오열과 통곡과 격분과 원통함으로 점철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내 수치를 통전적으로 100% 인정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허락치 않고,
체면이 허락치 않고,
내가 배운 여러가지 다양한 지식들이 서로 서로 조합되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이 세상 가치관과 세상 사조의 흐름이 능히 변명하고도 남을만한 이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나에게 있어서 자신의 수치를 인정하는데 시간을 끌도록 만든 자가 있다면 그녀의 남편 엘가나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하되 열 아들 못지않은 사랑으로 사랑을 해주며 한나를 위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녀는 적수 브닌나에 의해 그 위로가 더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수치를 인정함과 더불어 그 수치를 벗기 위해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동침을 아무리해도 임신을 못시켜주는 남편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지요
남편의 한계를 일찍부터 인정하면 한결 여자들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의 열 아들 못지않은 사랑의 옷-
정실 부인이라는 옷-
레위 족속이라는 영광스러운 가문의 옷-
그 외 많은 옷들이 그녀에게 있다쳐도 그 수치를 가려 줄 옷은 오로지 아들의 옷을 입는 일이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적으로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아들이 없는 것이 왜 수치인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들이 없다는 것과 생명이 없다는 것을 별개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5장12절에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고 생명은 유한적인 생명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뜻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란 실제적인 인물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순정)가 꼭 가져야만 하는 아들(하나님의 아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나아가 그 아들이 우리(순정)게 있으면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그 아들이 우리(순정)게 없으면 생명이 없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자(영생의 씨가 없는 모든 인류)는 남자(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씨(영생의 말씀)를 받게 되면
반드시 그 씨를 소멸시키지 않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씨를 소멸시키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그 씨를 신부인 몸(주님의 몸된 교회)으로 착상시켜 그 씨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들(아기 예수)을 낳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낳은 그 아기 예수로 인해 교회는 소멸되지 않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게 마련입니다
아기 예수는 자라 장성케 되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는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주님의 몸된 신부가 장성한 분량의 아들 예수님으로 부터 받은 씨앗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씨 도적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씨앗은 그 씨가 한 일 그대로 합니다
그 과정속에 교회는 또 아기 예수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장 큰 수치로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한나처럼 아들(작은 예수)을 낳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긴다면 분명 통곡 오열속에 회개케 됩니다
그리고 나면 한나처럼 <하나님의 생각하심>을 반드시 입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도록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칠거지악 중의 하나로 규정해 놓음으로 인해
아들 없음의 수치를 그저 덤덤하게 받아드릴 수 없도록 만든데에는 나름 깊은 의미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들이 없을 때 아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씨받이 제도까지 허용한 조선의 역사는
참으로 깊고 높은 역사의 뜻을 이루려 함에 부부 관계의 사적인 감정들까지 거세시켰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도 이렇듯 우리들에게 궁극적인 진리의 내용을 말해줌에 거침없습니다
요즘 들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른 행세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조차 내 체면 치례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나는 너무나 오랜 세월 당신으로 덧입으며 산 자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당신으로 무장하며 산 자입니다
이러한 내게 있어 당신이 숨어버리면 나는 정녕 벌거벗은 자입니다
당신이 가버리면 나는 정녕 수치의 몸일뿐입니다
발가벗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버린 순간을 "어찌하여 아버지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며 오열하셨습니다
나도 정녕 십자가의 예수님안에서 그렇게 절규할 수 밖에 없도록
당신은 내 모든 무장과 단단이 껴입었던 모든 옷들을 가차없이 벌거벗기시는 자이십니다
오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이제는 교회의 다음 세대를 이어나갈 교회의 헌신된 아들로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