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예방접종을 하는 날이다.

 

운동장에 노인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했는데,  간단한 절차를 마치니 어느새 내 차례다.
간호사가 티셔쓰 어깨를 쭉 내리더니 사정없이 주삿바늘을 쑥 집어넣는다.
늘 그렇듯이 주사는 영 기분 나쁘다.
하긴 깍두기 머리 아저씨들도 쬐끄만 바늘 앞에선 벌벌 떤다지 않던가? ㅎ

 

 주사 놓은 간호사가 뭐라고 중얼댄다.
  "네? 뭐라고요?"
  "바로 귀가하시지 말고 안에 가서 좀 쉬었다가 가시라고요."

요즘 내 귀도 영 시원찮다.
하긴 공짜 주사 맞을 나이니 당연하지 뭐.


 에이, 시끄러운 세상 좀 덜 들린 들 어떠하리.


까이것,  공짜 주사도 맞았는데 말이라도 잘 들어야겠다 싶어서 보건소 안으로 들어가니 앞에 화장실 표지가 보인다.

심심한데 저기나 갔다 갈까?
언제부턴가 화장실이란 글자만 보면 꼭 들어가야 할 의무감이 생긴다. ㅋ
그곳으로 가다 만난 반가운 글씨!
 <치매 검사>

저것도 물론 공짜겠지?

 

 오늘 아침에도 TV에 나온 탤런트 이름이 도통 생각이 안 나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요즘 들어 증상이 아주 심각하다.
근데 치매검사석에 별로 사람들이 없다.
으이구, 나만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가 보다.

 

  "올해가 몇 년이죠? "     2013년요.
  "오늘이 며칠이죠? "     10일요.
  "여기가 어디죠? "         보건소요.
  .
  .
  .
  .

 

 

웃음이 비질비질 나오는 것을 꾹 참으며 퐁당퐁당 대답했더니 잘 했단다.ㅋ
오늘 유옥순이 스타일 완전 구긴다.ㅎ

 

  "세 단어를 말씀 드릴 테니 잘 기억하세요.  나무, 연필, 하늘."
  "제가 뭐라고 했죠? "   
  "나무,  연필,  하늘."  (날 뭘로 알고 ㅠㅠ)
  "잘하셨어요." 

 ㅋㅋ 잘한 것 투성이다.

 

 도형 두 개를 겹쳐 그린 것을 보여주며 그려 보란다.
잘난척하고 후다닥 그려대니 또 잘했단다.
(왜 이러셔. 이래봬도 내가 미술학원 원장까지 한 여자야. ㅎㅎ)

 

 " 96에서 18을 빼면? "    78요.
엉겁결에 답했는데 이크,  큰일 났다 정신 차려야지.

아이고,  요 아가씨가 내가 계산에 약한 걸 알았는지 제법 신경 쓰면서 세번을 연거푸 빼기를 시킨다.
그리곤 이번에는 잘 했다고도 안한다.
틀렸나? 으이구 망신 ㄱ망신.

 

주눅이 들어 있는데 대뜸 아까 말했던 세 단어를 다시 말해 보란다.
 "어~,  나무,  연필,  하늘."

흐흐,  맞췄다. 잊어버리기 전에 물어봐 줘서 땡큐땡큐다!

 

 잘하셨어요, 검사 모두 백점입니다.
히히, 백점이란다!

 

 수고했다면서 파스까지 공짜로 준다.
이걸로 치매검사 끝이라니 백점 맞은 이 할매, 어째 좀 껄쩍지근하다.ㅋ

 

 친구들아, 혹시 내가 너희들 자주 못 봐서 이름 기억 못 하더라도 치매라고 수근대지 마라잉.

 

                 나~  이래봬도 백점 받은 여자야~~~ㅍ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