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2:10-15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뿔을 높이고 나무같이 성장하는 의인]
지존자 안에 거주하며 그분을 예배하는 자들, 하나님의 크고 깊은 일들을 깨닫는 의인들은 주께서 들소의 뿔같이 높아지게 하시고 신선한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10). 들소의 뿔은 지치지 않는 힘과 용기의 상징이며, 신선한 기름은 속죄와 치유를 상징하는 것입니다(레 14:15-18). 또한 의인은 눈으로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보며, 귀로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말합니다(11). 뿐만 아니라 시인은 의인에게 번성과 성장이 보장되어 있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빠르게 성장했다가 빠르게 멸망하는 풀과 같은 악인의 번성과는 달리, 오래 걸리지만 대대에 미치는 종려나무나 백향목의 성장과 같다고 노래합니다(12). 성경은 계속적으로 의인의 성장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이틀에 일희일비하는 자가 아니라 한 세대, 두 세대를 바라보고 뿌리를 내리는 나무와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뿌리를 내릴 생명수 시냇가는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힘과 용기, 속죄와 치유가 있는 예배생활이 있습니까? 나는 풀이 아니라 나무처럼 성장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집에 심겨진 자의 축복] 
시인은 의인을 여호와의 집에 심겨지고 하나님의 뜰에서 번성하는 나무와 같다고 노래합니다(13). 실제 이스라엘에는 예수님 당시에 있던 감람나무들이 아직도 푸르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다른 시에서 자신을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라고 노래하기도 했습니다(시 52:8). 이렇게 하나님의 집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자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 복을 받게 됩니다(14). 실제 모세는 임종 때가 되어도 그 눈이 흐려지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으며(신 34:7), 다윗도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히 여김 받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의인의 모습은 여호와께서 참으로 그들의 피할 바위가 되시는 것과 하나님의 정직하심과 불의 없으심의 증거가 됩니다(15). 의인은 순교든 평안한 영면이든 간에 반드시 그 행실의 결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존재입니다(히 13:7, 요 21:19).
*나는 여호와의 집에 심겨지고 하나님의 뜰에서 번성하는 나무와 같이 청청하고 결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중보기도>

[미전도종족] 아제르바이잔의 메쉬케티 투르크

구소련의 지도자였던 스탈린은 독일 나치군으로부터 투르크인들을 구해낸다는 명분 아래 실제적으로는 무슬림들을 강제추방시키고 그의 나라를 요새화시켰다. 강제로 그들의 고향을 떠나야 했던 메쉬케티 투르크인들은 구소련의 그 다음 지도자였던 니키타 크러쉬예브가 1953년 강제노동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킬 때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노예처럼 살았다. 체첸, 잉구르 그리고 타타르에서 추방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나 메쉬케티 투르크인들은 되돌아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고 여전히 아제르바이잔에 남아있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가 비슷했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만큼 잘 적응했고 1989년 아제르바이잔의 국민들과 같은 권리를 얻었다.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소수의 신자들이 투르크인들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존재를 알릴 수 있도록 기도하자. 주님께서 메쉬케티 투르크인들의 상처를 치유하시도록 기도하자.