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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허영렬 지점장-우먼 플라자(46)  


여성이여 “욕심을 가져라”  


    
한참을 걷다가 전화를 또다시 한다. 수화기 저편으로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더 올라오셔야 돼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오시는 게 좋았을 텐데.”

철조망이 길게 드리운 미군부대를 거쳐 국방부 조달본부를 지나니 바로 우리은행 간판이 보인다. 남산 초입이다. 시골 동네 우체국을 연상시킨다.

허영렬 지점장이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라며 몇차례의 인터뷰 요청을 물리던 모습은 표정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은행 점포가 690개에 달하지만 여성 지점장은 24명에 불과하니 그가 아무리 평범하다며 손사래를 쳐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의 이력은 이를 증명한다. 은행에서 보낸 스물다섯 해 가운데 18년 동안 외환관련 업무를 했고 영등포 지점에서 일할 때는 은행장 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전국의 지점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게 됐는데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더라구요. 사실은 그야말로 평범하고 원칙적으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굳이 노하우라고 하면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듣고, 설득했다는 것. 허영렬 지점장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끊임 없이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들의 요구를 알게 되고 그에 맞게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로의 신의가 중요합니다. 뺏으려고만 하면 금방 들통나고 오히려 잃게 돼요.”

후암동 지점장으로 와서도 그의 ‘평범한 진리’는 빛을 냈다. 후암동 지점에서 영업하는 지역은 서울의 중심이지만 역설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 노인 인구가 많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수익원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큰 시장이라면 국방부 조달본부가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농협이 먼저 선점하고 있는데다 건물 자체 출입도 불가능했다. 직원들이 안 될 거라며 말릴 정도였다.

“매일 아침마다 셔틀버스를 기다려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건물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도 찾아냈고 점심시간이면 식당에서 전단을 돌리며 가입할 수 있는 예금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씩 상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지금은 우리은행과 거래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의 ‘평범’이라는 말 속에는 여성이라서 겪게 되는 편견에 대한 거부가 녹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에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우수한 여성들이 계약직으로 편입돼 꿈을 펼치지 못하는 데에도 안타까워 한다.

“은행에는 이상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아파트촌에 있는 지점에 여성 지점장이 많은 것도 증거예요.”

그는 후배들에게 “욕심을 가져라”고 충고한다. “저도 입사 후 한참동안 남자들이 해놓은 일의 뒤치다꺼리를 했어요. 그런 일만 맡기더라구요. 다른 사람처럼 창구업무를 하겠다고 나섰어요.

그 후로 일이 잘 풀린 것 같아요. 적극적인 자세가 인생을 바꾼 셈입니다.”




한계희 기자

2004년 3월 4일 한국금융(www.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