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고12회 졸업 오십주년 칠순여행 036.jpg

            (선운사 동구)...........미당 서 정주 시인의 시비

 

새벽같이 길 떠나가는 날이 이렇게  연이어 생겨날 줄은 예전에 미쳐 몰랐읍니다.

함께 사십삼년을 살아온 옆지기를 쫓아 생각지도 않던 1박 2일의 여행을 했으니까요

 

관광고속버스라는 이름의 버스를 몇번인가 타보기는 했었지만

이번참에는 이 촌할머니 처음 타보는 럭셔리한 관광버스 였읍니다.

비행기 비지네스급보다 못하지않은 자리배치와  의자가 그랬읍니다

실내 또한 깔끔하고 고급스런 내장을 갖추어서 함부로 어지럽히기가 송구한 마음이 들것같았읍니다.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타자마자 첫새벽부터 나오느라 아침을 걸렀을거라면서 작은 쟁반만한  아침 도시락을 주는데

그 내용 또한 푸짐하고 고급스러워 눈이 휘둥그레 떠지더군요.

이 양반들 은퇴하고도 수년일텐데 너무 과용하는게 아닐까  싶었읍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병중에 있는 친구, 또는 일이 있어 못온 친구들이 보고싶은 친구들

잘 들 놀고 잘먹고 잘 지내라고 마음을 보탠것이라는군요.

무언가 남자들이라선지 달라도 많이 다른듯 합니다.

또 .......그런데 알고보니 항상 모든것을 자기 주도하에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욕심많은 친구가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은 친구들이 마음에 안들어서 화를 부리다 참가를 안하니

이렇게 화기애애 평화스런 여행길이 된것이랍니다.

영등포에서 크게 사업에 성공해서 빌딩도 몇채 가지고 경제적으로 성공을 하다보니

오랜동안 회장일을 맡아  하면서 안되는일도 되게하는

아마도 세상이 모두 돈짝만하게 보여서 모든것이 경제논리로 풀어나가게되고 그게 파워를 이루게되어서

 흔히 말하는 자기처세의 일환으로 되었다네요.

물론 그 밑에 따르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고 패가 갈렸답니다.

새로 회장직을 맡은 양반은 아주 온순하고 겸손한 친구라 다행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칠십을 맞아 동창회란 이름보다

앞으론  그룹 그룹 또는 끼리끼리 오손도손 말년을 보내게 될거라해서 동기 이름으로는 마지막으로 이리도 거하게 여행을 하는가봅니다.

그저 그저 사람모이는 모임회에서는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인듯싶습니다.

앞좌석 넓은 공터에 괘짝 괘짝 짐이 실려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술상자이고

아침에 서울을 떠나면서부터 남녀구분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막걸리, 소주잔이 몇 순배로 돌고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아침댓바람부터 달콤한 막걸리를 받아마시고 종일 홍건하게 취해서

돌아가며 노래도 한가락씩 뽑고 옆지기한테는 시낭송도 주문해서 시도 낭송하게 하고

반백년을 향해 살아가는 부부들의 히스토리를 돌아가며 이야기 했지요.

정서가 비슷한 머리 희끗하거나 반백, 올백의 남자 노인네들이 여행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삼십몇년 사십몇년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엮어나가는데

어떤 산문시나 단편소설보다 아름답게 들렸읍니다.

곧이어 백양사, 선운사를 들렀읍니다.

선운사는 우리집 산이할아버지 소시적에 아버님과의 뜻이 달라 하루하루가 어려운 시기에

머리깎고 중 되려고 한달여가 넘도록 지내던 곳이라서

특히 문우들과  남도길에 나서면

갈때마다 남다른 소회가 들곤 하는곳인데

이렇게 나이칠십에 여러명이 함께 오기도 처음이지 싶었읍니다.

그 괴로운시절 스승님이신 미당 서정주 선생님께  찾아가  마음수련하다  머리 깎고 중되려고 작심한 사정을 말씀드리니

이렇다 저렇다 말씀 안하시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런~가...그래... 그럼 내가

내 살던 고창 선운사 주지스님께 편지한장 써 줄테니 그걸 갖고 가보게나" 하시고

찾아가는 노선을 일일이 가르쳐주셨던 긴 이야기를 회한에 차서 합니다.

살던 개봉동집에 대홍수가 나던해인데 가야금을 잘 타신 가야금의 명인이신 노스님께 가야금을 배우다

가야금을 구입하러 올라오던중 홍수소식에 자식 마누라 걱정이 앞서

핑계낌에 다시 속세귀환을 해서 이제껒 속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도 했지요.

그곳 선운사  미당선생님 시비가 있는곳도 안내하고  친구들의 청으로 (선운사 동구)도 낭송하니

이 뜻밖에 여행길이 꿈인듯했읍니다.

남원에 도착하여 남정네들은 밤새워 정을 나누라고 살며시 나는 빠져나왔읍니다.

외국여행도 아니고 국내에 호텔잠은 이 나이에 어색해서 잠도 오지않고 잠자리만큼은 집이 그리워지더군요.

다음날 아침 식사를 콩나물해장국으로 시원하게  먹는데 미국서 온 부부들 모두

맛갈나는 전라도 음식맛을 좋아해서 다행이였읍니다

남원에서 내소사를 들르고 다시  변산반도를 돌아 새만금방조제를 구경하고

 방조제 고속도로로 군산을 향해 갔읍니다.

군산에서 거한 저녁을 먹고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회장친구에게 감사패를 전하는데

감명깊은것이 이런 일들을 아무도 모르게 은근하게 한다는것이였지요.

서로 고마움을 전달하는 노년의 친구들...........아름다움이 바로 이런일이 아닐까 싶읍니다.

돌아오는 길 이틀의 여정이였는데 하루저녁에 그야말로 만리장성을 쌓은듯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여행길인듯 정이 들었다고  사당역 부근에서

아쉬워하면서 헤어졌읍니다.

 

오늘까지도 '쨔샤~~" 이 쨔샤~!"하고 서로 사춘기 소년들처럼

그들이 흥에겨워 서로를

부르던 소리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을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