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선운사 동구)...........미당 서 정주 시인의 시비
새벽같이 길 떠나가는 날이 이렇게 연이어 생겨날 줄은 예전에 미쳐 몰랐읍니다.
함께 사십삼년을 살아온 옆지기를 쫓아 생각지도 않던 1박 2일의 여행을 했으니까요
관광고속버스라는 이름의 버스를 몇번인가 타보기는 했었지만
이번참에는 이 촌할머니 처음 타보는 럭셔리한 관광버스 였읍니다.
비행기 비지네스급보다 못하지않은 자리배치와 의자가 그랬읍니다
실내 또한 깔끔하고 고급스런 내장을 갖추어서 함부로 어지럽히기가 송구한 마음이 들것같았읍니다.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타자마자 첫새벽부터 나오느라 아침을 걸렀을거라면서 작은 쟁반만한 아침 도시락을 주는데
그 내용 또한 푸짐하고 고급스러워 눈이 휘둥그레 떠지더군요.
이 양반들 은퇴하고도 수년일텐데 너무 과용하는게 아닐까 싶었읍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병중에 있는 친구, 또는 일이 있어 못온 친구들이 보고싶은 친구들
잘 들 놀고 잘먹고 잘 지내라고 마음을 보탠것이라는군요.
무언가 남자들이라선지 달라도 많이 다른듯 합니다.
또 .......그런데 알고보니 항상 모든것을 자기 주도하에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욕심많은 친구가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은 친구들이 마음에 안들어서 화를 부리다 참가를 안하니
이렇게 화기애애 평화스런 여행길이 된것이랍니다.
영등포에서 크게 사업에 성공해서 빌딩도 몇채 가지고 경제적으로 성공을 하다보니
오랜동안 회장일을 맡아 하면서 안되는일도 되게하는
아마도 세상이 모두 돈짝만하게 보여서 모든것이 경제논리로 풀어나가게되고 그게 파워를 이루게되어서
흔히 말하는 자기처세의 일환으로 되었다네요.
물론 그 밑에 따르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고 패가 갈렸답니다.
새로 회장직을 맡은 양반은 아주 온순하고 겸손한 친구라 다행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칠십을 맞아 동창회란 이름보다
앞으론 그룹 그룹 또는 끼리끼리 오손도손 말년을 보내게 될거라해서 동기 이름으로는 마지막으로 이리도 거하게 여행을 하는가봅니다.
그저 그저 사람모이는 모임회에서는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인듯싶습니다.
앞좌석 넓은 공터에 괘짝 괘짝 짐이 실려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술상자이고
아침에 서울을 떠나면서부터 남녀구분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막걸리, 소주잔이 몇 순배로 돌고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아침댓바람부터 달콤한 막걸리를 받아마시고 종일 홍건하게 취해서
돌아가며 노래도 한가락씩 뽑고 옆지기한테는 시낭송도 주문해서 시도 낭송하게 하고
반백년을 향해 살아가는 부부들의 히스토리를 돌아가며 이야기 했지요.
정서가 비슷한 머리 희끗하거나 반백, 올백의 남자 노인네들이 여행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삼십몇년 사십몇년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엮어나가는데
어떤 산문시나 단편소설보다 아름답게 들렸읍니다.
곧이어 백양사, 선운사를 들렀읍니다.
선운사는 우리집 산이할아버지 소시적에 아버님과의 뜻이 달라 하루하루가 어려운 시기에
머리깎고 중 되려고 한달여가 넘도록 지내던 곳이라서
특히 문우들과 남도길에 나서면
갈때마다 남다른 소회가 들곤 하는곳인데
이렇게 나이칠십에 여러명이 함께 오기도 처음이지 싶었읍니다.
그 괴로운시절 스승님이신 미당 서정주 선생님께 찾아가 마음수련하다 머리 깎고 중되려고 작심한 사정을 말씀드리니
이렇다 저렇다 말씀 안하시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런~가...그래... 그럼 내가
내 살던 고창 선운사 주지스님께 편지한장 써 줄테니 그걸 갖고 가보게나" 하시고
찾아가는 노선을 일일이 가르쳐주셨던 긴 이야기를 회한에 차서 합니다.
살던 개봉동집에 대홍수가 나던해인데 가야금을 잘 타신 가야금의 명인이신 노스님께 가야금을 배우다
가야금을 구입하러 올라오던중 홍수소식에 자식 마누라 걱정이 앞서
핑계낌에 다시 속세귀환을 해서 이제껒 속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도 했지요.
그곳 선운사 미당선생님 시비가 있는곳도 안내하고 친구들의 청으로 (선운사 동구)도 낭송하니
이 뜻밖에 여행길이 꿈인듯했읍니다.
남원에 도착하여 남정네들은 밤새워 정을 나누라고 살며시 나는 빠져나왔읍니다.
외국여행도 아니고 국내에 호텔잠은 이 나이에 어색해서 잠도 오지않고 잠자리만큼은 집이 그리워지더군요.
다음날 아침 식사를 콩나물해장국으로 시원하게 먹는데 미국서 온 부부들 모두
맛갈나는 전라도 음식맛을 좋아해서 다행이였읍니다
남원에서 내소사를 들르고 다시 변산반도를 돌아 새만금방조제를 구경하고
방조제 고속도로로 군산을 향해 갔읍니다.
군산에서 거한 저녁을 먹고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회장친구에게 감사패를 전하는데
감명깊은것이 이런 일들을 아무도 모르게 은근하게 한다는것이였지요.
서로 고마움을 전달하는 노년의 친구들...........아름다움이 바로 이런일이 아닐까 싶읍니다.
돌아오는 길 이틀의 여정이였는데 하루저녁에 그야말로 만리장성을 쌓은듯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여행길인듯 정이 들었다고 사당역 부근에서
아쉬워하면서 헤어졌읍니다.
오늘까지도 '쨔샤~~" 이 쨔샤~!"하고 서로 사춘기 소년들처럼
그들이 흥에겨워 서로를
부르던 소리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을 돕니다.
오늘 같은 날은 가슴이 메어지도록 미당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손주녀석과 이틀을 북색이고 식구들 데불고 와서
손주녀석과 저녁 먹고 떠나간 한적하기 그지없는 넓은 집안에 앉아
삼일전 꿈결같이 다녀온 선운사를 찾아 홈피를 열었읍니다.
천구백팔십구년도 자서전을 담시론으로 써서 내놓으셨던 책을 찾아
선운사 동구의 주막의 육자배기 소리의 여인 이야기를 다시 읽고 옮겨봅니다.
해묵은 책 냄새에다 그리운 미당 선 생님의 친필을 대하니 잊혀졌던 기억들이
하나 둘씩 떠오릅니다........아! 세상 뜨신지 십삼년의 세월이 눈깜짝할 사이라더니............
그 육자배기 여편네는 술이 얼얼하자
그 한많은 진짜 육자배기도 나한테 들려주고
작별할 때는 역시나 그 육자배기 멜러디로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인이.........". 하고
우아래 이빨을 꼭 다붙여 물고 그 사이에서 나오는 "ㄴ" 치모음 소리로
그 "인이................."를 세계 으뜸의 매력으로 발음해 주었나니,
...................................중략..............
그런데 그 뒤 10년이 지낸 1951년의 대 빨치산 전투 때
경관들에게 밥을 지어 먹였다는 죄로
이 여자와 그 가족들은 빨지산에게 학살을 당하고,
그 주막도 불태워져 버리고
뒤에 내가 가보았을 땐 그 실파밭만 남았더군.
그래 나는 그 뒤 선운사의 내 시비의 새긴
(선운사 동구)라는 시에 그 육자배기 소리를 담아보았지.
............자서전적 담시론 팔할이 바람에서.......................
고창 선운사는 정말 좋은 곳이지요.
동백꽃도 아름답고 가을에는 꽃무릇이 가득한 곳!
노년의 부부들이 모여 50주년 고교시절 동창회를 열었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의 여행길이셨네요.
김은희 선배님!! 복 되십니다.
내외분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글도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송창식의 노래까지 틀어주셔서...
14기의 친구와 재작년에 선운사에 갔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에 방송국 MT를 가보고는
실로 몇 년만에 찾았는지
오래 전의 기억과 자취는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선운사의 정취는 추억할 수 없었으나
선운사는 진정으로 오붓하고 아름답게
저희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어찌나 감격스러웠던지요...
선배님의 글을 읽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신
선배님과 선배님의 남편선생님의 이야기에
흠뻑 취합니다.
그리고~~~참 부럽고 좋네요^^ㅎㅎ
선운사의 꽃무릇을 못찍어서
도쿄의 청수사에서 찍었던 꽃무릇을 올려 드립니다!!!
인희 후배~
일본 여행에서 찍은 꽃무룻을 일부러 올려놔 주었군요.
참으로 우리부부는 남다르게 세월을 보낸것은 확실한거같아요
글쎄요..............그저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요?...............ㅎㅎㅎ
여행중에 산이할아버지 친구분이 미당선생님 시를 더 좋아하셔서
많은 시를 외워 낭송하시더라구요.
놀라웠어요..........많은 추억을 남겨주신 분이시고 좋아하긴 해서
읽기는 했지만 외울수 있는 시는 몇편 없거든요.
조용한 친구분이시던데 술에취하고 시에 취해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낭송하신 시중에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옮겨볼게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詩/ 미당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엇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김은희 선배님!
선운사 내소사 등
아주 좋은 곳을 다녀오셨네요.
내소사를 따라 죽 들어가면 직소폭포가 나오는데
그 좁은 산길이 평평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직소폭포에서 보는 단풍은 가히 일품이지요.
미당 선생님과 제자 김정웅 선생님의 인연을
선배님께 직접 들은 적이 있지요?
미당 선배님이 곡기를 끊으셨을 때 선배님이 직접 해서 가져간 음식들은 드셨다는 이야기랑
선생님 살아 생전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소설가가 돌아가시자 마자
선생님을 변절자로 몰아 가슴 아팠던 이야기들....
시류에 따라 처신을 하는 그런 작가들이 판치는 세상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런 세태 속에서도
미당 선생님과 김정웅 선생님의 인연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습니다.
앞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기대하겠습니다.
언젠가 이야기 했나 몰라.........오늘 합창제 공연을 보러 세종문화회관을 다녀왔네
나이 칠십 가까이에
서울 시립합창단 가을 정기공연으로 " 팔도 민요 페스티발"이란 프로그램 제목으로 합창제를 열었는데
제고 8기 장 내식씨가 객원 합창단 오디션에 뽑혀 시향과 함께 무대에 서는 날이라고 해서
그 나이에 뽑힌것도 대단해서 축하해주러 몇몇이 함께 했거든
산학이는 오팔 산학회로 잘 알고 있는 분이시니 말야
아리랑을 위시해서 팔도 민요를 합창으로 들으니 저절로 흥에 겨워 끝나고 나서
청진동 청진옥에서 뒷풀이를 거하게 하고
마악 새벽 한시가 되어서 돌아왔네.
저녁 공연이라해서 네다섯시경에 집에서 출발해도 되려니 했더니
저녁을 함께 일찍 하자고 했다나....... 일찍 서둘러서 메트로 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갔네.
서울서 나오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새로 꾸민 경복궁도 돌아보고
세종로 광화문통을 산보하듯 헤매어 다녀보았지.
주말이 아니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좋더라
가끔 버스 타고 올라가서 경복궁 근처를 다녀보자했네.
오늘도 잠은 쉬이 오지않을것 같으이.....................
산이 할아버지 세번째 시집에 실린 "미당(未堂)의 휘네스 꽁초"란
제목의 시 한편 올려놓고 잠을 청해 보려구.
미당(未堂)의 휘네스 꽁초"
......김 정웅..........
짝 잃고
곡기 끊고
천장만 올려보다가
어쩌다 한 번씩
외톨박이 황새 모이 찍듯이
맥주 한 모금
고추장에 마늘쫑 한 번 찍고
연기 두어 모금 하고 눌러끄고......
미당은
그 꽁초의 찌그러진 델
다시 곱게 매만지고 재떨이에 놓아두고
또 그렇게
새 담배에 불붙여서
놓고, 놓고, 놓고, 놓고......
쌓고, 쌓고, 또 쌓고......
재떨이에 가지런히 산만큼 쌓이는
미당의 그 휘네스 담배꽁초는
짝 잃고
곡기 끊고
천장만 올려보다가
어쩌다 한 번씩
외톨박이 황새 모이 찍듯이
맥주 한 모금
고추장에 마늘쫑 한 번 찍고
연기 두어 모금 하고 눌러끄고......
참 눈물겹더군
참 아름답더군
이승의 쇠그물 속 졸업한
말이 그냥
시가 되는 사람은
은희야!
꽃무릇이 아름다운 고창 선운사를 찾았구나.
사진 작가들이 줄을 잇는 선운사를 난 아직 못 밟았단다.
번개같이 다녀온 은희의 서운사 여행이 꿈 속에 밟히겠구나.
봉평 음악회의 네 사진이다.
내 휴대폰 사진이란다.
영선아~~
내 모습이 이리도 대문짝 만하게 자유게시판에
나와 걸리다니 .....................
그날 이 인희 후배랑 네가 아니면 이렇게 멋지게 누가 찍어 줄거냐 싶구나......ㅎㅎㅎ
귀하게 보관하마.
불자인 네가 아직 선운사를 가보질 못했구나
그곳엔 동백숲도 너무 좋으니 만발할때 한번 같이 가보세나.
나도 동백꽃이 한창일때는 못 가보았느니..........
오늘 우리집 수녀님이 여행에서 돌아와서
오랜만에 많은 정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네..........아~! 참으로 좋구나.
그리운 미당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을 그리며 .........
너도 좋아해주면 좋겄네.
.....................日曜日이 오거던...................
미당 서 정주
日曜日이 오거던
친구여
인제는 우리 눈 아조 다 깨여서
찾다가 놓아 둔
우리 아직 못 찾은
마지막 골목길을 찾아 가 볼까?
거기 잊혀져 걸려 있는 사진이
오래 오래 사랑하고 살던
또 다른 사진들도 찾아 가 볼까
일요일이 오거던
친구여
인제는 우리 눈 아주 다 깨여서
차라리 맑은 모랫벌 위에
피어 있는 해당화 꽃 같이 될까
우리 하늘의 분홍 불 부치고 서서
이 분홍불의 남는것은
또 모래알 들에게나 줄까
일요일이 오거건
친구여
심청이가 인당수로 가던 길도,
춘향이가 다니던
우리 아직 안 가 본 골목도
찾아 가 볼까.
미당 서 정주 시인의 친필로 새겨진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 선운사에서, 미당 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