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살게 마련이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다른 모습으로 변해서라도 산다.
아들이 죽었어도 살고 딸이 도망갔어도 산다.
있는 재산 다 없애고도 살고 빚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도 산다.
존재의 이유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순결해도 살고 그렇지 않아도 산다.
물결의 흐름을 따라서도 살고 거슬러서도 산다.
사랑해도 살고 미워해도 산다.
2003년에 정식으로 한라일보를 통해 등단하였고
동년 인일총동창회홈페이지 오픈을 기점으로 고정 컬럼을 써왔던 11.강명희 동기가
금번 출간한 단편소설집 " 히말라야 바위치" 표지에 있는 글이다.
위의 표지에 쓰여진 글을 읽으며
소설가라는 직업이 일반인인 우리와 다른 것은
누구나 흔히 알고 있고, 말로도 뱉어내는 다양한 삶의 굴곡들을
머리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문자화시켜 정리된 문귀로 기승전결 이끌어내는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컬럼란에 가면 2003년부터 강명희가 쓴 글들이 있다. 클릭
동문들 중에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으며
인일홈페이지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한 강명희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몇몇의 친구와 선후배가 백운호수를 품고 있는, 꼭 우리들같은 분위기의 음식점에서 만났다.
중학교를 김포에서 마치고 인일여고에 유학하여
인천여중이 아닌 타교생이라는 혼자만의 사춘기 마음앓이를 했다던 그녀는
나이 60이 되어서
히말라야바위치를 우리에게 안겨주며
인일인보다 더 인일인스럽게 우리들 앞에 다가왔다.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고
웬지 내가 쓰는 글이 주눅이 들어가는 듯 조심스럽지만
한글자 한글자 몸으로 마음으로 타자쳐 내려가며 토해낸
그녀의 소설들을 많은 동문들이 함께 읽어주었으면 싶다.
나의 입장에서는
2003년 홈피 만들 때 사이버적인 안목이 나와 비슷해
서로 의기투합하여 홈피를 꾸려나갔기에
그녀의 출간이 나의 일처럼 기쁘기 이를데 없다.
다른 때와 달리 지금 글을 쓰며
이상하게 자꾸 위축이 되고 문장구성도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 것은
자랑스런 소설가 친구에 대한 열등의식이 솟구치기 때문인 것같다. ^^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그 시절 그 열정들이 그립다.
그 십년 동안 부모님 두 분이 다 타계하시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지인이가 말한 황안나님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되물으며
주눅들지 않고 60을 맞아해야겠다.
모처럼 칼럼을 다시 읽어보니 저거 내가 쓴 거 맞아 하는 생각이 든다.
저 때는 쓰고 뒤돌아서면 또 쓸 소재가 나오고 또 나오고 해서
정말 열심히 썼었지.
오랫만에 홈피에 들어와 글을 쓰니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단숨에 달려와 축하해 준 선배님과 친구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명희후배~!
산고의 기쁨을 축하합니다.
감히 아무나 할수 없는 일을 해내셨군요.
많이 기특하고 많이 부럽습니다.
더욱 발전하시어 인일의 작가가 아닌
세계의 작가로 우뚝 서시기 바랍니다.

어머!
넘 그립고 보고픈 이쁜 얼굴들이 있구나
얼마만이냐!
반갑다 다를~~
이렇게 사진과 글을 올려 준 영희 정말 멋있다
그리고 영희야!
개똥벌레가 나름 생각하는 명필이 있다 하더라
남의 글을 더욱 더 빛나게 해주는 졸필이 가장 명필이라는...
사진도 잘 찍고, 글도 자분자분 말하듯이 잘잘잘 써내려가고
이리 반듯한 홈피를 개척해 놓은 영희곁에 명희가 있어주었구나
나는 그 자리에 없어서 넘 부끄럽네
나도 순정이 이름을 바꾸어 순희했음 같이 있었을까 싶네 ㅎㅎㅎㅎㅎ
인일 11기가 히말라야바위초로 인해 정말 아름다운 12월을 토해내고 있구나
인일을 가꾸어준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하고싶구나
다들 잘있어라
태평양 바다 건너 있지만 언제나 너희들을 생각하는 순정이가
대학 들어가니 서울이 여고 서 너 군데에서 온 애들이
단과대학 정원 90명 중 절반을 넘더라.
함께 할 공통 분모가 없으니 참 외롭더군.
지금도 대학친구들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어.
명희도 지금까지 같은 심정이었을까?
해도 인일 출신이니 인일인인 것은 틀림없는 일.
인일인스러려면 어때야 하는 건지 잘은 몰라도
난 그저 우리 친구가 자랑스럽기만 하네~~~
대학 때 서울로 공부하러 통학하면서
내 말은 가장 표준말이라고 생각했었지.
헌데 날더러 인천 사투리를 쓴다고 하는거야.
예를 들면
밥 먹었니? 서울애들을 이렇게 말하는데
밥 먹었냐? 인천사람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지적하더라.
인천 출신은 나 혼자였으니 괜히 위축감이 든 것도 사실이고.
해서 밥 먹었니? 처럼 끝말을 니? 로 해보려 노력을 했던거 같은데
그 이후엔 별로 신경쓰지 았았던거 같아.
요즘 응답하라 1994에 사투리 대행진 하듯
각 지방언어로 드라마가 진행되던데
명희 소설에도 사투리가 등장하지?
사투리이기 때문에 소설이나 드라마의 묘미도 더해지는 것같아.
명희야~
오늘 페이스북에 네 이야기를 올렸어
파급효과는 인일홈에 비할바가 아니야.
SNS의 위력이지.
널리널리 퍼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래.
명희야~
페이스북에 홍보했더니
강희숙이 댓글 달았네..
장성숙과 이명희언니도 좋아요 클릭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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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야~~드뎌 해냈구나!!!
축하축하해!!!
장하다!!!
한 줄 쓰기도 버거운데......
언젠가부터 네가 안 보였는데 그 어려운 작업하느라 잠수했었군.
자곡동에서 이사 후 너랑 연락이 안 되었네.
열심히 너의 소설 읽어보련다.
다시 또한번 축하해!!!!
저는 강명희를 인일홈피가 배출한 작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토를 달고 이견이 있는 분도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저는 자신있게 그리 말할 수 있고
당당히 자유게시판을 통해 동문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명희가 제 친구라는 것이 기분이 좋군요.
저처럼 할머니라는 것도 좋고
저와 함께 10년 전 홈피 뿌리 내리는데 일조한 친구라 더 좋고
그녀의 말투가 저와 달리 수더분해서 더 좋습니다 ^^
컬럼란에 가면 명희를 만날 수 있고
다른 필진의 수준있는 글도 보실 수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