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위대한 캐츠비를 읽고....
책의 끝장을 넘기며,
허망함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인생이 이렇게 허망하고 허무하고 가치가 없다는 것에 대한 회의와 함께.
개츠비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작가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져 한 것인가.
또다시 고개를 드는
‘위대한’이라 수식 되어진 개츠비에 대한 의문.
한 여자, 데이지를 다시 얻기 위해
그토록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자가 되고
데이지 집이 바라보이는 곳, 호화로운 집에서
주말마다 떠들썩한 파티를 열곤 했던 개츠비.
실은 영화 리뷰를 올리려고
ㄹㅔ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하는‘개츠비’란 영화도 보았다.
영화는 더욱 퇴폐적인 분위기였으나
소설의 배경이 된 1922년
그 시절, 뉴욕의 배경은 확실하게 보고 알게 된 이점은 있었다.
무대는 뉴욕의 롱 아일랜드.
롱 아일랜드 만(灣)을 사이에 두고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가 있다.
이스트 에그의 데이지가 사는 집 바로 건너
웨스트 에그에 커다란 집에 살고 있는 개츠비.
캐츠비는 그 만 건너에 있는 데이지 집에 초록 불빛이 켜지는 것을 보며
희망을 가진다.
언젠가는 데이지를 다시 가질 수 있다는.
이 소설의 화자인 닉과 캐츠비 (캐츠비 영화에서)
이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닉은
중서부 지방에서 채권 업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왔다.
닉은 호화로운 궁전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이웃 개츠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옥스포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개츠비는 베일에 쌓여있는 의문에 사나이다.
베일에 싸인 이 백만장자는 토요일마다 떠들썩한 파티를 연다.
개츠비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 참석한 후 개츠비와 우정을 쌓게 된 닉은
자신의 사촌 데이지와 개츠비가 옛 연인 사이였던 것을 알게 된다.
데이지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개츠비를 잊고
부유한 톰과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 톰은 정비공의 아내와 은밀한 사이였고,
때마침 개츠비와 재회하게 된 데이지는 옛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어느 무더운 날
개츠비 자동차를 데이지가 운전하다
술에 취해 거리로 달려 나오던 정비공의 아내를 치여 죽인다.
걱정이 된 게츠비는 밤새 그녀 방의 불이 꺼질 때까지 지켜보는데
다음날 데이지는 여행을 떠나고
개츠비는 자신의 수영장에서
정비공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개츠비의 쓸쓸한 장례식.
떠들썩했던 그의 파티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장례식에 온 자는 없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에서 가져온 글을 실어보면,
21세기를 맞으며 미국 출판계에서는 유수의 출판사와 도서관들이
'20세기 최고의 소설 100선'을 발표했다.
저마다 다른 목록을 내어놓았지만 모든 목록에서 공통적으로
1등, 혹은 2등으로 선정된 책이 바로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였다.
이른바 '재즈시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성공의 야망을 품은 가난한 청년 개츠비는
1차 대전 중 입대, 남부의 상류층 아가씨 데이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개츠비가 유럽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데이지는 돈 많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돌아온 개츠비는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의 꿈은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결국 데이지의 배반으로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오직 하나의 사랑에 집착했던 개츠비의 종말은 그래서 더욱 비참하고 슬프다.
이 작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위대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제목이다.
왜 개츠비가 위대한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부정 축재를 한 범법자이고
사랑을 되찾기 위해 불륜까지도 불사하는 개츠비의 '위대함'에 대해
피츠제럴드는 꼭 집어서 세 가지를 말한다.
"희망을 가질 줄 아는 비상한 재능(extraordinary gift for hope),
낭만적 준비성(a romantic readiness),
그리고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 (capacity for wonder)"
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 뉴욕과 롱아일랜드 사이의
재의 골짜기(a valley of ashes)로
상징화된 혼돈의 시대,
영혼의 불모지에서도 꺼지지 않는
개츠비의 낭만적 이상주의를 피츠제럴드는 '위대함'으로 보았다.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피츠제럴드는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했던 외가의 도움으로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재학 중
은행가의 딸 지니브러 킹을 만났지만 신분 차이로 거절당하고,
4학년 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복무 중 만난 판사의 딸 젤다 세이어와 교제했지만
그녀 역시 가난을 이유로 파혼을 알려왔다.
두 번의 상처는 이후 피츠제럴드 작품의 근간이 됐으며
‘위대한 캐츠비’는 작가 지신의 분신으로 탄생되었다.
-1896년 미국 세인트폴 출생
-1913년 프린스턴대 입학
-1917년 1차 세계대전 참전
-1920년 처녀작 ‘낙원의 이쪽’
-1922년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거꾸로 간다’
-1925년 장편 ‘위대한 개츠비’ 발표
-1940년 심장마비로 별세
Gabriel Faur? - Sicilienne, for cello &piano, Op 78
수인 선배님
안녕하시지요. 이렇게 또 해를 넘깁니다.
제 북클럽에서 얼마전에 <위대한 캐츠비> 를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아이들 공부를 시킨 엄마는 이 책이 미국 고등학교에서 필독케 하고 에세이를 쓰게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더군요.
우리가 택했던 버젼은 김영하 번역 민음사 판이었는데요. 영어 원본이 딸려 있었지요.
우리는 이 책이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전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역시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를 논했었습니다.
앞글에 장영희 선생의 해설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런 것이었어요.
멍청한 데이지에게 품었던 캐츠비의 "순정" 그 감정이 위대하다는 것이었지요.
특히 1920년대의 허물어질 듯한 미국이었지만, 그 같은 순정을 지니고 지켰던 캐츠비가 위대하다는데
의견을 모았었습니다.
순정은 늘 지고, 배반당하고, 지켜지지 않은가보다고도 했고요.
해서 더 기려지는 마음이라고도....
데이지가 캐츠비 집에서 실크 셔츠를 내던지며 감격하던 영화의 한장면 슬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는
화자인 닉의 어정쩡함도 눈여겨 봐야한다고.....구경꾼같은 우리들 태도가 거기 있지않냐고
반가운 마음에 댓글 두서없이 달긴했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제가 이렇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고요한 감성과 깊은 사유를 나누게하는 좋은 에세이 자주 부탁드립니다.
난 아직 그 책을 읽지 못하고 영화도 보지 못한 고로 댓글을 나중에 쓸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해가 바뀌니 생각을 바꿨다.
게다가 수인이가 오랫만에 등장했는데 가만있을 수는 없지.
수인아
내년에도 더욱 건강하고 알차게 멋진 할머니로 살게 되기를 빈다.
순애도 명제도 요기서 인사해야지
자랑스러운 후배님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수인~!
반가워.
여전히 책 많이 읽고
여행 잘하고....
내년에도 건강하게 여행 많이 하고
예쁜 모습 잘 간직하고
졸리믄 자고
배고프믄 맛난거 묵고
나들이가 고프믄 휭 떠나고....
새해를 맞아 가족 모두 건강하기 바란다.
수인아 ~~~
새해에도 건강하여 책 많이 읽거라.
나는 "위대한 캐츠비"보다 니글이 더 흥미롭다.^^*
내년에 엘에이 가서 5일정도 머물거야.
아직 너나 나나 정확한 스케줄은 모르지만 연이 닿으면 차라도 한잔하자꾸나.
즐거운일이 많은 새해가 함께하길 바란다.
?수인~!
명제~!
오랜만에 글도 읽어보고 이름보니 반갑네.
작년에 딸 아이가 지아버지가 디카프리오 좋아한다고 첫번째로 다운 받아 준 영화였네.
내가 영화를 보고 멍하고 있으니까
산이할아버지가 .....한 말과 ...명제가 올린 글과 같아서
......슬그머니 웃고 있네......
지금 이곳은 아직 새해가 안된 시간이여서 컴앞에 앉아있네.
그래도 해변이나 시내엔 서양인들이 야단법석이라
아들아이가 외출이 위험하다해서 조용하게 있지.
태국은 아직 새해가 오려면 4월이라야 한다는데 (불기로 새해를 계산한다는군}
내가 기거하고 있는 이 호텔식 아파트인지도 연말연시 휴가로
객실이 만원사례......만국 박람회같네.
요란 난리 법석이던 캐츠비의 파티가 연상되네.
폭죽을 터트리고 난리야요....에구...
수인아~ 안녕?
내가 며칠 못들어올 사정이 있었는데 그 사이 좋은 영화감상 이렇게 올려줘서 고맙구나~
명제, 은희언니도 댓글로 만나니 반갑구요.
벤자민~ 이 작가의 작품이란걸 요기서 알았는데 그 영화도 무지 재미있게 봤어.
역시 사람의 심금을 울릴줄 아는 탁월한 작가인것 같구나.
개츠비에 왜 위대한 이란 형용사가 붙었을까?
다같이 생각해볼만한 명제이네.
나두 영화를 보면서 왜 위대한일까? 생각했었거든~
희망을 버리지 않고 ~ 그것이 사랑이든 생존이든~ 사는 모든 삶은 다 위대하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 개츠비가 죽지 않았다면 아주 시시한 줄거리가 됐을거 같아.
죽음으로서 많은것을 생각케하는 작가의 발상도 위대해.
디카프리오 보다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더 적역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낭만적 이상주의에 더 어울리는 인상의 느낌은 레드포드~
수인아~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고 건강해.
감사합니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기도 하지요.
예전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 주연의 그 낯익은 영화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