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본문-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해석도움

너희도 나와 같이

사실 갈라디아의 이방 성도들은  원래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사탄과 천박한 세상 미신의 종노릇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을 들음으로 선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놀라운 존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경험을 한 갈라디아 성도들이 복음뿐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속이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다시금 율법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할례는 물론이요, 여러가지 구약의 기념일과 절기등을 두려워하며 지키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같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겸손히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인들이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얽매던 과거의 모든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된 것이, 바울 자신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모든 짐을 벗게 된 것보다 앞서는 경험인 것처럼 저들을 높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곧 바울이 율법의 행위에 의해 구원받기 위해 애쓰다가 그것의 불가능함을 깨닫고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그들이 받은 은혜의 복음을 다시금 회복하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의 회복

이어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바울 자신과 복음을 향한 첫사랑을 상기시킵니다

사실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그의 몸에 든 질병 때문에 부득이하게 체류함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병은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거나 업신여기게 하거나 내치게 할 만큼 좋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같이 그리스도 예수처럼 대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을 기쁨에 가득 차서 마음에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할 수만 있으면 자신들의 눈을 빼어 바울에게 줌으로 바울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이것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갈라디아 성도들로 하여금 다시 옛날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주기를 간청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이 같은 복음을 향한 첫사랑과 복음 사역자에 대한 친근함이야말로 영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슬림풀기-자의적인 꾸란 해석에 대한 경계

"꾸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폭력을 고취하는 행위를 중단시켜야 합니다"  때때로 이슬람 국가에서 듣던 이야기입니다  이슬람 세계에는

꾸란 본문을 왜곡하고 무슬림 신자들을 미혹하는 무슬림 종교인들도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들 중에는 무슬림 성직자들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꾸란 해석의 폭력적 적용을 줄이고 통제하기 위한 정책들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파트와"라는 율법 해석이 권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파트와"를 낼 수 있는 성직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꾸란의 자의적 해석과 폭력적인 저항을 고취하는 꾸란 해석을 경계하고 제어하려는 조치들이 효과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국어로 된 꾸란(이슬람에서는 이것을 꾸란이 아닌 꾸란 해설서로 간주합니다)이라도 균형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김동문 선교사

 

출처-생명나무 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