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히게

 

초등학교  1학년인  예원이가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이름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꽃  데이지를  골랐다.
식구들에게  이제  부터는  데이지라  불러  달라  하니
곁에서  가만히  지켜본  동생이  자기도  데이지를  하겠단다.
그런  동생이  한심하다는  듯    "그렇게 이름이  같으면  사람들이  헸갈려서  안  되니까  다른  이름을  쓰자"  라며  달랜다.
그래서  겨우  마음에  드는  이름을  하나  지었다.
5살은  핑크에  꽂히는  시기라고
워낙  핑크를  좋아해  부츠도  핑크로  신고  다니는  아이인지라  "핑키"  라고  하자  하니  얼른  좋아라  한다 

 

 

토요일만  되면
그냥  이불  속에  있는  아이들이  차에  실려져  송림동엘  온다.
할머니  집에  와서  아침  먹고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종알종알  쏟아낸다.
데이지는  언니는  착해야  한다  라는  마법에  빠져  막무가내이고  찔통인  핑키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화도  안  내고  타이른다.
그런데  핑키는  그것이  아니다.
언니에게  주먹질까지  한다.
언니는  울고    동생은  마주보고  눈을  흘기며  같이 울고  있기에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자기 소중히  여기는   그림공부책인데  동생이  엉망으로  해  났단다.
실제로  보니  색칠이  엉망진창으로  범벅이다.
그래서  책을  빼앗아  혼을  냈더니  주먹으로  언니  가슴을  냅다  쳤다는  것이다.
동생에게  얻어맞고  기가  막힌데  언니라고  때리지도  못하니  분해서  언니가   울고  있는  중이다.
동생에게  언니를  왜  때렸냐  했더니
같이  써도  되는  것을  자기가  썼다고  소리를  질러서  때렸다며  같이  울고있다.
그래도  언니를  때린  것은  네가  잘못했다 하니  더  서럽게  운다.
결국  다음에  그림공부책을  똑같이  다시  사  주기로  하고  서로  "미안해"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요  둘째가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
한번은  같이  만나  송림동엘  가는데  빤히  쳐다보며  할  말이  있단다.
"고모,  오늘은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한다.
깜짝  놀란  내가  "어머!  고모가  지원이를  맨날  괴롭혔니?  미안해.  오늘은  절대로  괴롭히지  않을께"하고  도장을 찍고  복사까지  했다.
이건  그냥  누가  시킨  것이 아닐까 해서  남동생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어이가  없단다.
그  날이  끝나고 " 오늘도  고모가  지원이  괴롭 혔니?"  했더니
아니라고  하며  다음에도  사이좋게  지내잔다.

 

 

오늘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겨울방학  숙제가  하기  싫어  요리조리  핑게를  대는  예원이를  막내고모가   방으로  끌고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내  옆에서  퍼즐을  하던  지원이가  나에게
"고모,  저  옆  방에  살금살금  들어가서  공책이랑  색연필  좀  갖다  줄  수  있어?" 
"왜,  살금살금  들어가야  하는데...?" 했더니
 "언니가  지금  혼나고  있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조심해야  되는거야?"

요렇게  속이  말짱한  것이...

 

 

지원이가  맨처음  천자문을  외울  때는  다들  깜짝  놀랐다.
조그만  입술을  벌렸다  오무렸다  하면서  검을  현  누를  황...을 좔좔  쏟아내니  깜찍하다  못해  내  귀를  의심했다.
외할머니가  벽에  붙여놓고  가르쳤더니  그리  되었다고  올케가  자랑을  했는데
요즈음은  하기  싫으면  무조건  "내가  잊어버렸네"  한다.
아따띠아  라는  노래를  춤을  추며  깜찍하게  하더니  자꾸  시키니  실증이  났는지
하라  하면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머,  잊어버렸네"  이다.

 

 

아이들은  또  얼마나  날쌘지
학원  차에서  내렸는가  하면  어느  틈에  달아나  버리고  없어져 

외할머니가  몇번을  놀라고  나서는  할수없이  꿈에도  그리던  핸드폰을  사  주고  말았다.
언니의  핸드  폰을  보고  심통이  난  둘째를  삼일낮  삼일밤을  어르고  달래 겨우  제  처지를  이해시키고  나서야 

예원이는  휴대폰을  손에  쥘  수가  있었으니  언니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휴대폰에  대한  애정을  멈출  수  없었는지

동네  가게에  과자를  사러  갈  때에도  갑자기  확인을  한다.

"언니,  휴대폰  챙겼어?"

"어머,  깜짝이야.  내가  휴대폰을  놓고  나왔네"

전화  올  일도  없건만  결국은  다시  들어와  휴대폰을  챙겨  나간다.

둘이  죽이  척척  맞는다.

 

손을  잡고  다정스레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식구들이  웃자  올케가  한마디  거든다.

"형님,  집에서는  지원이가  못쓰는  핸드폰을  들고  맨날  큰고모에게  전화를  걸어요"

"큰고모!  어제  나에게  그림공부책  사  준다고  했지?  잊어버리지  마."

"미안해,  큰고모.  내가  거짓말을  해서....."  라는  등  전화를  한다고.

핸드  폰  때문에  마음을  얼마나  다쳤으면  그런  가짜  전화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야!

그런  상처를  수없이  이겨내며  성장하는  것이란다. 

 

아이들이  성장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우리 세대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진  아이들의  세대를  보며   내  어린  날이  빛바랜  흑백사진 처럼  떠  오르는  것은  왜일까?

한글을  깨치기도  전에

영어  학원을  다니며  영어  이름을  갖는  아이들이  원어민  교사에게  배운  영어를  자신있게  말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하는  영어가  이상하다며  지적을  한다.

 

데이지와  핑키...

크레용  팝의  빠빠빠를  기가  막히게  노래하며  춤을  추는  아이들,

남자  친구들이  서로  "예원이는  내  것이야"  라며  양쪽에서  팔을  잡아  끄는  통에  죽을  뻔했다  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  세상은  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