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고갱...
소설가 박경리선생님은 만년에 쓰신 시 "옛날의 그 집"에서
시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쓰셨다.
........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그리고 담담하고 의연하게 생을 마감하셨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이런 분의 노년의 삶이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요즈음 들어 말로는 나이먹어 그런가를 되뇌이면서도 한편으론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나름대로 나 또한 만만치않은 세월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내게 기회를 준다면
사십년전으로 다시 돌아가 다시한번 지난일들을 수정하고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십대 삼십대로 돌아가 그냥 지나쳐버린 시간들을 아낌없이
열정적으로 살아보고싶다는 생각도 한다.
무엇이 그리도 미련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누구는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이 없길 바라고
다른 누구는 더구나 젊은시절로 돌아가는일은 끔찍하다고 하는데 말이다.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영화 "빽 투더 퓨처"가 떠 오르는 오늘
칠십년대로 돌아가서
글이나마 찾아 읽고 음악을 찾아 듣는다.
무슨 변덕인가
그렇게도 몸과 마음이 고단했던 시절 우리집 가장의 자유분방했던 젊은때도 그리워지니.....
첫시집의 우리집 가장을 그려준 그의 친구의 글조차도 사랑스럽다.
모든것을 훌훌 버리고 갈 준비를해야 할 첫 행보도 나는 아직은 생각조차 못하나보다.
바람타기........김 정웅
바람이 불고 있어.
길을 떠나야지
뿌리 마른 삭정들이 허리 꺾이는
외마디 소리 들어 봐,
하늘이 어둠을 껴안고
자꾸만 고꾸라박히고 있어.
해묵은 생나무 가지들은
그네 늘이듯 바람을 타고 있어
깊은 숲을 버티고 있어.
길을 떠나야지,
이별이 아니야
휘어나가는 힘으로
휘어 돌아오는 거야.
바람이 길게 불고 있어.
되도록 힘껒 흔들려야지
바람보다 앞서 가야겠어
더 큰 바람으로 불기 위해.
- 옛날의 그집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릉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아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금재후배~
"고통의 골짜기에서는 절망과 쓰라림이 양조된다.
그러나 또한 품격도 제조된다.
고통의 골짜기는 영혼을 빚어내는 골짜기다". 미국의 철학자 월터스포트의
말을 빌어 박경리선생님을 생각하는 글을 쓴 문장이 생각나서
옮겨와 보았네요.
내 유년시절 친정오라버니 덕분에 박경리 선생님을 뵌적이 있었지요.
얼마나 고우셨는지 무척 인상이 깊어 아직도 내 기억엔 그모습이 우선 떠오릅니다.
내가 현재 살고있는 이곳도 개복숭아 앵두 사철나무 그리고
토종 들국화도 피여나지요.
어느 화려한 꽃들보다 그리움을 안겨주는 꽃이 피여납니다.
그래서.....금재후배도 가슴가득 추억을 떠올리게 되겠지요
역시 가을은 시의 계절임이 틀림 없습니다.
시를 읽는 여자는 아름답고요
그리고 특히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선배님의 열정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즈음 최인호님의 죽음에
박경리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맨 마지막을 한 줄의 시로 마감한 작가들...
그 분들은 가고 없어도 그들이 남긴 작품은 영원히 남아 우리 곁에 함께 있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저도 이 가을에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산학아~
그러게 말이지................
우리가 알고있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떠나가시네.
오늘 어쩐일인지 초저녁잠을 두어시간 자다가
한달이상 먼길 떠나는 친구의 전화 받고 깨여나 글을 쓰네.
올 가을은 왜그리 쓸쓸하다냐
은행열매가 잎이 물들기도전에 길에 잔뜩 떨어지기도해서 오늘은 사진을 찍기도했어요.
그래...........산학이의 감성으로
이 가을에 시 한편 쓰렴 ....아니 더 써도 좋고.
다니는 길에 잔뜩 은행열매가 떨어져서 차를 집앞에 세우지 못하네요. 열매를 내일은 주워야 하겠어요.
오가피 열매가 아주 흐드러지게 열렸는데 ..........지금은 꽃처럼 예쁩니다.
올 여름 비바람 치던날 팔십년생 감나무 고목이 넘어져 생명을 다했는데 이렇게 버섯이 자리를 잡았네요.
죽어서도 생명을 키우는 자연에서 느끼는것이 많네요.
올해에는 여름 비바람에 대추가 얼마 달리지 않았지요......몇알 달린 대추가 빨갛게 익어 반가웠읍니다.
올 김장배추 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배추벌레 잡아내느라 힘이드네요 해마다 하는일이지만
바쁘답니다..............
오늘 우리집가장 산이할아버지가 고교시절 단짝친구들을 모처럼 만나는 날 이였다는데
하도 밖 출입을 안하다보니 날짜 가는것도 모르고 지내나보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서야 뒤늦게 약속날을 알게되어 서운한듯 묵묵히
서재로 들어가는데 그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작아만 보인다.
김 정웅을 말한다
홍 신선 (시인)
김 정웅, 그도 이제는 굿판의 냄새가 많이 가신 30대 후반의 후줄근한 한 사내일 뿐이다.
시로써 그나름의 자기를 찾고 있는 이 사내에게 구태어 굿판을 들추는 것은 그 굿판이 만만치 않은
무엇을 끼친 것 같기 때문인데 그러면서 후줄근하다는 표현으로 그를 기가 빠져버린 상태,
한 때 바바리코트는 때를 좀 묻혀서 입고 다녀야한다든가 또는 세련되게 목에는 머풀러를
둘러야한다든지 하는 행색에 대한 생각도 이제는 평범한 것으로 바뀐 것이 한 예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무렵 주어모은 굿판틱(?) 한 와이셔츠나 구두 등이 우리 앞에 등장해서
어느 한시절의 보다 젊은 김 정웅을 슬적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얼룩처럼 남은 광기를
확인케하는 것은 작은 즐거움의 하나이다.
나로서는 어쩌다 번쩍이며 마그네슘처럼 터지는 그의 광기가 싫지만 그나마 오늘날 연극에
관심을 갖고 구경을 다니는 것은 오로지 이 친구의 덕일 것이다.
다른 무엇에 대한 생각없이 먼지 자욱한 무대에만 오로지 뒹구는, 자기 예술에만 몰입하는
연극하는 이들의 그 단호함과 결벽성이 좋게 보이고 또 실제로 그런 기질을
언듯언듯 보이는 정웅이가 좋게 보였기 때문이다.
허지만 이 좋게 보였다는 내 고백은 여기서 얼른 덮어두자.
그것은 이 말을 백프로 받아들여서 내게 또 쳐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밤 11시 넘어까지 술을 마시자든지, 전부터 싸워오던 시 이야기를 끝장내자든지
그런 엄청난 일이 나는 싫기 때문이다.
김 정웅이란 사내는 내가 아는한 제 기분과 흥이 날 때는 두서없이 달겨들어
모든 것을 끝내보겠다는 투의 남자인 것이다.
어린애같은 단순함과 순수함을 내가 이 친구에게서 종종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극판에서 살다 어떻게 선생자리를 하나 얻어 이천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시를 적극적으로 썼다고, 이제는 시 쓰는 일 때문에 밤에 잠을 자주 설친다고,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느냐고 그는 요즈음 말한다.
나는 이 자의 이런 열정이 때로는 싫고도 무섭다.
그것은 아직도 광기가 얼룩처럼 남아서 이 친구를 괴롭힌다는 소린데 죽은 화산에서
불이 언제 다시 터지는지 하는 유의 불안과 두려움인 것이다.
전과 달리 다소 믿을 수 있다면 앞에서 적은 대로 그 광기도 식어서
후줄근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든다는 탓도 있지만 이것은 이 세상의
예술과 생에서 자기제어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친구가 술이든 시든 무엇에나 만만하게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제어와 물러서는 일을 분간하는 정도쯤 우리는 이제 구태어 말로 지껄이지
않아도 좋을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첫시집을 내는 그가 이뻐보인다. 아니 광기와 열정을 깊이 감출 줄 아는,
그래서 삶의 깊이를 갖는 그가 더욱 어른스러워 싫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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