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묵상본문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좆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니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4장29-5장4
해석도움
굳건하게 서라
믿음과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박해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당시 율법주의를 교회 안에
심으려고 한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혈통적 우월성을 내세우거나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 파송을 받은 것터럼 사칭하며 연약한 초신자인
갈라디아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또 할례를 받을 경우 로마에서 공식 허용한 종교인 유대교로 인정할 수 있어 기독교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던 박해도 면할 수 있다는
말로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구약성경에 명시된 대로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내어쫒김을 당하고 결코 유업을 나누어 가질 수 없었던 것같이 율법
주의와 그것을 추종하는 자의 운명은 그와 같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들이 여종의 아들이 아니고,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은 것을 결코 잊지 말라고 권면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같은 영광을 누리고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은 신자의 권리일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자유를 지키려면 굳건하게 서야만 합니다
유대교와의 단절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그것은 만일 그들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할례를 받은 자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지닌 자가 되며, 이처럼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단언합니다
사실 당시 기독교 교회는 오랜 기간의 역사를 가진 유대교에 비하면 상당한 열세에 놓여 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기독 교회안에서도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들의 주장은 누구도 감히 비판을 가할 수 없는
권위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이 "율법"을 "종"으로, "복음"을 "자유"로 비유한 표현은 혁명적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오직 심판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사도바울의 선언은 유대교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바울이 얼마나 굳건하게 서려고 애쓰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열방기도-요르단 조중동, 전 심 선교사
요르단에서 살아가는 목자 잃은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조 선교사 부부가 주님의 마음으로 선교지 영혼들을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조 선교사는 주일에 선한 목자 교회를 ,목요일에는 쉬메이사니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이 교회들이 주님의 뜻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출처-생명나무 GT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는 독한 결정을 내립니다
사라의 그 결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약속한 성령님을
보내주리라"고 제자들과 헤어지기 직전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약속의 성령님을 받게 된 모든 성도들이라면 한 사람도 제외됨없이
적용되는 사례입니다
우리 역시 약속된 성령님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를 알아가게 되면 어린 아이 이삭 같은 연한 생명이 태어납니다
오래도록 율법의 잣대로 길들어진 육체로 살다가 이제 갓 태어난
새 생명으로 성령을 좇아 살아 가려니 폼새나는 언행은 고사하고
실수 연발입니다
그런 순간 내 육체의 본성은 연약한 새 생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도를 너머 아예 희롱의 대상으로 삼아버립니다
이럴 때 육체의 본성에 맞장구를 치면 아니됩니다
오히려 사라처럼 육체의 본성을 호되게 야단쳐 새 생명과
함께 하지 못하도록 쫓아내야 합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쫒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창세기21장10절)"
하갈이 아브라함을 유혹한 것도 아니고 지가 다 저질러서 일어난
일임에도 냉혹하게 내쳐버리는 이 현상을 율법적인 시각으로 보면
못된 사라와 억울한 하갈로 구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우리들의 율법적인 시각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그 사건을 당신의 말씀으로 인을 쳐 무분별한 해석을
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라의 독한 결정에 고민하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바울의 갈라디아서는 어쩜 존재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1장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바로 그 다음 날 일찌기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께에 메어 주며 떠나보냅니다
겨우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보내며 후쳐내는 아브라함의 행사 역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 행위 역시 큰 근심 중에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한 후 응답받은 행위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걸
아브라함은 누구못지 않게 알았고 또한 이스마엘을 놓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는 그렇게 모자를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그 믿음은 헛되지 않아 하갈이 광야에서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져 방성대곡 할 때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타나 역사한 것을 성경이
기록해 놓고 있는 걸 봅니다
그리고 육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그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나
육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든든한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응답해주신 것이였습니다
오늘 나는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라디아서 4장31절)"는 말씀을 읽으며 사라에게 있는
자유가 어떠한 자유였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자유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았기에 사라는 육체를 따라 낳은 아들을
그의 어미와 함께 내어좇은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그녀가 하나님의 약속보다 <젊은 하갈의 육체를 더 신뢰>했기에
낳은 아들이였습니다
아직도 사라가 하갈과 그 아들을 후쳐낸 것이 못내 섭섭함으로 다가 온다면
내 속에 아직도 내 육체의 본성이 우세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듯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보다 나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진단해도 오진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점 내게 있는 자유라곤 약속대로 얻게 된 성령님을 따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 머무는 자유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뜻에 늘 종노릇 하는 내 육체는 마땅히 내쫒아내야 합니다
설령 내 육체가 율법을 다 행하였다쳐도 그 행함이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헛되이 만드는 격이 되어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길이
된다면 차라리 죄많은 세리가 되어 불쌍히 여김 받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 자들이 실로 일부러 율법을 어겨가며 살까요?
은혜를 더욱 더 은혜되게 한다면 죄를 만들어 가며 살까요?
그럴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이 아닙니까?
때문에 바울이 사라의 사건을 제시해 보이면서 궁극적으로
확정짓는 단어는 "죄와 상관하는 종의 멍에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지만 따지고보면 율법의 불완전함을
완성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새 멍에를
메기 위해 기존의 멍예를 벗어버리는 자유인 것입니다
결코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자유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진리의 띠로 묶어 나를 끌고 갈 때
나를 기꺼이 내주는 자유입니다
바울은 이 자유를 지키려면 다시는 "죄와 상관하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기
위해 <굳게 서야>한다합니다
종이 되어도 율법이나 육체의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종으로 살 수 있는 자유한 종입니다
내 속에< 못박힌 주님의 십자가가 굳게 서 있지 않으면>
도무지 불가능한 자유입니다
바울은 남 말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내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님 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