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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어느덧 시어머님 떠나신지가  십수년이 되어옵니다

시어머님이 아버님과 사별하시고 홀로 지내신 육년여 이곳 김포 한적한 곳으로 

아들며느리와 함께 아들 건강을 생각하시고 내려오시긴 하셨지만

꽃같은 열여덟 나이에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신 김포 대벽리 시집터전이 어찌 좋으셨겠읍니까 

갓 시집온  어린 새댁때 사래 긴 밭을 혼자 종일토록 매시며 서러우셨다던 

이곳 밭에 관한 이야기를 며느리인 내게 종종 하시곤 하셨었는데 말이지요

그런 사연깊은 이곳으로 내려오시기전 사시던 서울 서초동 아파트에서는

 노인정 친구분들과 하루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게 재미지게 사셨었는데 말입니다.

어머님 중년이후에는 그런대로 돈 걱정 일 걱정은 없이 말년을 풍족하게 지내셨지만

서울 사시면서 만사 편안하셔  체중도 불어나고 단 음식을 좋아하셔 그런지

팔십중반에 대장암수술을 받고 일년여를 견디시다  돌아가시고 말았읍니다

제일 번잡하던 서울 강남 아파트 사시던 곳에서 떠나오신 우리집이란곳이

이곳 대벽리 수안산 끝자락에 덩그마니 홀로 돌아앉아

마을 인가와 멀찍암치 떨어져 있고

 예전에 아시던 동리 사람들도 다 떠나버린

십오육년전만해도 한마디로 적막강산이였었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 내려와 자리를 잡고 난후부터 수안산자락 밑으로 도시 이곳 저곳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새로운 전원마을을 이루고 사는곳으로 변했지요.

농로길이던 집앞길도 이차선도로로 포장되어 

담장넘어 끊임없이 차들이 지나다니고 한적하던 십수년전 하곤

전혀 다른 모양세를 하고 있읍니다.

어머니 사셨으면 백세가 넘으실텐데 세월 참 무상합니다.

올 몇달전 미국사는 친구 어머님은 백세잔치를 하셨다는데 말입니다.

 

선택에 여지가 없이 아들 며느리 쫓아 내려오신 어머니 연세가

팔순이 지난 노구이시기도 하고

중년이후엔 고된 노동에서는 헤어나 편히 지내시다

일꺼리를 만들어 하시기도 어렵고 매사가  불편하셨으니

어찌보면 하나 있는 아들의 불효가 막심했지않았나 싶읍니다.

더욱이나 서울 사실때 하루가 멀다하고 노인정 친구분들과 하시던

화투놀이도 못하시게 되었으니 정말 소일 하고 지낼 꺼리가 없는 것이 죄송했었지요.

오히려 도시생활에 젖어 살던 나는 안하던 일꺼리가 많아져서 바쁘게 지내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전원생활이란것이 말 만큼 편하고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란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짬을 내어 어머님과 시간을 여하히 보낼까 궁리하다

문득 묘안을 떠올렸지요 노래하길 좋아하던 내게도 좋은 일이고

 동네와 인가가 떨어져있어 소음 걱정도 없으니 생각한 것이 노래방기기 설치 였읍니다

낙천적인 성품이신 어머님도 노래 부르는일은 못하셔도 듣기는 좋아라 하셨는데

"너는 노래를 할 줄 아니 얼마나 좋으냐~" 하시며

"에미야 흥겨운 노래도 듣기 좋다만 이 나이되니 난 그.....장 녹수가 좋더라

니가 배워 불러보거라"  해서 부르기 시작 한 노래 장 녹수

지금 헤아려보면 아마도 어머님은 인생 말년에 귀향 온 심정이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올 가을  친정고모님 팔순잔치에 참석하려고 미국서 다니러 온 여고후배네

잔치마당에서 병객이신 후배 고모님의 모습을 뵈니 우리 시어머님 모습이

연상되어 그 노래 장 녹수를 불렀읍니다.

 손님중 젊은 후배들은 잔치집에 웬 청승맞은 가락일까 했을겁니다.

팔순잔치 주인공이신 분의 살아오신 일생의 소회를 들어보니 내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이 생각나서였지요.

 

아들이 출타한 날이면 하루에도 몇번씩 불러달라시며

  " 에구 ~ 처량많긴 하다만 노랫말 구절 구절이 좋구나.........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그래 그래 그렇구 말구 ....."

하시곤 했었읍니다.

팔순중반의 시어머님 앞에서 육순을 바라보는 며느리가

핑계낌에 소리높여 이노래 저노래 부르다

마지막 노래로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부르던 노래 장 녹수......

이즈음 난 아직 칠순을 앞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 대곤 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님의 아들인 산이할아버지가 칠순을 넘기는 이즈음

부쩍 부모님의 연세가 본인과 같은 시기에 하셨던 일들을 돌아보며

그리워 하거나 회한에 젖기도 합니다.

 

11월 말이 다가오면서 겨울이 서두르는듯 진눈깨비를 몰아오고

바람이 몹씨 부는 오늘 오후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을씬년스런 계절이 오면  산이할아버지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후 쓴 시가 생각납니다)

 

"텃밭에 그리다"

                 -김 정 웅-

 

어머니의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와서

한동안 돌보지 못한

텃밭머리 나가본다

 

이따금 밭고랑에 엎드리는 나를

지켜 서 계시던 어머니의 텃밭머리

아직은 유월 초승인데 어느새 풋고추가

둑새마다 그렁그렁하다

 

그런데

무슨 이슬방울들이

또 그렇게 크게 매달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