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게시판 뭐든 올리라는 명옥이의 우정어린 협박에(?) 아주 예전에 쓴 글하나 옮겨본다.
니들 웃고 즐거우라고......
지금은 시대가 좋아 이런일은 없으리라.
1980년 여름.....
간첩에대한 소양교육을 받고서야 미국행에 오를수있던 시절였다.
그당시는 유학생이 드물던 시절였기에 모든것이 두려웠는데
그런 으시시한 교육까지 받고나니 마치 적들이 득실대는 곳으로 가는 기분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아서 모든 정보가 어두웠다.
머리 뽀굴뽀글 퍼머하고 떠나던 일이 생각난다.
가서 말못해서 머리 못할까봐서....ㅎㅎㅎ
막상 도착하니 말못하는것보다는 금전적으로 힘들었다.
그당시는 달러를 일인당 가져갈수 있는 금액설정이 매우 적어서 유학생이면 누구나 궁핍하게 살아야했다.
남편은 늘 나의 머리를 퍼머해주고 나는 남편의 머리를 깎아주어야하는 운명(?)였다.
나야 남편의 머리를 나중에는 면도칼 하나로 10분이면 깎는 도사가되었고
급기야는 동네 유학생들 머리까지 뻥뻥 잘라주게 까지 기술리 늘었다.
그래서 동네 아저씨들 머리모양이 거의 다 같은 스타일였다.ㅎㅎ
문제는 남편이 내머리를 퍼머해줄때의 풍경.
남편은 힘들다며 담배 피워가며.....맥주 마셔가며 퍼머를 진행한다.
머리를 이끄댕이 저끄댕이 두리뭉실 잡아서 대충 말아주는데 어찌나 따갑던지....ㅎㅎ
좀 잘하라고 잔소리하고 찡그리고....급기야는 팔자타령까지한다.
"미국까지 와서 남편한테 머리 디밀고 퍼머해달라는 내가 미쳤지...."
"여보야~나도 마누라 머리 퍼머해주는 팔자니 아퍼도 좀 참아라~"
머리를 감고나서 거울을 본다.
우메~~~뽀글뽀글도 이런 뽀글이는 없다.
거기다가 부시시하기까지!
내가 다시는 당신한테 머리 하나 봐라! ...하며 결심하지만
유학시절 내내 나는 남편에게 머리를 들이댔고 나는 남편의 머리를 깍았다.
남편이 학위를 받고난후 그때 처음으로 미장원에 갔는데.....
예약제라 방에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는 대충 의사 소통도 할때라 그럭저럭 머리를 했는데.....
2달러로 해결하던 머리를 자그만치 50달러에 팁까지해서 57달러를 지불.
그래두 마치 여왕이된듯 기분이 좋았다.
남편에게 머리를 디밀고 퍼머를 하던 일을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풍경들였지만
그시절엔 누구나가 다들 그렇게 살았었다.
그래서 더욱 똘똘 뭉쳐서들 살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시대의 유학생들이 알면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이야기인듯 싶으리라.
허지만 우리보다 좀 일찍 유학온 선배들은 더욱 고생했었다.
200달러 이상은 갖고갈수없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남편이 해준 라면머리..인증샷
인숙아.
내 이야기 듣고 올려줘서 고마워.
공연히 으쓱하네(화림아 들었지?)
그래도 니네 남편은 담배 피고 맥주 마셔가며 머리 말아줬으니 장하다 얘.
우리집 남편을 보면 난 영 진화론에 동의할 수가 없는데......................
환경이고 뭐고 초지일관 안변하는 거 보면 창조론이 맞는다고 느끼거든.
암튼 간에 그리도 어렵고 도망치고 싶었던 기억들이 이렇게 모든 친구들을 즐겁게 하는 재료가 됬으니 그 아니 좋수?
경선아.
참 동창이 뭔지 지금 친하게 지내는 사람 대부분이 그저 동창이라는 이유 하나 밖에 없어.
우리 남동생 이야기로는 정서가 같고 추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네.
사빈이가(맞니?) 갈 까 봐서 벌써 걱정이지?
우리도 아직까지는 아들집에 가면 양희 와의 이별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란다.
양지는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서 그냥 울다가 끝이고!
매일 저녁이면 양희가 잘 놀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가지마 가지마 하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화림이 말로는 고런 것도 얼마 안남았댄다.
머지않아 짝사랑의 배신감 느끼게되겠지?
하긴 그러니까 살지
인숙아
네가 나오니까 이리 줄줄이 다들 오쟎아?
아주 잘했어요.
\계속 올리세요.
새로운 홈피 스타 탄생이네
어머나~ 인숙아~
어쩜 글 그렇게 재미있니?
저 뽀골 머리 ~ 너무 웃긴다 ㅋㅋ
그래두 남편이 말아준거니 얼마나 자랑스러우니~ 사랑스런 새댁이다.
아~ 옛날이여~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 잘한거여~
지금 훌륭한 요리샘으로 자리매김 했잖여.
난 새댁땐 시댁에서 일하는 애까지 딸려보내주고 남편 잘나가서 고생 안했더만 나이들어 고생 바가지로 한다.
한번은 다 고생하게 되 있는지~에구~ 사는게 힘들어.
그래두 홈피 들어오니 너희들과 웃고 옛일도 추억하고 너무 좋다.
첫째 손녀는 많이 봐줬더니 정들어서 지금도 날 좋아하지만 ~ 그래두 옛날처럼 만날때 막 소리지르고 갈때 못가게 울지는 않아.
돈줄때 젤좋아하는것 같아.
둘째 손녀는 거의 안봐주고 봐주는 아줌마 한테만 맡겼더니 어느날인가는 드디어 할머니 못생겨서 싫다고 하고~ 늙어서 싫다는 소린가봐~ 정말 못생겼나? ㅎㅎ
암튼 무지 서운해서 딸한테 교육 잘 시키라고 이젠 안온다고 했어.
정말 애가 되가는지 딸네집 가기 싫더라구~
암튼 그렇게 예뻐하던 손녀딸한테두 배반 당하구~ 여러가지로 힘들다.
재밌게 읽었어.
양평 인순네 집에서 하도 친구들이 많아서리 눈인사도 못했지
인숙이 안녕~(날 좀 보소 이제서야 ㅎㅎ)
그러잖아도 포틀랜드에서도 떡강의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웠었어.
우리 딸이 포틀랜드에 살거든.
작년 그곳에 갔을 때 학교 시절 일면식도 없던 유남해를 만났어.
동창이라는 이유 하나로 어찌나 대접을 잘 받았는지 감동이었어.
우리 동기들 내공이 십단은 돼 보이는 친구들이 많더라.
너도 그렇지?
앞으로 요 놀이터에서 재밌게 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