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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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지 않은 노년을 지내고 싶다. 이것이 내 노년의 계획이란다. 그 동안 바삐 살았으니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음미하자면
자연속에 묻혀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생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0월 초 남편4촌누이들과 모임자리에서 고모부가 우리 세집이 시골로 내려가서 살자고 제안.
내륙은 황토집에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곳을 가봤지만 둘러봐도 보이는 곳도 없고 답답하닌 섬으로
가자고 한다 귀가 솔깃햇지, 내 취향이니까.
콩심어 간장, 된장 만들어 따가운 햇살에 맡겨두고, 고추 심어 태양초 고추가루 만들고, 김장거리 바닷물에 흔들어 김장하고,
바다 잔잔하면 낚시질하고 산에 가면 나물 지천이고 바닷가에 나가면 신선한 굴, 고동, 게잡이 등등...
그 분들 어렸을 때 놀던 추억 줄줄이 떠 올리며 내린 결론은 집 한 채 지어 섬으로 가자고 . 아이구나! 생각만 해도 무지 즐거웠다.
그래서 답사릉 떠났다. 감기가 몹시 들어 손주도 못보던 10월23 - 24일에 .
아파서 못 간다하면 두 집도 안간다고 하시기에 다른 분들 노년 계획에 차질을 주면 안되지. 멀쩡한 날은 손주 돌봐야 하는데
아픈 날 가자니 감사한 일이지 하고 갔는데 신기하게도 도착한 저녁에 감기는 다 낳아 있었다.
점심에는 부대찌게에 소주한잔 (숙자야 미안 그렇다고 많이는 안 먹어 ) 저녁에는 꽃게 15마리 쪄 놓고 소주 한잔 이었는데
허기사 이렇게 몰려 다니니 엄청 많이 웃었거든. 이런게 다 약이 되었겠지.
그런데 어찌 된줄아니 ? 상일동에서 지하철 첫차( 5시30분)를 타고 연안부두가는데 여객선 출발시간 15분 전 도착.
배 시간 늦을까 봐 마음 졸여 심장 도망가는 줄 알았다.
75세된 시누님은 굴따러 가셨다가 넘어질까 무섭다고 고동만 좀 잡으시고 모래 사장에 앉아 계시고,
나는 오는날 배터에서 짝 미끄러졌는데 힘 주어 짚은 손목이 무사해서 다행이고. . .
가면서 변해버린 영흥도 모습, 내가 답사한 풍도의 모습 몇장 올리니 너희들 보면 추억이 살아날까?
캐나다의 "빅토리아" 언니는 말로만 듣던 장소일 것이다.
순자덕에 순애교수 만나고 덕분에 오래된 짝 현애 예기도 하고 (나는 네 칭찬만 많이했다 동생 메일로 그런줄 알았지?)
10여년 훌쩍 넘게 마음 속에만 있는 친구. 뉴욕의 "선"이 변해버린 영흥도 보여주고 싶구나.
어쨋건 모두 건강하고 보자. 다 한번 얼굴보며 만나는날 있겠지!
숙자야 ! 순자가 기대했을 기숙이의 노년계획 일장 춘몽이었나? 일장 추몽이었나?
여기는 팔미도쯤에서 인천 바라보며
옛날 선착장 앞에 있던 작은섬 옆으로 다리가 지나간다
배터 조금 지나 만나던 긴 방죽 길이다
여기는 붉은놀이
여기서 와이자 바람개비쪽으로 쭉 올라가면 우리집이 있던곳
이곳이 섬의 남쪽으로 화력 발전소가 들어 서 있단다
화력발전소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송전탑들
예전 우리가 여객선 타던 부두
저 낙타 같이 보이지만 소 등짐 지는 질마 섬
저 옆으로 일엽편주 타고 지나갔을 것이다.
저 다리가 영흥대교(별로크지 않아도 무조건 대교)
다리 위로 차 서 너대 지나 가는 거 보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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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낙향하고 싶은 섬 답사 끝내고 인천항으로!
공항으로 연결되는 인천 대교(진짜 대교)가 보인다.
순애 교수님!
멀리 풍도 전경입니다.
이 풍경을 순애님께 보여 드리는 연유를 아무도 모르겠죠?
사실 빅토리아 언니 보라구요.
예전에는 붉은 등대 쪽으로 배가 접안했는데
지금은 흰 등대쪽이 선착이 랍니다.
배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갑니다.
이곳이 학교인데 새로 건축한지도 오래되었다는군요
점심후에 굴 밭에 내려왓습니다.
제가 한 시간 정도 작업 하였는데 꽤나 넉넉하네요
집에 와서 굴 채장아찌를 맛있게 담았답니다.
여기는 붉은 등대 옆 쪽인데 가슴이 시원해지는 해변
할 일 없이 앉아 바다 바라보며 파도와 놀고싶은 장소네요.
기숙의 노년 이야기 재믿다.
그래 그 영흥도 바닷가에 살면 더 없는 최고의 노년 삶이 될텐데.
헌데 사진이 하나도 않보인다.
사진이 보여야 내 예기가 계속 될텐데...
그러니까 50여년전에 배타고 여흥도 가던 생각보다도 배타고 아슬아슬하게
2시간 걸려 겨우 집에 도착할수 있었던 추억은 잊지 못하고 있지.
추석이후 영흥도 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많은데 큰배는 고장나구 할수없이
지붕도 없는 자그만 고깃배로 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이 그때 오글오글 둘러 앉아
조금만 움직여도 괙 소리치는 선장님의 목소리,
움직이지 말어요~!! 아니면 배가 뒤집흰다고!!
그땐 난 앉으것도 아니고 배 가장자리에 비슷하게 누운채로 한손은 물속에 담가
손장난 치며 아슬 아슬하게 2시간 걸려 인천에 도착했을때 얼마나 안도의 숨을 쉴수있었는지 몰라.
너의 집에 도착해서 애희,나 그리고 기숙과 3이서 굴따러 갔었지.
얼마나 굴따는 일이 재미 있었는지 저녁해가 어둑거리는것도 모르고 굴을 따다가
얼뚯보니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는것이 보여 그냥 날살려라 하고 마구 뛰어
내가 전진 전진 하면서 무슨 노래인가 부르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해변가로 마구 뒤었떤 생각이 나는구나.
그때 어둑한 저멀리 바닷가에서 캠핑하던 사람들의 불빛이 아니었으면 우린 그때 그날이 인생에 마지막 날이었을지도 모랐을꺼야.
참 여흥도 기숙이네 집이 너무 정겹고 아름다웠어,
굴이 흔하니 굴김치에 굴국에 다른반찬 넘 맛있있지.
소나무 언덕 사이 사이로 한참 걸어가니 훤히 보이는 바닷가, 이미 물이 빠져 있는 갯펄에 큼직한 바위에
다닥 다닥 붙어있는 굴을 따는것이 얼마나 재미 있었는지 그러니까 해 지는것도 모르고 파도가 밀려오는것도 모르고 있었지.
나도 어렸을때는 남동 바닷가에 살었지.
어렸을때 거의 매년마다 익사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이 웅기 중기 모여 구경하며 통곡소리도 듣곤했었지.
희생자는 거의 처녀들인것이 주로 조개나 굴 맛살등을 따다가 사고를 당했던것으로 기억이 되네.
어째든 기숙의 노년계획의 글을 읽다가 거의 50년전에 추억이 떠올라 한동안 옛날생각으로 잡혔었네.
그간 많이 변한 영흥도 사진을 볼수 있었면 하는데 아즉 않보인다.
앗 그리구 현애가 너의 짝이었다구?
일년간 늘 함께 앉었으니 얼마나 보고 싶은 친구일까.
카나다 빅토리아섬에서 손주들 4을 돌보며 노년을 보낸다고 해.
한번 전화를 해 보고 싶은데 현애가 넘 바쁜것 같애서.
숙자야! 어쩜 그리도 기억력이 좋으냐 ?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 착각이 든다. 영흥도는 이제 거의 도시 수준이란다.
사진 크게 보여 줄려고 하루 종일 씨름하다 안되고 말았네. 그 사진에 또 옛날 기억 덧 붙여 보렴.
그런데 네 우아하고 정돈된 공간과 비교되게 너무 넓은 공간으로 돌아 다니고 있으니... 네 친구 아니라고 해야겠다.
현애야 ! 보고있니? 잘 살고 있겠지!
그렇게 연약하고 고왔는데 손주를 넷이나 본다구? 나도 그렇고 손주는 연약한 친구들이 더 잘 보는건가?
숙자야! 현애는 얼마나 보고 싶은게 아니라 항상 기억에 남아 온 친구야.
한결 같이 언제나 수학을 풀거나 영어책을 보거나 공부만 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모범생 이었단다. 또 옆에는 홍문자가 수학의 거의 천재였고 나는? 생각해 봐라. 무슨 재미로 살았겠나?
수학의 좌 청룡 우 백호 가운데 끼어 얼마나 힘들던지. 이런 일급 비밀 발설해도 되나?
역시 나는 홈피에 드나드는 거 조심해야 될 거 같다.
기숙아~~~
아가와 며느리 산바라지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노후 프로젝트 짜고 현장답사하는
너의 바지런 함에 두손 다 들었다.
제주도 아닌 영흥도 라니 기숙이 멀리 귀양보내는 맘 풀 리고
인천 근교영흥이라니 한결 맘노인다.
맘만 먹으면 친구 보러 인천 나오기 쉽고
친구들 기숙이와 바다가 그리우면 하시라도 집 나설수 있으니 말이지...
난 꿈도 못 꿀 전원 생활
영흥도 아는지인이
넓은 집터 옆에 조그만 토담집 지어줄터이니 영흥도 와서 지내라 해도 엄두가 안나더라
그집에서 하루밤 묶으며 밤엔 소라 잡으러 바다에
아침엔 조개케러 갯벌에....
삶의 체험현장 실습했는데
난 힘들어 죽는줄 알았어 더 묶으면
밭일에 조개까기 소라젖 담긔등 일이 끝날 쨤없이 바쁜 어촌 생활 그냥볼수 없고 힘보태야 되니 집으로 줄행랑쳤다.
울엄마는 너무 즐거워 하셨는데...
그래도 지금생각 하면 즐거운 추억...
울 엄아 생각나네...
기숙아,,,으리있써 좋타아,,,
근디 연적 이런 끼를 숨겨놓쿠 어찌 그리 얌전하게 살아오셨는지 아쭈 궁금,,,
시상에 읽어내려가며 혼자서 ㅋㅋㅋ
꿈두 야무지게 고향 영흥에 가서 전원생활? 넘 이상적이지,,,
근디이,,,미서니가 답글을 올려 꿈이 홬 깨쳐뿌렸네,,,하하하하
먼 야긍고하니이,,,실천에 옮기기전에 시이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임사숙고혀야 할 중요한 부분들을
미서니가 다 집어주었네그려,,,
첫째,,,도시생활에서 손주들 뒷바라지에서 피난은 갈수 있긋지만,,,
자리잡으랴, 전원생활이랍시고 밭떼기 하나라도 거느리다보믄,,
또 나는 아니라해도 같이 가신 옆사촌들이라두 밭때기를 거느리다보믄 모른척할수 읎다보믄,,
갤국에 가서는 도루아미타불로 도로 일속으로 코 박능거 아닝가몰라,,,
또 굴따러가야지, 조개잡으러 가야지,,,머,,,머,,,하다보믄,,,하하하하
농사징거 거둬들여서 담아, 삶아, 말려,,,등등,,,,,,,,,,,,,,,,,,,,
또 하나있지,,,옆에 같이 내려가시는 분들이 지금 75이다보믄 갤국은 노인수발 들으러 가능걸겨어,,
결코 떄가 오매 착한 기숙이 몰라라할수 읎씅게 말이지,,,알긋나?
또 도시에서 즈그들 방학이믄 떼로 오는 자슥가족들,,,,웜매애애,,,하하하하
아? 또 하나,,,동창들 만나서 재잘재잘하는 재미는 물건너강거지이,,,
내 말인즉슨,,,다 그렇다능거슨 아니고 심히 심사숙고해야할 사항들일거라 이말여어,,,
,,,,,,,수학의 좌 청룡 우 백호 가운데 끼어 얼마나 힘들던지......
잘 알긋써어,,,알고말고오,,,내가 그랴서 모범생들을 아쭈 매력없써하는 이유가,,,,,,,하하하하하
현애,,,참말로 한송이 데이지같이 청순하기만 하던 그녀,,,
지금 4손자들로 넘 바빠서,,나도 가끔 걸던 전화도 생략하고 있네,,,
기숙이 글 넘 재밋써,,,숙자가 영흥도 기숙이네 집에의 추억이 많구먼,,,
순자는 어찌 살아 본 것 처럼 귀촌의 어려움을 조목조목 나열 할 수 있을까?
우리 친구들은 정말 모두 모두 똑똑한 거 같다.
순자가 찝어 준 문제점들을 갖고 심사숙고 해 볼것이고 고향이면 것두 다행인데,
영흥은 도시화되어 오염이 어떻고 하는 사람 때문에 밀려 깊은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섬까지 가본거지.
바다가 깊어 섬 앞에서 청일전쟁의 해전이 시작 된 곳이라니 오염 운운은 못하겠지 하고.
<순자야, "유송희"의 연락처 알 수있으면 부탁해>
엄머어,,,영흥도도 도시화오염? 시상에,,,
기숙이,,내가 누구일에 감나와라 대추나와라 할 성격이 절대 안냐,,,
하지만,,,모든 일에 성심껏 사는 기숙이가 ,,,말이 씨앗이 되어,,,새가 난다 난다 하다가 날듯이
그 방면을 자꾸 생각하다보면 멍가는 또 저지르게 되능기 우리 인생,,,
미선이가 한말이 그기 단 며칠 경험이지만 헛말이 아니거등?
긍게 그 면을 심사숙고하라는거지,,
우리 나이에 육체적노동은 결코 재미가 아니걸랑,,,
그리고 차라리 그리워 꿈꿀때가 낫지,,그것이 현실화 되어 가까이 붙어사는것 또한,,,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은 하하하하하하///
유송희? 난 전혀 몰라,,,
그럼말야,,,직접,,,김춘자후배나 조영희칭구에게 쪽지로나 그냥 우리 3기에 올려 물어봐 ,,,
아마 미국에 사는 모양이지? 알수 있써,,,굳 럭,,,
엄마 핑게대다 오랫만에 들어와 보니
역시 기숙이다
언젠가 부터 나도 정말 쫒기지말고 슬로 슬로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단다
영종도 동생네 별체 근처도 괜찮을것 같아 여러번 생각해봤지
그런데
딸아이 시집안가서 미루고 있구나
우리 나이에는 미운것도 고운것도 다 내려놓고
나만의 조용한 시간이 필요한것 같아
헉헉대며 여기 저기 얼굴 내미는것
나를 괴롭게 만드는 모든것 내려놓고
기숙아 멋진 생각인것 같다(내 생각)
대부분 사람들은 채우고 채우고 그러다
가는날 1년만 더 살았으면 하더구나 정리하고 비울시간
마음 따듯한 기숙의 그림같은 집 초대되어 갈날 기대해볼께
아침 저녁 쌀쌀하구나 감기 조심하고
안녕
그래서 기숙이네는 어떻게 결정했는지? 섬으로 가서 살거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