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불쌍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세리처럼 가슴을 치며 고개도 쳐들지 못한채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가

무엇인지  그 기도의 깊이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내가 세리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의 깊이를 알고 싶어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성경은 죄를 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외면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죄인인 세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맘이 얼마나 부자이면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가?" 

 

그 때 나는 다시한번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가운

 데서 고민하나이다" 누가복음19장 20-24  

 

부자는 음부에 가서야 비로소 "나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아직 내 육체는 숨을 쉬고 있는고로 음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옥을 의심했던 나머지 성령님의 특별한 능력속에 지글지글 타는

지옥의 고통을 경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속이 전쟁터가 된듯 연신 분노와 짜증과 신경질로 뜨겁게 달궈져

내 혓바닥이 마치 불에 소금치듯 발광할 때 나는 지옥이 따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와~

구원받았다는 것이 차라리 부끄러울정도로 격동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절제되지 않는 혀-

 

그런 순간-

나는 부자가 <자신을 긍휼히 여기사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라는 애원이 남 말이 아닌 내 말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격정과 온갖 삶의 노폐물들로 부글거리는 내 혀를 서늘케 할 수 있는 생수 한 방울이

얼마나 그립던지요

동시에 자기 가슴을 지 손으로 치며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세리의 기도가

내 가슴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 가슴을 자기 손으로 치며 아버지께 간구하는 자들은 비록 죄인일지라도

100% 응답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런 기도는 죄인이 드리는 기도임에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한없는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사,

죽어서뿐만이 아니라 여기서도 당하는 음부 같은 고통을 끝내 주신 십자가의 주님!

그분을 가장 영광스러운 영광의 주로 믿음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몸으로 휘장을 찢고 들어간 곳에는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 법궤를 덮고 있는 시은좌를 열면 그 속에는

기적의 만나도 없고,

기적의 싹난 지팡이도 없습니다

오직 십계명이 들어 있을 뿐입니다

 

만일에 법궤 안에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도

만나와 싹난 지팡이처럼 없다면 우린 주님의 피값으로 얻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님 뜻대로가 아닌 내 멋대로 써도 된다는 교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법궤안에 돌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만나되신 주님과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기 위해 모형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실체되신 주님께서 오심으로 더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우린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었던 휘장이 찢어짐으로 인해

여호와의 거룩하신 성품을 문자로 담은 십계명 안에 들어가게 된 셈입니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십계명은 그저 내 몸 밖에 있는 돌비에 불과했지만

이젠 내 몸 안에 들어와 아예 심비(여호와의 거룩하심)로 체류하게 된 것입니다

기록하신 대로 새 마음 새 율례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야고보는 말합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이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 1:12-13

 

예전엔 내 몸으로 지키면 그만이였습니다

내 속이야 어찌든지....

허나 하나님은 만휼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분은 내 중심을 봅니다

심비(여호와의 말씀)가 되어 봅니다

 

그래서 나는 맘 다해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가장 불쌍히 여기며 맘 다해 사랑하지 못하는 죄악을 회개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 긍휼을 베푸사 주님의 피로 용서해주십니다

 

영광의 주 곧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심비를 다 지켜서 심판을 이겼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심비를 못지켜 내가 세리처럼 가슴을 치며 하늘의 아버지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할 때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다시 또 긍휼을 베푸사 주님의 피로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심판을 이기는 그 십자가의 긍휼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내게 베푼 가장 큰 사랑은

나 스스로를 불쌍히 여길 자로 판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내 맘을 치며,

내 생각을 치며,

내 치미는 온갖 판단들을 치며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만큼

사랑한 기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기쁘게 흠향한 기도이기에

다시 아버지의 기쁨안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립니다

 

내 이웃을 사랑함에 내가 나를 어찌 사랑했는가가 주안에서 항상 우선시됨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