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명절을 요란시끌하게 보내고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차창 밖으로 유난히 환하고 둥근 보름달이 따라온다.
옆에 앉은 예원이에게 달을 가리키며 "오늘밤 저 달에게 소원을 빌면 다 들어준대. 예원이도 소원을 빌어 봐" 했더니
"정말?"하고 되물으며 "속으로 이야기 하는거야, 말로 하는거야?" 한다.
네 마음대로 해도 되는거야" 했더니
"나는 말로 해야지" 하면서 "수학왕이 되게 해 주세요. 수학 문제를 척척 풀게해 주셔요"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의 소원이 수학왕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진짜야 했더니 정말이란다.
8살짜리의 소원에 어이가 없지만 그것이 소원이라는데 어쩌랴.
"예원이가 정성으로 추석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었으니 분명 수학왕이 될거야. 봐라 내년에 네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면 고모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단다." 했더니 좋아라 손뼉을 친다.
얼마전
학습지 숙제를 게을리하는 예원이에게 엄마가 혼을 내며 '앞으로 이따위로 할거면 학습지고 학원이고 다 끓어 버릴 것이다" 라고 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언니를 말갛게 쳐다보고 있던 5살짜리 지원이가
"엄마, 그러면 언니대신 내가 학원에도 가고 학습지도 할께" 라고 해서 언니의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고 하더니
엄마가 얼마나 닥달을 했으면
아이의 소원이 수학왕이라니..........
올케에게 "부모가 문제다" 라고 했더니
올케 말이 "형님, 세상이 달라졌어요" 한다.
정말로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도 우리 친정 송림동엔 32명이 모였다.
전날부터 와서 있기도 하고
대개 시집 추석 차례들을 끝내고 모인다.
85세에서 4달된 아기까지 4대가 모이니 요란하지만 좁은 집에서 다들 화기애애하다.
먹고 마시고 화투에서 다아아몬드 게임까지 놀이에 열중하며 조카 사위며 조카 며느리들이 블랙홀에 빠지듯 집안에 융화된다.
심지어 일본이 친가인 조카사위는 좋아라 입을 다물지를 못해 모두들 웃게한다.
그리고 돌아 갈 때는 손에 음식 보따리들을 한아름 들고 간다.
세상에 행복이 무엇일까?
소소하고 자잘한 평범한 이런 것들이 행복이 아닐까?
뷔엔나에서 살고 있는 조카딸아이는 전화를 해서는 "다 모여서 좋겠다" '나도 먹고싶다"를 연발한다.
예원아!
너두 크면 수학왕이 되는 것이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절로 알 수 있단다.
요즈음 아이들 정말 종잡 을 수가 없다.
예원이와 지원이가 둘이 소근소근댄다.
분명 남자아이 이름이 나오길래 살살 꼬셔서 물어보니 두 아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지네끼리의 비밀이란다.
예원이의 남자친구는 이시후
지원이의 남자친구는 김준하인데
5살짜리 지원이에게 하두 신기해서 물어보았다.
"준하가 왜 좋아?" 했더니
애기야! 애기야! 하면서 모든지 다 해 준단다.
유치원 버스에서도 둘이 꼭 같이 앉아서 다닌다고 하니 할 말을 잊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니 옛말이 틑린 것이 하나도 없다.
순희야!
명절 잘 지냈니?
오늘 3시에 강남에서 우리 난초 모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네.
전주에서 인숙이 수녀님이 연휴를 끝내고 내려가는 길에 만나기로 했거든....
오랜만의 모임인데
그냥 어제 만난 듯 스스러움이 없는 친구들이지.
다녀와서 글도 마무리하고 친구들 소식도 전할께.
순희야!
이 날 모임에서
우리 친구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겼단다.
인숙이 수녀님은 당연히 우리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니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고 있지만
또 한 친구가 교육계를 떠나 연금을 타면서 무조건 50만원을 떼어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동이체를 해 버렸다고.
이 때 안 하면 영원히 못 할 것 같아 그리 해 버렸다고....
일본의 고정희도 9월 27일 퇴임을 하는데
그동안 그린 그림이 팔릴 때마다 그 수익금을 양평에 있는 장애자 학교에 기부하고 있지.
그동안 교육계에 몸 담았던 친구들이
교육자라고 무어가 달라도 다르네.
소리없이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자랑스러운 하루 였단다.
혜원아!
너랑 허브나라를 다녀온지도 벌써 옛날 옛날이네.
허브나라도 그 때가 좋았지.
흥정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계곡길을 쭉 따라 걸어 들어갔는데 말이다.
그 당시 흥정산에서는 산삼을 캤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오기도 했고............
그러나 지금은
그 길이 몽땅 팬션이 들어서고
행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를 않네.
너희 집도 형제가 많아 무슨 날이면 40여명이 모여 북적된다고 했지?
타국에 나가 살아도
한국의 고유 풍습은 없어지지를 않고 살아있네.
언제 한국에 나올 기회가 되면
우리 또 다시 그곳에 가야지.....
여덟살은 처녀여요~ ㅎㅎㅎ
네살짜리 우리집손녀도 추석날 옥상위에서 달님한테 소원을 빌어보라구 했더니
"핑크공주 인형....핑크모자....이쁜남자친구....선물로 보내주셔요"
그리고 받기도 전에 미리 "고맙습니다...땡큐!!!"
그것도 속삭포로 일사천리로 기도라고 하데....ㅎㅎㅎ
도산학 후배!
정말 요즘 아이들은 영양이 좋고 열린 매체들이 많아서 그런지
조숙한가 봐요.
나도 미국의 손주들 얘기를 듣고 놀랍니다.
다섯 살짜리 외손녀 맘에 드는 남자 아이를 놓고 난 누구랑 marry 할거야, 를 서슴치 않고 말하며
맛있는 간식을 싸며 이건 우리 유치원 남자 친구 누구에게 줄 거야. 라고 한답니다.
벌써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와
베겓 속에 넣어 두고 천사가 와서 가져 가면 예쁜 new teeth를 가져다 줄 거라며
좋아한다네요.(우리는 지붕 위로 던졌었는데)
잠자기 전 기도는 외손녀 담당인데
어쩌면 어른들이 소원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나열하는지
딸이 혀를 내두를 정도랍니다.
너무나 애기 같다가도 기도 시간에 보면
너무 큰 어른 같아 깜짝깜짝 놀란답니다.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집안의 큰 재목이 되려는지..
가족이 많은 친정에서 조카들과 명절을 보낸 산학 후배
고운 명절 정서를 듬뿍 받았겠군요.
형제애와 가족애의 넉넉하고 훈훈한 사랑과 함께
산학 후배님의 가을이 익어 가는 군요.
조영선 선배님!
명절날 미국에 있는 가족 생각에 마음이 좀 안 좋으셨겠네요.
잘 지내셨는지요?
몇날 며칠을 정성을 들여 음식을 준비하는 뜻은
오랜만에 같이 모여 즐기고 격려하고 그러므로써 위로받는 마음자리 때문이겠지요.
자주 만나야 정도 쌓이고 우리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하고 싶은 편안함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유대감
그런 이유로 명절은 중요하고 아름다운 풍속입니다.
그런 날
아이들의 재롱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쓸쓸할까요?
우리 5살짜리 지원이가
목욕을 갈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더러워져서 목욕을 꼭 가야 돼" 라고요.
물을 좋아하는 아이가 혹시 데려가지 않을까 봐 하는 이야기인데
"마음이 더러워졌다"....
아이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문득 나 자신을 돌아 봅니다.
산학이의 글을 읽다보니 나의 친정이 그려지네.
우리 친정도 식구가 만만찮았거든.
지금은 안 계시지만
맏며느리인 친정 엄마를 생각케 되네.
시엄닐 모시고 사니 모든 친척들이 하루종일 들끓지요.
오는 친척마다 상차려야지......
때마다 그렇게나 힘드신 엄마를 보고 자란 난 식구 단출한데로 시집간다고 입버릇처럼 했다오.
입버릇처럼 시집 갔건만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홀시엄니(90세)과 함께 산다오.
강산이 4번 바뀌려고 하는데......
산학이네 올케도 꽤 힘들었겠다.
산학이는 행복을 느꼈다는데 난 왜 이 생각이 뇌리를 스칠까???
김광숙 선배님!
요즈음 세상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기만 해도 효부라고들 합니다.
맏며느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 그런지 선배님의 품성이 넉넉한 것이 맏며느리감 이라 늘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열심히 바르게 살면 자식들이 다 잘 되지요.
며칠 전
베테랑 형사 출신인 방송인 신동선 경찰대학 교수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 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방 하나에 6식구가 잘 수가 없어서 리어카 행상을 하시던 아버지는 3년간을 리어카에서 잠을 잤다고요.
하두 옷차림이 누추해 파출소에서 들어 오지도 못 하게 하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이
6년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
열심히 산 아버지가 훌륭한 아들을 만든 것이지요.
선배님께서도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셨으니
그 복이 몽땅 자식들 몫이네요.
아이고, 32명이라니..
자고로 명절은 왁자지껄 호호 하하..... 해야 한다는데
부엌담당하는 지휘관이 많이 힘들었겠지만 보람은 하늘땅땅 만큼이겠네..
그중 한 축을 담당했어야 했을 테니
산학아, 애 많이 썼다..
이제 구정까지 한 숨 놓고 체력 증강에만 애쓰시도록..ㅎㅎ
그런데, 예원이, 지원이, 이시후, 김준하...
참 이름들도 예쁘고 멋드러지게 지었다.
그러니 이름 따라 간다고,
고렇게 깜찍하고 귀여운 생각들을 하고 있지..
참으로 아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아직 갈고 닦지 않아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소중한 존재들이야..
내 이름 순희,
어렸을 땐 이리도 무성의한 이름이 있을까..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안 해보고 그저 여자애니까.. 하고 확 신고했었을 꺼야.. 했었는데
지금 나이 먹고 나니 그래도 그 이름이 좋네,
한 켠으로는 짠하기도 하고,
또 한 켠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리 씩씩하게 살고 있는 게 저 이름 지어준 부모님 덕 아닌가 해서 말이다
명절 거듭할 때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빈 자리 생기고
허리 점점 굽어가고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참 세월 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그래서 명절은 왁자지껄한 웃음 그 뒤에 살짝 눈물 짓는 쓸쓸함을 함께 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